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더는 못 참아” 강경대응 나섰다

2024-05-03 13:00:03 게재

민원단체 고발·블랙리스트 관리

금천·수원은 특이민원 모의훈련

누리집 실명·연락처·사진 비공개

정부도 악성민원 방지대책 내놔

전남 담양군 공무원노조가 2일 “민원이 도를 넘어섰다”며 한 동물보호단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노조는 “한 단체의 협박성 발언과 폭언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해당 단체 인스타그램 계정 등을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이 단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기동물 기증보류 결정을 해제하라’며 일부 공무원을 특정해 실명과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열흘 이상 지속적인 민원을 제기해왔다.

서울교통공사는 상습적으로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악성민원인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기로 했다. 블랙리스트에 등록되면 일정 기간 민원 접수를 할 수 없도록 할 계획이다. 또 공사가 답변을 했음에도 3회 이상 반복해 민원을 제기하면 해당 사안이 종결됐음을 통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원을 낼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악성민원 대응을 위해 경찰과 함께 ‘특이민원 대응 모의훈련’을 진행하는 지자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서울 금천구는 2일 시흥제4동주민센터에서 민원공무원이 난동을 부리는 민원인에 대응하기 위해 보디캠으로 증거를 수집하고 비상벨을 눌러 경찰에 신고해 연행하는 과정을 실제처럼 훈련했다. 1일에는 경기 수원시청 민원실에서도 유사한 훈련이 이뤄졌다. 수원시는 이달 말까지 시청과 동행정복지센터 민원실 등 56곳에서 경찰과 합동으로 모의훈련을 진행한다.

수원시는 이날 누리집에 게시된 직원의 이름과 사무실 배치도를 비공개로 전환했다. 과천시도 누리집 조직도의 공무원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하고 좌석 배치도에서 공무원 사진을 삭제하기로 했다. 경기도는 앞서 지난달 22일과 25일 의정부 북부청사와 수원 광교청사에서 각각 민원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민원인 위법행위 법적대응 교육을 실시했다.

이처럼 민원업무를 담당하는 기관들이 악성민원에 대한 대응강도를 높이는 것은 기존 방식으로는 악성 민원으로 인한 업무 차질과 직원들의 사기 저하를 막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김포시 공무원이 악성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을 계기로 이런 기조가 확산되고 있다.

악성민원종합대책발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를 위한 범정부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행정안전부 제공

정부도 악성민원을 뿌리 뽑겠다며 종합대책을 내놨다. 행정안전부는 2일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대책에는 전화 인터넷 방문 등 민원 신청 수단별로 악성민원을 차단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우선 민원인이 통화에서 욕설·협박·성희롱 등 폭언을 하면 공무원이 1차 경고를 하고, 이후에도 폭언이 이어지면 공무원은 통화를 끊을 수 있다. 장시간 민원과 무관한 통화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기관별로 통화 1회당 권장시간을 설정해 부당한 요구 등으로 권장시간을 초과하면 공무원이 통화를 종료할 수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대량 민원도 차단한다. 온라인 민원창구로 단시간에 대량 민원을 신청해 시스템 장애 등 업무처리에 의도적으로 지장을 준 경우 민원인이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한다. 방문 민원도 ‘사전예약제’ 등을 통해 1회 권장시간을 정한다.

문서로 신청한 민원에도 제한을 둔다. 민원인이 작성한 문서에 욕설·협박·성희롱 등이 포함된 경우 민원을 종결할 수 있다. 부당하거나 과다하게 제기되는 정보공개 청구도 자체 심의를 거쳐 종결 처리할 수 있도록 법령에 근거를 마련한다.

또 콜센터 등 민간 영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민원인과 공무원이 통화를 시작할 때부터 내용 전체를 녹음할 수 있도록 한다. 행정기관 누리집 등에 공개된 공무원 개인정보는 ‘성명 비공개’ 등 기관별로 공개 수준을 조정한다. 민원인의 위법행위 등에 대비해 민원실 내 비상벨을 설치해 경찰과 연락망도 강화한다.

정부는 악성민원을 명확히 규정하고 유형을 세분화한다. 폭언·명예훼손·성희롱·폭행·기물파손·협박 등을 ‘위법 행위’로, 반복·시간구속·부당요구 등을 ‘공무방해 행위’로 유형을 구분해 대응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기관 차원의 전담대응팀 설치를 권장하고, 기관 차원의 법적 대응도 의무화했다. 악성민원 피해를 본 공무원은 6일 이내 공무상 병가를 줄 수 있도록 하고, 민원공무원이 승진 가점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악성민원으로부터 민원공무원을 보호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라며 “이번 종합대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민이 안정적으로 민원 서비스를 제공받고, 우리 사회에 민원공무원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안부에 따르면 민원인의 위법행위는 2019년 3만8054건이었고, 2020년 4만6079건, 2021년 5만1883건까지 증가했다. 2022년에는 4만1559건을 기록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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