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동 불편한 이웃에 '책 읽어주는' 도서관

2015-12-08 10:16:25 게재

송파구 도서배달 이어 낭독서비스까지

도서관마다 동네특성 반영한 특화사업

"글은 단문이 좋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논리 글도 마찬가지다." "논문은 그냥 짧은 글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서울 송파구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도 읽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낭독서비스를 시작했다. 오진희씨와 두 딸이 송용헌씨 집을 방문, 책을 읽어주고 있다. 사진 송파구 제공


서울 송파구 문정동 문정시영아파트 송용헌(61)씨 집에서는 2주에 한번꼴로 저녁 노을 사이로 낭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교통사고로 경추장애를 입고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뒤 침대와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는 송씨를 대신해 오진희(47·송파2동)씨가 '글쓰기 특강'(유시민 저)을 읽는 중이다. 송씨는 눈으로 책을 읽는 대신 귀로 듣고 소화한다.

송파구가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위해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운영해 눈길을 끈다. 도서관까지 책을 빌리러 나오기 어려운 이웃들에 자원봉사자가 대신 대출·반납을 맡는 배달서비스에 이어 시작한 '책 낭독 서비스'다. 구립 거마도서관에서 상대적으로 소외계층 주민이 많은 동네 특성을 분석, 특히 사회적 교류가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해 기획했다. 김경순 거마도서관 소장은 "장애인들은 통상 외부인과 접촉을 꺼리기 때문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 협력 기관과 의논했다"며 "배달·낭독서비스를 하는 봉사자와 인연을 맺고 거부감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송파자원봉사센터 송파솔루션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7월부터 두달간 협의, 8월 '문화누리서비스' 발대식을 열었다. 자립생활센터에 등록된 장애인 대상 수요조사 결과 13명이 신청, 자녀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겠다는 12가족과 연을 맺었다. 봉사자들은 장애인 가정을 방문할 때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 등 준비기간을 거쳐 10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책 선정은 수혜자에 맡긴다. 다만 1~2주에 한번 책을 접하기 때문에 줄거리가 이어지는 소설보다는 수필이나 논평 종교서적 등 단락이 끊어지는 종류를 택한다. 봉사자들은 사생활에 대한 개입이나 배달·낭독 이외의 봉사는 최소화하면서 서비스 지속성을 꾀한다.

송용헌씨는 벌써 일곱차례나 낭독서비스를 받았다. '글쓰기 특강'은 그가 장애와 함께 한 삶을 자서전으로 남기기 위한 준비 단계로 구입한 책. 24시간 활동보조인 도움을 받아 침대에 누워 생활하다보니 직접 읽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특히 지난 여름에는 욕창까지 발생, 잠깐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다. 활동보조인에 의지, 독서를 시도했지만 머리글도 채 넘기지 못하던 차에 오씨를 만났고 벌써 한권을 다 뗄 참이다. 송씨는 "직접 책을 보면서 소리내 읽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도가 떨어지지만 이제는 머릿속에 활자가 그려진다"며 "책장에 있는 책을 다 읽고 싶다"고 말했다. 글 솜씨를 키우기 위해 직접 고른 작품들이다.

정보 소외계층이 많고 주민간 정보격차가 큰 거여·마천지역에서 낭독서비스는 단순한 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김선이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소득과 무관하게 가족이나 활동보조인이 있어도 낭독 봉사자와의 만남은 일상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며 "봉사자도 청소년 자녀와 함께 하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오진희씨도 딸 재아(19)·재인(16)이 하교시간에 맞춰 방문, 낭독시간이 길어질 때면 딸들에 책 읽기를 맡기곤 한다. 그는 "낯선 사람에게 한시간씩 어떻게 책을 읽어주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며 "평소 책과 친하지 않아 이렇게라도 책 읽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송파구는 거마도서관에서 시작한 실험이 성공적이라 판단, 내년에는 장지동 송파글마루도서관으로 확대하고 2018년까지는 송파구 전체 공공도서관에서 배달·낭독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동시에 동네별 특성을 반영한 특화프로그램을 강화할 방침이다. 역사유적이 풍부한 풍납동 소나무언덕1호 작은도서관 '역사야 놀자', 다문화가정이 밀집한 마천동 소나무언덕3호 작은도서관 '다문화, 그림책으로 통하다', 6개 초중고교 사이에 자리잡은 송파2동 소나무언덕4호 작은도서관 '책, 영상을 만나다' 등이다.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지역별 특성에 맞는 도서관 서비스를 지속 개발, 책 읽는 송파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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