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농업 시장화 후퇴않을 것"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
"가족단위 농가경영으로 식량생산량 지속 증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농업부문에서 진행 중인 시장화 현상을 되돌리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전망이 나왔다. 동독처럼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장기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고 농업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안드레이 란코프(55) 국민대 교수(사진)는 15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남북농업협력 심포지엄'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러시아 레닌그라드대학(1980~1990) 출신의 란코프 교수는 2013년 '리얼 노스코리아(진짜 북한)'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북한 전문가다. 레닌그라드대학 재학 시절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편 고르바초프 서기장 시절이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북한을 방문했고, 최근까지 북한 소식을 듣고 있다.
란코프 교수가 주목하고 있는 김정은 농업개혁은 포전(浦田, 논밭의 북한식 용어)담당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6·28방침에서 포전담당제를 강화했고, 2014년 5·30조치 이후 본격 실시 중이다.
북한 농가는 협동농장에서 자신이 소속된 분조에서 담당 포전(논밭)을 받는다. 김 위원장은 1개 분조의 규모를 10~25명에서 4~6명으로 줄였다. 사실상 가족단위 경영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또, 생산물 중 일부만 현물세로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는 농가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포전담당제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란코프 교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현물세는 토지 비옥도에 따라 다르다"며 "좋은 땅이면 30%, 척박한 땅이면 10%"라고 밝혔다. 현물세를 뺀 나머지는 농가가 시장(장마당)에 내다 파는 등 알아서 처분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정책은 지방에서 장마당을 활성화하는 토대가 된다.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새로운 농업정책을 시작하자 식량상황이 많이 좋아졌다"며 "한국과 세계 언론이 북한 가뭄과 홍수를 요란하게 보도하지만 이것은 너무 과장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일 시대 말기 연간 460만톤 수준에 머물던 북한 식량생산량이 2016년 543만톤, 올해 590만톤(예상)으로 늘어났다는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통계를 근거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런 조치가 지속가능할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농가를 새로운 생산단위로 인정하기 보다는 '분조'라는 개념으로 묶어두고 있다. 북한 농민들이 사실상 개인 농사를 시작했지만 같은 논밭에서 몇 년이나 일할 수 있는지 모르고, 개혁조치가 아무 때나 취소될 가능성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에 대해 란코프 교수는 북한이 농업개혁을 뒤로 되돌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사회주의 사상을 신봉하기 보다 현실주의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게 주요 근거다. 그는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현실주의자"라며 "북한의 젊은 엘리트층 가운데 사회주의 사상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이는 1960~70년대 소련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란코프 교수는 "김정은은 중국처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강력한 매력을 가진 남한 때문에 (북한 체제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쇄국정책을 엄격히 하면서도 인민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농업에서 시작한 개혁을 뒤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