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조선 선비의 산수기행
사랑채에 누워 산수경개나 볼까나
동양의 사대부, 조선의 선비들은 특히 산을 좋아했다. 하늘처럼 받드는 공자님이 일찍이 '인자요산'(仁者樂山, 논어 옹야편)이라고 했으니 '인자'를 최고의 모델로 생각했던 선비들 입장에서는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안될 터였다.
하지만 교통도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등산로 또한 개척되지 않아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산이 많았다. 더구나 사회적 신분과 체력적 한계 등을 고려하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만이 좋은 산을 찾아 '인자의 도'를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중국이나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서는 일찍이 '와유(臥遊)'라는 개념이 성립했다. 한자를 풀면 '누워서 유람한다'로 '다른 사람이 본 산수풍경을 집 안에서 간접 체험한다'는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산수화의 연원도 따지고 보면 '와유'였고, 산을 오른 선비들이 쓴 '유람록'의 독자도 바로 '와유층'이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하지만 사랑채에 누워 이름난 산수를 감상하는 호사는 선비들만이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특권이었을 것이다.
조선 선비들의 팔도 명산 유람기가 한권의 책으로 나왔다. 돌베개가 펴낸 '조선 선비들의 산수기행'이 그것.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정원림(1731~1800)이 쓴 '동국산수기'를 저본으로 삼고, 여타의 산수기에서 몇편을 가려뽑아 모두 20편의 유산기(遊山記)를 한권에 수록했다. 20편의 저자 중에는 이황, 채제공, 주세붕, 최익현 등 낯익은 선비들이 등장한다.
성리학을 깊이 체득한 선비들의 글인 만큼 이들 유산기는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다. 그 안에 철학이 있고, 인생관이 있고, 당시의 시대상이 녹아 있다.
'조선선비…'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산의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집필시점을 기준으로 계절순으로 재배치했다. 또한 각편마다 작가와 작품해설을 곁들였고,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조 때 제작된 '해동지도' 도판을 넣어 정성을 더했다. 편역자들은 "애초 물(水)에 대한 글도 있었으나 고르다보니 산에 대한 것만 남았다"며 "기회가 되면 물에 대한 글도 소개하고 싶다"고 밝혔다. 더운 여름 직접 산을 오르지 못할지라도 옛선비들의 유산기를 보며 '와유의 체험'을 해보는 것은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