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그들은 왜 그 긴 길을 걸었을까
전세계 트래커들에게 꿈의 길이 있다. 바로 미국 서부 시에라네바다산맥과 캐스케이드산맥을 따라 종단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Pacific Crest Trail). 멕시코 국경마을 캄포부터 캐나다 국경 매닝파크까지 이어지는 4285km의 장거리 트레일이다.
이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걷는 스루 하이커라면 적어도 4~5개월을 길에서 보내야 하며, 구간으로 나눠 걷는 섹션 하이커라도 한번에 700~800km를 걸어야 하는 긴 거리일 뿐 아니라 사막과 4000m 고산을 지나고 야생곰과 방울뱀을 만나고 모기떼의 습격을 견뎌야 하는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1세대 여성산악인 남난희와 ‘93 에베레스트 여성 원정대’ 멤버였던 정 건이 5년 동안 PCT을 걸었던 기록들을 책으로 펴냈다. ‘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가 그것. ‘세상에서…’는 1년에 한달씩 5년간 걸은 발자국이자 삶의 현장 기록, 또는 지구환경보고서이기도 하다.
일찍이 높은 산을 버리고 낮은 산에 둥지를 튼 남난희에게 아름답지 않은 길이 어디 있으랴만 특히 이 길은 많은 울림을 준 모양이다. 40년 전 백두대간을 처음 걸은 개척자답게 백두대간과 PCT는 걷는 내내 오버랩된다. 분단으로 허리가 잘려 백두대간 나머지 구간을 걷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 PCT에서 접한 미국의 선진 등산 문화와 이에 대비되는 우리의 현실, 대형산불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과 기후재앙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자연에 대한 함께 길을 떠난 이에 대한 레일엔젤 등 길을 걷는데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남난희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PCT를 걷는 시간들이 ‘기도의 시간, 감사의 시간, 순응의 시간, 신뢰의 시간, 믿음의 시간, 생각의 시간, 그냥 시간들’이라고 적는다. 누구나 책을 덮으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나도 떠나고 싶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