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 모순 여전 … 세계는 '새로운 모델' 요구"

2016-12-27 11:36:26 게재

'자본주의 4.0' 칼레츠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가 내포한 심각한 모순과 결함이 드러났지만, 해결은 요원한 상태라는 진단이 나왔다. 올해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정치적 격변들은 전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정치경제적 모델을 요구하는 징후라는 것이다. 게이브칼 드래고노믹스(Gavekal Dragonomics)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공동 의장이자 '자본주의 4.0'의 저자, 타임스·뉴욕타임스·파이낸셜타임스 경제평론가인 아나톨 칼레츠키는 '프로젝트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 "2008년 위기 이후의 정치 경제적 혼란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며 "향후 새로운 경제모델을 갈구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을 예고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기고문 전문.

올해 가장 놀랄 만한 정치적 사건은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는 사실 그 자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자본주의 4.0'이라는 책을 한 권 썼다. 정치와 경제적 붕괴는 최소 5년의 시차를 두고 서로 주거니받거니 상호작용한다는 내용이다.

역사적 사례가 있다. 1848년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공산당선언'에서 묘사된 것처럼 첫 번째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가 붕괴하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전례없는 권리를 부여하는 개혁법안들이 서둘러 마련됐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대영제국이 무너지면서 뉴딜정책과 복지국가가 등장했다. 1968년 이후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쇠퇴하면서 영국 대처 수상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가 급부상했다.

나는 '자본주의 4.0'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의 4번째 파열음이 또 다른 격변을 가져올 것이라 예견한 바 있다. 자본주의의 특정 모델이 원활하게 기능할 때엔 물질적 풍요가 정치적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경제가 실패하면, 그리고 그 실패가 일시적 국면이 아니라 근본적 모순으로 인해 심각한 징후를 동반할 때엔,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사회적 부작용이 정치적 악성종양으로 악화될 수 있다.

2008년 이후 전 세계에서 벌어진 상황이 바로 그렇다. 자유무역과 탈규제, 통화정책 만능주의가 실패하면서 일시적 금융위기가 아닌, 항구적인 긴축과 경제적 실망이 이어졌다. 위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불평등과 실업, 문화적 혼란은 이제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었다. 마치 1950~60년대 높은 세금이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합법성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거대한 전환기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민과 무역, 소득불평등에 대한 불만을 점진적으로 바꾸려는 개혁론자는 전체 시스템을 뒤엎으려는 급진적 정치인에 패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급진론자들의 주장이 옳기도 하다.

질좋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는 추세를 이민이나 무역, 기술발전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국가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데 반해, 그렇게 형성된 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분배되지 않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긍할 수 있는 분배가 되려면 최소 두 가지 측면에서 정치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첫째, 기술발전과 글로벌화로 인한 풍부한 공급을, 수요가 따라잡을 수 있도록 거시경제적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1980년대 배척당했지만 9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다시 부상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이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재정적자 우려로 다시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

케인스주의적 수요관리로 복귀하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경제적 혜택이 될 수 있다. 그는 비효율적으로 판명된 통화부양책 대신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겠다고 여러 차례 예고한 바 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중앙은행 독립과 인플레이션 타깃팅과 같은 통화주의를 버리고 수요관리를 최우선으로 둬 고용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경우 거시경제적 사고로의 전환은 기대난망이다.

둘째, 사회적 산출물과 경제구조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관련해 보다 중대하고 지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시장근본주의는 중대한 모순을 숨기고 있다. 자유무역과 기술발전 등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들은 사회 전체에 혜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국가 전체의 부가 늘어나면 큰 몫을 차지하는 승자가 적은 몫을 분배받는 패자에게 보상을 베풀기 때문에 그 누구도 궁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와 기업에겐 꼭 혜택만은 아닐 수 있다.

이른바 '파레토 최적'(다른 사람이 불리해지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유리해질 수 없는 상황)으로 불리는 법칙은 자유시장 경제학을 위한 도덕적 근거가 된다. 이론상으로 자유주의 정책이 정당화되려면 승자의 몫을 사회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패자에게 재분배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치인들이 오히려 반대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각국 정부는 금융과 무역의 규제를 대폭 풀어 전 세계적 경쟁을 첨예화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켜왔다. 이는 승자가 패자에게 소득을 재분배해야 하는 필연적 상황을 만들었다.

하지만 시장근본주의 옹호자들은 재분배를 망각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걸 금지하는 역주행으로 치달았다.
물론 핑곗거리는 다양하다. 세금과 복지비용, 정부 개입 등이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고 동기부여의 기세를 꺾어 결국 사회 전체의 경제성장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처 수상의 저 유명한 주장에 따르면, 사회라는 존재 따위는 없다. 오직 개별 남자와 여자, 가족이 있을 뿐이다. 특정 계층의 고통을 무시하고 사회 전체의 혜택만 강조하면서 시장근본주의자들은 자신의 핵심이념인 개인주의를 깡그리 무시한다.

올해의 정치적 격변이 보여주듯, 사회적 혜택과 개인적 고통 사이의 치명적 모순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역과 경쟁, 기술진보 등이 자본주의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는 동력이 되려면, 대처와 레이건이 터부시했던 '정치개입을 통한 경제적 과실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터부를 깨자는 것이 고율의 세금, 인플레이션, 70년대의 정부 의존적 문화로 되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과 통화정책을 미세조정하는 것처럼, 글로벌화와 기술발전에 고통받는 노동자와 공동체에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재분배정책을 미세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금을 직접 배분할 수도 있지만 그같은 경우 오히려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멀어지게 해 장기 실업이나 은퇴의 길로 밀어붙일 우려가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법이나 지역적·산업적 보조금을 통해 고용과 소득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성장의 과실을 재분배할 수 있다. 독일과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가 대표적 사례다. 이들 나라는 고숙련 직업교육과 노동자, 대학 밖 청년에 대한 재교육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가방끈이 짧아도 노력만 있다면 중산층 이상의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말이 궤변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각국 정부가 정반대 경로를 밟아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부분 나라들은 누진적 세금구조를 역진적으로 바꿔왔고, 교육 예산과 산업, 지역적 보조금을 줄여왔다. 대신 조기은퇴를 유도하고 노동의욕을 꺾는 연금제도나 건강보험, 현금지급 등에 예산을 배정해왔다.

또 각국 정부의 재분배정책은 저소득 청년노동자들을 외면해왔다. 이들의 일자리와 임금은 자유무역과 이민정책의 직접적 타격에 무방비로 노출돼왔다. 정부는 대신 경영진, 금융엘리트처럼 글로벌화의 최대수혜층이나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상당 부분 보호받을 수 있는 확정적 연금을 받는 노령의 은퇴자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올해 영국과 미국 등에서 벌어진 정치적 격변이 대부분 노령의 투표자들로부터 비롯했다는 사실이다. 젊은 투표층은 오히려 현상유지를 지지했다. 이같은 모순은 2008년 위기 이후의 정치 경제적 혼란이 아직 종료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향후 새로운 경제모델을 갈구하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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