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성과연봉제 '원점 재검토' 굳어져
유력 대선주자들 '백지화' 선언 … 금융권 노사협의 지난 연말 이후 진척 없어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성과연봉제가 사실상 백지화 수순으로 접어들고 있다. 성과연봉제는 박근혜정부의 금융개혁 핵심과제 중 하나다. '박근혜노믹스'의 퇴장과 함께 성과연봉제 역시 막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성과연봉제 등 금융개혁은 박근혜정부 임기 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 확정되면서, 박근혜정부 주요 정책 중 하나였던 '금융개혁'이 동력을 잃고 있다. 특히 성과연봉제는 공공기관 개혁 핵심과제로 추진한 '금융구조개혁정책'의 일환이었다.
◆유력 주자들 백지화 선언 줄이어 = 우선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줄줄이 '백지화'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추진의 불법성, 효율성을 놓고 노조가 격렬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기 정부마저 노조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더구나 '성과연봉제=박근혜정부 나쁜정책'으로 인식되고 있어 정부 차원의 추진동력이 사라진 상황이다.
지난 18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공노총 집행부 출정식에 대선주자들이 대거 참석해 "성과연봉제 즉각 폐기"를 다짐했다. 성과연봉제 백지화가 유력 주자들의 대선 공약으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무원은 2007년 참여정부 당시 딱 한 번 대정부 교섭을 벌였지만,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대화조차 없었다"며 "대정부 교섭 재개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의 성과급제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공직사회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정권교체 즉시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이재명 성남시장 역시 '성과연봉제 폐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대선후보인 심상정 상임대표는 "공직사회에서 공공성보다 효율성을 들이미는 행태야말로 낡은 적폐"라며 "대통령이 된다면 성과연봉제를 즉각 폐지하고 공무원 노동기본권과 정치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세 후보는 일단 노조의 '폐지' 주장에 '적극적 동의' 방침을 확인했다.
다른 후보들도 '즉각 폐지' 수준은 아니어도 최소한 '백지화'에는 동의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7년 동안 지방정부를 이끌면서 공무원 조합원들에게 많은 약속을 했고 실천했다"며 "정치인이 직업공무원의 군기를 잡고 부패를 만들어 온 악순환을 반드시 끊어 내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공직사회의 무한 실적경쟁으로 행정서비스 협업체계가 무너지면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합리적 인사평가제도와 담당 직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경선 예비후보인 박주선 국회부의장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공노총의 11대 추진과제에 찬성의견을 밝혔다.
◆'일방추진' 불법논란 소송 중 = 지난해 연말까지 기획재정부 주도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119곳에서 성과연봉제 적용을 완료했다. 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이 노사합의가 어려워지자 '이사회 결정'으로 성과제 도입을 선언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30개 공공기관 노조들은 법원에 성과연봉제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내며 법적 분쟁으로 확산됐다. 최근까지 가처분신청 가운데 16건은 기각, 4건은 인용됐으며 10건은 심리가 진행 중이다. 노조는 가처분신청이 기각된 곳은 조만간 본안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이다.
차기정부가 성과연봉제를 그대로 추진하더라도, 소송결과에 따라 백지화될 가능성이 여전한 상태다.
여기에 노조의 반대가 극심하다는 점도 변수다. 지난 연말 노조위원장 선거에서는 성과연봉제 반대투쟁을 내세웠던 후보들이 대부분 유임되거나 새로 선출됐다. 금융권의 경우만 하더라도 금융노조 위원장에 '성과연봉제 반대'를 전면에 내걸었던 허권 NH농협 노조위원장이 당선됐다. 경영진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조했던 KB국민은행은 노조위원장 선거 재투표와 법정싸움 끝에 박홍배 후보 당선이 확정됐다. 박 후보는 2차투표까지 5명 후보 가운데 가장 강성 후보로 알려져 있다. 국민은행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노조 안팎에서는 "경영진이 강성인 박 후보 당선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무산된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적어도 조합원, 중하위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성과연봉제 반대'가 대세임을 확인한 셈이다.
실제 공공운수노조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한 결과, 83.8%가 "정부·노동자 또는 사회적 대화로 성과연봉제를 재논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는 지난 2월 24~25일 전국 성인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정국추이 지켜본 뒤" = 지난해 금융당국의 종용으로 노사갈등을 감수하며 성과연봉제를 추진했던 금융권은 최순실게이트 이후 잠잠해진 모습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신한·KB국민·NH농협·KEB하나 등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지난해 말 이사회에서 의결한 성과연봉제에 대해 진전된 논의를 한 곳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시중은행들이 다소 무리하게 성과연봉제 확대를 결정한 것은 금융당국의 압박 때문"이라며 "그러나 실제 도입하기 위해서는 노조와 협의를 해야 하는데 아직은 정국추이를 지켜보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야권 성향의 차기정부가 들어설 경우, 지난해 해체수순을 밟았던 사용자협의회가 재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작년에는 노조와 대화가 어렵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의 종용으로 금융사들이 금융노조의 대화 파트너였던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한 바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별은행간 노사협의는 은행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10년 이상 유지해왔던 노사대화의 채널을 재개통하는 문제도 논의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