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과 도서관, 상생이 답이다

공공도서관 3천개 되면 초판 3천부 소화

2015-01-19 10:32:23 게재

출판, '책 소비처' 도서관에 관심가져야 … 정가제 개정 논의에 도서관 목소리 못내

박근혜정부의 4대 국정기조 중 하나인 '문화융성'의 출발은 '책'이다. 책은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의 근간인 '이야기'의 무궁무진한 원천이다. 도서관은 그런 책들 중에 지역 주민의 특성에 맞는 양질의 책들을 선정해 제공하는 기관이다. 출판된 책의 1차 소비처이기도 하다. '책과 도서관'은 당연히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책을 펴내는 출판계와 도서관의 관계는 그다지 긴밀하지 않다. 이로 인해 생겨나는 손실은 시민의 몫이다. 보다 좋은 양질의 책을, 적극적으로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셈이다. 출판계와 도서관계가 협력하면 보다 활발하고 적극적인 독서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내일신문은 출판계와 도서관계의 상생의 필요성을 짚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요즘 도서관계는 고민이 많다.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도서관들은 '정가제 예외 기관'에서 제외됐다.

도서관들은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 최대 40%까지 할인을 받아 책을 구매했지만 제도 시행 이후에는 개인 구매자와 마찬가지로 10% 이내의 가격할인을 받을 수 있다. 판매자의 재량에 따라 추가적으로 5% 이내의 경제상 이익을 받게 된다. 때문에 같은 예산을 확보하다 해도 구매하는 책의 권수는 줄어드는 셈이다.



개정 도서정가제는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발의, 지난해 5월 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출판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출판계, 서점계, 온라인서점계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여러 차례 모여 논의를 거듭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도서관계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도서관계는 마치 개정 도서정가제와 관련되지 않은 듯 소외됐다.

그럼에도 도서관계는 개정 도서정가제에 찬성해 왔다. 문화적 공공재인 '책'을 도서관 및 공공부문에서 정가에 구매, 출판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는 뜻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다만 도서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국도서관협회는 개정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한편 '도서관 예산이 확대돼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워 왔다.

윤희윤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은 "개정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도서관계는 논의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면서 "공공기관인 도서관이 책을 정가에 사는 것은 옳은 방향이기 때문에 개정 도서정가제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출판계, 도서관 현안 적극 나서야"

도서관계가 개정 도서정가제에 동의하는 데 전제가 됐던 '예산 확대'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도서관계는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 도서관정책기획단(도정단), 도서관발전국회포럼 등을 통해 지난해 말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주장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도서관계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도서 생산자인 출판계가 도서 구매자인 도서관계의 현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라는 이유다.

윤 회장은 "책의 생산자인 출판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매자인 도서관계를 도와줘야 한다"면서 "출판계를 대표하는 대한출판문화협회 등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도서관계와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서관계는 출판계에 의해 소외된 역사가 오래됐다고 호소한다. 1963년에 제정된 '도서관법'은 1994년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으로 개정됐다. 개정 당시 도서관계는 독립적인 '도서관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현주 한국도서관협회 사무총장은 "도서관법에 붙였던 독서진흥 내용을 떼고 다시 도서관법으로 돌아가는 데 15년 가까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출판계가 도서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지난해 6월 파주출판도시에 설립된 열린 도서관 '지혜의 숲'을 두고 논란이 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의 '지혜의 숲'은 24시간 365일 열린 도서관을 지향하며 국고 7억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도서관이라고 하면 반드시 갖춰야 할 사서나 도서 검색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지혜의 숲'은 사서가 아닌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에 대해 한 도서관계 관계자는 "파주 출판도시문화재단에서 '지혜의 숲'을 만드는 과정에서 도서관계 인사들을 만나 의견을 듣는 작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서관 늘면 출판시장 발전에 기여

도서관 예산이 늘지 않은 대가는 출판계도 함께 치르게 된다. 고정적인 도서 구매처라고 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매량이 줄기 때문이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공공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2014년 출판연감 등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출판산업의 전체 매출은 21조972억원인데 비해 2013년 기준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 예산은 719억7900만원에 불과하다. 조재은 출판사 양철북 대표는 '기획회의' 382호 '도서정가제 이후 출판의 좌표'에서 "OECD 국가들의 대부분은 출판시장 전체에서 도서관 등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0%까지 된다"면서 "외국 사례에 비해 공공부문의 역할이 터무니없이 취약"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비중은 작을지언정 도서관은 책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소비처다. 다행히 고정적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3년 기준 국내 공공도서관의 수는 865개이며 정부는 지난해 "매해 50개씩 공공도서관의 수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결국 출판산업의 안정화에 기여하게 된다.

윤 회장은 "공공도서관의 수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부족하며 출판계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면서 "안정적인 책 구매처의 성장은 출판시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재선 문체부 도정단장은 "일반적으로 출판시장이 안정화하려면 초판 3000부를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고들 말한다"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도서관 수를 늘려 공공도서관 3000개가 지어지면 이 문제를 해결, 출판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 자료구입비 증액 협력해야"

다행스럽게도 출판계에서도 도서관에 관심을 기울이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와 함께 출판사를 대표하는 양대 단체 중 하나인 한국출판인회의는 2013년 '출판진흥 3대 정책과제'로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과 함께 '공공도서관 도서구입비 연 3000억 증액 및 2020년까지 공공도서관 3000개로 증설'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69회 출판포럼 '한국 출판 어떻게 살릴 수 있나?'에서도 도서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도서를 구매할 수 있도록 출판계가 도서관계와 협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발표자로 참여한 조 대표는 "책의 공공적 가치를 인식하고 국민들의 책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려는 도서정가제의 취지에 입각해서 공공부문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출판계와 도서관계는 도서관이 공적인 역할을 하도록 자료구입비를 현행 수준에서 최소한 OECD 국가의 수준에 이르도록 요구하고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협 역시 도서관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장영태 출협 사무국장은 "출판과 도서관은 이와 잇몸과 같은 관계이며 도서관, 서점, 출판이 함께 해야 문화가 발전할 것"이라면서 "개정 도서정가제 관련 도서관의 입장을 이해하며 앞으로 필요한 사안에 대해 도서관계와 함께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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