성장률 ‘반짝’했다지만 고물가·고금리에 체감경제는 ‘바닥’

2024-04-26 13:00:01 게재

대통령실·기재부 ‘경제 청신호’ 이례적 따로 브리핑

고환율·고물가·고금리 장기화 실물경제는 ‘글쎄요’

1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웃돈 1.3%를 기록, 기획재정부가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25일 한국은행 속보치가 나오자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경제 회복 경로의 본격 진입을 알리는 청신호”라는 입장을 내놨다. 경제 성장률 속보치에 대통령실·정부가 별도 브리핑을 개최한 것은 이례적 일이다. 야당이 요구하는 13조원 규모의 민생회복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반짝 호황’에 편승한 1분기 성장률이 연말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일시적 깜짝 성장률’이란 전망이 오히려 많다. 더구나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실물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정부가 성장률 발표 이튿날인 26일 열린 39차 비상경제차관회의 핵심주제를 ‘물가’로 잡은 것도 이를 의식해서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차관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9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19차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이튿날 차관회의 핵심주제는 물가 =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 이날 회의에서 “배추, 양배추, 당근 등 7종의 품목에 대해서는 5월 중 할당관세 0%를 신규 적용해 가격안정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김 차관은 “4월 들어 오이, 애호박, 수입소고기, 갈치 등을 중심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전반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전국 116개소 농수산물 유통현장을 점검한 결과를 토대로 유통경로를 다양화해 경쟁을 촉진하고 비효율을 최소화하는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특히 물가안정을 위해 담합과 사재기 등 불공정 행위 엄단 방침도 밝혔다. 김 차관은 “최근 가공식품·생필품 등 일부 가격 인상 움직임에 대해서는 정부의 원가부담 경감 등과 연계해 관련업계가 물가안정에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나가되, 담합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기회복세가 체감경기 개선과 민생 안정으로 신속히 이어질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 추진상황 △부처별 물가안정 대응상황 점검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 △사회이동성 개선방안 등이 논의됐다.

◆물가 상승압력 더 커진다 = 정부의 물가안정 기대와 달리,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환율 급등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우선 지난달부터 국제유가는 연일 급등세다. 25일(현지시각)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배럴당 98.14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두바이유도 89.19달러로 마쳤다. 한달째 배럴 당 90달러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 숨고르기에 들어간 원·달러 환율도 지난 16일부터 1400원선을 넘어서는 등 급등세다. 국제유가와 환율 급등은 생산단가를 높여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 수입물가도 3개월 연속 상승하면서 국내 물가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과일·채소 가격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크게 올랐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올해 1~3월 월평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0%로 영국(3.5%)·미국(3.3%)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고 밝혔다. 과일과 채소 가격만 따지면 가격 오름세는 1위다.

◆공공요금 인상 시기 늦춰보지만 = 여기에 올해 초부터 요금인상을 억눌러 둔 전기·가스·대중교통 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당국이 총선이 끝나고도 공공요금 인상 억제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4·10 총선 전에 전기요금도 인상설이 돌았지만 이스라엘·이란 분쟁, 환율 상승 등으로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리면서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려는 모양새다.

이미 정부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파고 속 전기료, 난방비, 대중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전방위 작업에 착수했다. 공공요금 인상이 현 3%대 고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에서다.

최상목 부총리도 최근 기자들과 만나 “물가상황이 어려워서 공공요금에 대해 보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라며 “공공요금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공공기관의 재무구조, 글로벌 에너지 가격 동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상반기까지는 동결기조를 이어가더라도 하반기까지 버티기는 힘들 것이란 점이다.

전기요금도 ‘폭염’이 끝나고 4분기 요금조정 때에는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란 말이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부채는 20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요금 인상요인을 억눌러둔 상황이다.

교통요금의 경우 서울시가 당초 지하철 기본요금을 7월부터 100원 올려 1500원으로 책정할 계획이었지만, 정부는 인상시기 연기를 요청 중이다. 철도요금도 2%대 물가에 안착하는 하반기쯤 인상 논의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 1일 도시가스 도매 공급비용 조정이 예정된 가운데 동결 얘기가 나온다. 최근 에너지당국이 가스 도매 공급비 인상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지만 기재부는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에 따라 미루자는 의견을 견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상황이 변수다. 한전이 지난 2021년 2분기부터 쌓아온 누적 적자는 43조6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가스공사의 순손실은 연결 기준 7474억원이며 미수금을 고려하면 실제 손실 규모는 더 크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 불가피론’이 확산되는 배경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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