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표 노동개혁' 곳곳에 암초

2015-12-23 10:49:30 게재

두산 등 명퇴바람에 여론 악화 … 노동계 반발, 국회논의 지지부진

정부의 노동개혁 밀어붙이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곳곳에 암초가 가득하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가장 큰 가치로 일자리 창출을 꼽고 있지만 기업들의 내년 신규채용 전망은 되레 현상유지 내지는 축소가 대세다. 여기에 두산인프라코어와 금융권의 대규모 희망퇴직은 더욱 더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여기에 양대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회에서는 관련법을 놓고 여야간 신경전만 거듭하고 있다.
고용노동청 앞 양대 노총│지난 11일 직무능력 중심의 인력운영 방안 모색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가 열린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두산인프라코어 학습효과? = 두산인프라코어 대규모 구조조정은 노동개혁 최대 악재로 꼽힌다. 올 들어서만 무려 네 차례에 걸친 구조조정에 최근에는 신입사원까지 포함시킨 퇴직강요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여론의 반감이 워낙 거세지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신입사원은 제외시키기로 전격 결정했지만 여론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특히 정부에서는 그동안 노동개혁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임금피크제 등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는 정부의 1차 노동시장 구조개혁 추진방안 발표시 임금피크제 도입 모범사례로 소개된 바 있고, 지난 2012년에는 고용창출 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노동개혁의 모범사례가 결국 대규모 희망(명예)퇴직으로 이어진 셈이다.

양대노총이 이를 두고 박근혜정부의 노동개혁 미래가 바로 두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민주노총은 '해고가 미래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경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마구잡이 해고의 칼날을 휘두르는 살풍경은 내년엔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면서 "고용안정은 멀고 명예퇴직, 희망퇴직 구조조정은 가깝다. 말이 좋아 명예고 희망이지 사실상 정리해고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두산그룹의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이 '해고가 미래다'라는 암울한 구호로 바뀐 것이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청년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경영계의 민낯이 드러났다"면서 "두산인프라코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이미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있고 노동자들은 저항한번 못하고 맥없이 짤려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단 두산뿐만이 아니다. 금융권에서도 대규모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최근 업계 1위인 신한카드가 7년 이상 근무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키로 했다. 아울러 IBK 기업은행도 연말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여기에 국민은행,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 은행권 대부분은 올 들어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다. 말이 좋아서 '희망퇴직' '명예퇴직'이지 사실상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해고에 가까운 셈이다.

갈수록 나빠지는 여론 = 지난 22일 직장인 전용 SNS 블라인드(BLIND)를 서비스 중인 팀블라인드(공동 대표 정영준 문성욱)의 '희망퇴직 관련 설문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팀블라인드가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장인 가운데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2015년 희망퇴직이 있었다고 응답한 6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과반수가 훨씬 넘는 77 %가 '올해 희망퇴직 시행 과정에서 회사가 퇴직을 압박하는 것을 보거나 실제 본인이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회사가 희망퇴직을 강요한 방식'을 묻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응답자가 '희망퇴직 거부 시 인사 발령, 정리해고 등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압박(32.8%)'을 선택했다. 그 뒤를 '희망퇴직 대상자로 정해졌다는 통보(29.4%)', '부서별 인원 할당으로 반드시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압박(12.5%)' 등 이라고 꼽았다. 결국 상당수 희망(명예)퇴직은 본인의 희망이나 바람과는 무관하게 희망퇴직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13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6년 최고경영자(CEO) 경제전망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 235곳 CEO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3%가 내년도 긴축경영 계획을 밝혔다. 특히

내년도 채용계획에서도 대기업은 '소폭 축소'라는 응답이 36.8%로 가장 많았고, 중소기업은 '금년 수준'이라는 응답이 56.1%로 나타났다. 결국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내년에 인력채용 계획을 '현상유지' 내지는 '축소'로 가닥을 잡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얘기하는 일자리 창출 청사진이 무색할 정도다.

국회 상임위 통과조차 불투명 = 그동안 정부 개혁안을 반대해 온 노동계는 급기야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한국노총 단위노조 대표자 연석회의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임시국회 종료일인 내달 8일까지 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노총의 9·15 노사정 합의 파기 및 노사정위 즉각 탈퇴 △새누리당 노동법 개정안 직권상정 반대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 강행하는 고용노동부 장관 퇴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은 23일 노총회관에서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연석회의가 주장하는 '노사정 합의파기', '노사정 탈퇴' 요구에 대한 입장을 조율할 예정이다. 노사정 회의 주체로 참여했던 김동만 현 집행부가 이를 수용한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적잖은 부담이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이 18일째 국회 앞 1인 시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런 부담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민주노총 역시 24일까지를 대규모 농성기간으로 정하고 전국에서 1000명 이상의 간부들이 상경해 국회 앞 농성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국회에서 여야간 논의는 좀처럼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해당 상임위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조차 제대로 된 안건심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환노위 법안심사소위는 23일 개재되지만 여야간 이견이 커 논란이 예상된다.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까지 가기엔 아직도 '산 넘어 산'인 셈이다.

결국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노동관련 5법은 물론이고, 노동계의 반발이 큰 일반해고 등 양대 지침까지 밀어붙이려면 적잖은 저항을 감내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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