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외환당국, 지난달 환율 급등하자 시장에 개입

2024-05-03 13:00:03 게재

이창용 “시장에 개입했다” … 달러 매도 이례적 인정

환율조작국서 한국 제외, 한미일 재무장관 합의 영향

일본도 당국 침묵속 약 500억달러 이상 내다판 정황

한국과 일본 외환당국이 지난달 시장 변동성이 커지던 때 비슷한 시기에 달러를 내다판 사실이 확인됐다. 한국은 시장에 개입해 달러를 매도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규모는 언급을 피했다. 거꾸로 일본은 개입한 사실에 대해 침묵했지만 정황상 500억달러 이상 매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일(현지시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을 계기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례적으로 시장개입 사실을 확인했다. 이 총재는 간담회에서 “저희가 개입하겠다고 얘기한 것은 생각보다 변동성이 커졌고, 그 원인이 중동쪽 전쟁에서 촉발된 것”이라며 “경제 펀더멘탈과 관련이 없는 요인으로 일본 엔화와 같이 절하속도가 너무 빨라서 스피드를 조정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시장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현지시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한국은행 제공

이 총재는 환율 급등에 따른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내다판 사실은 인정했지만 언제, 얼마나 매도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시장에서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재무장관 회담에서 3국 경제수장이 원화와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다는 점을 인정하고 공동선언문까지 작성한 시점을 전후한 때로 보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과의 회담에서 “최근 엔화와 원화의 급격한 평가절하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심각한 우려를 인지했다”고 밝혔다. 세 사람은 그러면서 “우리는 기존 G20의 약속에 따라 외환시장 진전상황에 대해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금융안정, 질서있고 잘 작동하는 금융시장을 촉진하기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17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미국 재무부에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가운데),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왼쪽)과 ‘제1차 한·미·일 재무장관 회의’를 가졌다. 워싱턴=연합뉴스

세 사람의 공동선언문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자국 통화가치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미국이 사실상 시장개입을 용인한 것 아니냐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로 지난달 중순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00원을 돌파하는 등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일본도 지난달 하순 이후 일시적으로 달러당 160엔을 넘어서는 등 환율이 요동쳤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당국이 지난달 말에 이어 2일 두 차례에 걸쳐 모두 8조엔(약 500억달러) 규모의 달러를 시장에서 내다판 것으로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일본은행이 2일 발표한 이달 7일 당좌예금잔액 전망에 따르면, 외환시장 개입을 반영하는 ‘재정 등의 요인’에 의한 감소액인 4조3600억엔”이라며 “이는 시장개입을 상정하지 않았던 예상치에서 3조엔 가까이 차이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지난달 29일 5조엔 가량으로 추산되는 개입에 이어 두 차례에 걸쳐 총 8조엔 규모의 엔화를 매입하고, 그에 상응하는 달러를 내다판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외환시장을 총괄하는 간다 마사토 재무성 재무관은 개입 여부에 대해 “내가 말할 게 없다. 노코멘트”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환율의 과도한 변동이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해 일본 정부가 환율 변동성에 대해 간과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외환당국이 나서서 비슷한 시기에 달러를 내다판 것이 확인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 총재가 직접 달러 매도를 인정한 것은 예상밖이다. 물론 한국은행은 사후적으로 ‘분기별 외환시장 안정화를 위한 순거래액’을 2분기쯤 지나서 발표한다. 순거래액이 줄어들면 한은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준비금을 시장에서 내다팔았다는 의미로 시장개입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이다.

실제 최근 수년간 2020년에만 53억5000만달러의 순증가를 빼면, △2019년 -66억7000만달러 △2021년 -141억3000만달러 △2022년 -458억6700만달러 △2023년 -96억1300만달러 순감소했다. 특히 2022년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고, 한미간 금리차 확대로 환율이 급등하자 당국이 막대한 달러를 시장에서 매도했다. 이 영향으로 2022년 평균 외환보유액은 4231억달러로 전년(4631억달러)에 비해 400억달러 감소하기도 했다.

사후적으로 당국이 시장에 개입한 사실을 인정하던 관례에 비하면 이번 이 총재의 발언은 확실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 한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한 점과 지난달 열린 한미일 재무장관 공동선언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 시장에 개입할 때 사전에 미국과 협의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한일 양국 모두 미국의 암묵적 동의하에 달러 매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도 이날 간담회에서 “환율 개입에 대해서 항상 적극적이지 않은 미국 재무부도 (변동성이) 일시적인 것이란 것을 공감했다”고 말했다.

트빌리시(조지아)=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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