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기업 ‘매출 부풀리기’…금융당국 제재, ‘감사 부실’도 지적

2024-05-03 13:00:01 게재

지난해 증선위 제재 조치 주요사례 14건 공개

금융감독원, 분식 사례 DB화 ‘재발방지’ 주의

상장폐지 회피하려는 부실기업, 퇴출 방침

경기침체와 고물가 등으로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금융당국이 회계장부를 조작해 ‘매출 부풀리기’를 벌인 기업들에 대해 무더기 제재 조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여건이 어려워짐에 따라 기업들의 분식회계 유혹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3일 금융감독원은 “2023년 회계심사·감리 지적사례 중 가장 많은 유형은 매출·매출원가 허위계상”이라며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에서 제재 조치를 한 주요 지적 사례 14건을 공개했다. 매출·매출원가 허위계상이 6건, 재고자산 과대계상 2건, 파생상품 등 기타 자산 허위계상 4건 등이다.

◆관리종목 회피, 코스닥 상장 목적 분식회계= ‘매출 부풀리기’ 시도는 주로 주식시장과 연관이 컸다. 반도체 설계·제조업을 하는 A사는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해 한국거래소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위험에 처하자 영업실적 부풀리기에 나섰다.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A사는 중고폰 사업부를 신설해 무자료 업체가 매입해 수출한 중고폰 실물 흐름을 외관상 회사의 거래인 것처럼 계약서, 세금계산서 및 수출신고필증 등을 만들어 장부상 매출 등으로 계상했다. A사는 중고폰 매입을 위해 가공의 거래업체에 계좌이체를 했고, 이후 해당 자금을 출금해 수출을 위한 또 다른 가공 거래업체에 전달한 후 계좌이체를 통해 돈을 지급받은 방식으로 거래를 꾸몄다. 장부상 거래에 대응되는 가공의 자금흐름을 만들었고 이를 외부감사인(회계법인)에게 제시했다.

금감원은 “회사가 관리종목 지정을 앞둔 상황에서 기존의 주력 사업과 무관한 사업을 개시한 경우, 감사인은 신사업의 성격과 개시 경위 등을 확인하고 감사절차 설계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회계감리 결과 A사 감사인이 회사에 영업실적 증대 유인이 있다고 판단했음에도 회사가 신규 개시한 업종의 성격 및 규제요인 등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사실이 없고, 수출대금의 환위험 헷지를 위해 원화로 대금을 회수했다는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추가적인 감사절차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B사는 코스닥 신규 상장을 시도했지만 적자규모 확대와 매출감소 등의 사유로 실패하자, 공사손실이 예상되는 사업장에 대해 공사계약금액을 임의로 부풀려 공사수익을 과다계상했다. 하지만 임의로 공사수익을 인식한 결과 거래처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공사미수금이 누적됐고, 이후 감사인이 해당 미수금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B사는 미수금을 일시에 당기대손비용으로 전액 상각처리했다. B사는 이중보온관 제조와 설치공사업 등을 하는 회사로 대형건설사 등을 대상으로 열배관공사 등을 수주받아 공사수익을 인식했다.

금감원은 “감사인이 회사의 코스닥 상장 시도 등 재무적 유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익인식 등에 대한 중요한 왜곡표시 위험을 인식하고 구체적인 실증절차를 계획·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리 결과 감사인은 무작위 표본 중 일부 공사현장의 경우 계약서 등 기본적인 증빙을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거래처와 구두상 협의가 됐다는 이유로 계약서상 도급금액과 다른 금액을 기초로 공사수익을 인식하는 B사의 주장을 합리적 의구심 없이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장 추진, 감사인 강화된 감사절차 필요” = 의약품 제조와 판매업을 하는 C사는 주로 도매상과 약품 등에 의약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향후 코스닥 상장 및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기존에 거래가 없던 도매상을 섭외 후 대여금을 제공하기로 하고 이에 대한 대기로 매월 일정한 매출 및 이익을 발생시키는 이면약정을 체결했다. 실물재고의 이동이 없었음에도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외관상 정상적인 매입 및 매출거래인 것처럼 위장했다.

금감원은 “코스닥상장(IPO), 투자유치 추진 등으로 인해 회계부정 및 오류 가능성이 높아진 회사인 경우, 감사인은 회사가 제시한 증빙이나 진술에 대한 면밀한 검증과 분석적 검토, 강화된 감사절차 등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리결과 감사인은 회사가 특정업체와 진단시약 매입 및 매출 거래에서 매월 거래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한 매출총이익을 시현했고 회사에 진단시약 인력 및 설비 등이 미비하고 발주 및 인수서류 등 실물거래 관련 증빙이 전혀 없었음에도 관련 감사증거를 입수하지 않는 등 감사절차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공정거래 22개사 조사 중 = 금감원은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시행 이후 2011년부터 2023년까지 지적사례 155건을 공개했다. 매년 심사·감리 주요 지적사례를 공개해 데이터베이스(DB)에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갈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요 지적사례 공개를 통해 감사인들이 유사사례 재발을 방지하는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한다”며 감사절차 소홀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한편 지난 3월 금감원은 불공정거래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집중조사해서 주식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최근 금감원이 상장폐지 회피를 위해 가장납입, 회계분식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한 부실기업을 적발했기 때문이다.

상장폐지 기업 44개사 중 37개사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거래가 발생해 이중 15개사에 대해서는 조사를 완료해 증선위 의결을 거쳐 조치했고 22개사는 조사가 진행 중이다.

금감원은 “상장에 부적절한 기업이 신규상장을 위해 분식회계, 이면계약 등 부정한 수단을 사용한 혐의가 확인될 경우 철저한 조사 또는 감리를 실시하겠다”고 경고했다. 상장 당시 추정한 매출액 등 실적 전망치가 실제 수치와 크게 차이나는 경우 전망치 산정의 적정성 등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내부에 ‘조사·공시·회계 합동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회계감리 과정에서 확인된 분식혐의 중 불공정거래 개연성이 의심되는 사항을 조사 부서 등과 공유하기로 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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