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공공건축에 전통양식 접목 … 한옥가치 재발견

2015-10-27 10:30:14 게재

도서관·동주민센터에서 자재 재활용은행까지

보존대상 한옥을 주민 공유공간으로 활용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에서 혜화초등학교 방면으로 100m 남짓 걷다보면 오른편으로 커다란 나무대문이 나온다. 묵직한 문 안쪽에는 너른 정원과 ㄷ자형 한옥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혜화동주민센터다. 여느 동주민센터와 달리 툇마루에 한지로 장식한 미닫이문이 있고 문서보관함은 철제 캐비닛이 아닌 전통문양 장이다. 주민사랑방은 뒤주와 문갑으로 장식돼있다.

종로구가 한옥을 단순한 보존 대상에서 주민 공유공간으로 새롭게 활용하고 있다. 국내 첫 한옥 동주민센터인 혜화동주민센터에서 돗자리음악회가 한창이다. 사진 종로구 제공


서울 종로구가 보존대상인 한옥을 공공건물이자 주민 공유공간으로 생활 속에서 활용해 눈길을 끈다. 동주민센터부터 도서관까지 전통양식으로 꾸민 건 물론 철거 한옥에서 튼실한 자재를 인수, 새로 짓거나 증개축하는 주민들에게 판매하는 자재은행까지 운영 중이다. 한옥과 함께 한복 한식 한글까지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키겠다는 취지다.

혜화동주민센터는 대한소년단을 창립한 여의사 한소제 선생이 기거하던 곳. 1961년 선생이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구에서 건물을 매입, 동주민센터로 꾸몄다. 2005년 국내 첫 한옥 동주민센터가 문을 열었지만 일제시대에 지어진데다 사용하면서 일본식으로 변형된 부분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2012년 전통양식으로 다시 복원했다. 직원들은 매달 한차례 한복을 입고 근무하면서 우리 옷맵시도 주민들에 선보인다.

개발로 철거 위기에 처한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 '오진암'은 전통문화시설 무계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낙원동 종로세무서 옆 원래 부지에 관광호텔이 들어서면서 구에서 지난해 3월 부암동으로 옮겨 복원했다. 무계원 자리는 조선 세종의 셋째아들로 당시 문화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안평대군이 지은 '무계정사' 인근이라 더 의미가 있다. 구는 개관 이후부터 세종시대 인문학을 주제로 한 강좌를 비롯해 어린이 서당교실과 다도체험 등 주민공간으로 활용하고 있고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국제회의장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도서관도 한옥 옷을 입기는 매한가지. 봉제산업 밀집지역인 창신·숭인동에는 어린이를 위한 '도담도담 한옥도서관', 청운동에는 인왕산 경관과 어울리는 '청운문학도서관'이 2012년과 지난해 각각 개관했다. 특히 도담도담은 한옥도서관에 걸맞게 보유 도서 가운데 20%를 전통문화 관련 어린이 서적으로 채웠고 명심보감 사자성어 등 한문교실을 운영 중이다. 청운문학도서관은 2015 대한민국 한옥공모전 준공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재개발로 철거되는 한옥에서 수제기와 3000장을 가져와 꽃담에 얹는 등 한옥 보존과 활용에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구기동에는 철거되는 한옥에서 나온 자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재활용은행이 지난 1월 문을 열었다. 연면적 260㎡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보며 도리 서까래 등 나무자재 324개, 기단석 주춧돌같은 돌자재 40개, 기화 1만3000장 등을 보유하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과 손잡고 철거 한옥에서 보존가치가 있는 자재를 매입, 전문가 손으로 다듬어 지역 주민 등에 싼 값에 제공한다. 명륜동1가의 오래된 문구점 대문, 종로6가동 주민 신학길씨 집의 들보 등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구는 문화재기능인협회와 협력해 건축·수선 상담을 연결해주는 한편 한옥과 각종 부재에 대한 안내를 진행 중이고 장기적으로는 직접 자재를 다듬어볼 수 있는 공방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다. 김성일 매니저는 "새 나무는 뒤틀림이나 갈라짐 현상이 심한데 자재은행에서 보관하고 있는 나무는 옛날 좋은 집들에 쓰였던 고급 소재인 춘양목으로 수분에 의한 변형이 거의 없다"며 "철거가 잦지 않아서 지방에서도 문의가 많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내년 6월이면 조선시대 중인들이 모여살던 옥인동에 한옥과 전통문화를 더한 한옥체험관이 문을 연다.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자연을 닮은 집'을 선보인다는 취지다. 김영종 구청장은 "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장인의 혼과 철학이 느껴지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중심에 한옥이 있다"며 "다음 세대도 한옥의 멋을 즐길 수 있도록 보존을 넘어 활용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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