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경제 | 빈곤의 연대기
가난한 나라가 여전히 가난한 이유
"사다리 걷어차기" 독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후진국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선진국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자기 나라 산업을 철저히 보호해 경쟁력을 갖춘 뒤에는 후진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해 그들이 발전할 기회를 막아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후진국들이 따라 올라오기 전에 사정없이 사다리를 걷어찬 덕분에 후진국들은 선진국의 자원공급지이자 제품의 소비지로 전락했다. 신간의 저자들이 불평등한 세계경제가 고착화된 주된 이유로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사다리 걷어차기'다.
사다리를 걷어차기 위해 강요한 자유무역은 '약탈'이나 다름없었다는 게 저자들의 시각이다.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노예로 끌려갔고, 인도인들은 면방직산업을 버리고 차밭이나 아편밭의 노동자가 됐다.
현대로 오면서 '사다리 걷어차기'는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변형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다국적기업들이 불공정한 세계경제체제를 유지하는 데 앞장선다. 가난한 나라가 여전히 가난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관심을 둬야 할 것은 미래다. 다행히도 빈곤국의 처지를 개선하는 데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조와 공정무역이 가장 흔한 방법이지만 저자는 과연 이런 방법이 효과적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원조는 자칫 현지의 산업기반 형성에 역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고, 원조자금을 독재자가 착복하기도 한다. 공정무역은 명분은 좋지만 인간적인 연민에 의존한다는 한계 때문에 지속가능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저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가난한 나라 스스로 빈곤을 극복해가고 있는 희망적인 사례들이다. 브라질의 쿠리치바는 도시 구성원들이 빈자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 협력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다. 볼리비아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가난했던 나라였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이해집단의 신뢰를 쌓아가며 빈곤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