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조선 무인의 역사, 1600~1894년
조선의 무과는 체제 수호의 완충장치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공로가 있는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해 무과를 대규모로 시행했다. 1609년부터 1894년 사이 실시된 무과 가운데 254번의 무과에서는 한번에 100명이 넘는 합격자를 양산했다.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해도 합격할 수 있었다. 무과는 더 이상 국방을 위한 순수한 의도로 시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백성들은 합격해도 무관이 될 수 없었던 무과응시에 더욱 열을 올렸다.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를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많았다. 조선 조정은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를 무과를 통해 일정 부분 해결한 것이다.
물론 관직 권위의 실추 등 또 다른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지만 조정이 택할 수 있었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지배층들은 독점적으로 향유했던 문화의 일부 특히 과거 합격이라는 중요한 관문 특히 무과의 관문을 피지배층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체제불만이라는 충격을 흡수했다.
조선의 역사는 1392년부터 500여년이나 지속됐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왕조이지만 식민지배로 결말지어졌기 때문에 그동안 조선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 공부한 저자는 무과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종종 간과돼 왔던 방법론과 이론적인 이슈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1608년부터 1894년 사이 실시된 총 477회의 무과에 대해 현존하는 자료를 기반으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무과와 같은 조선 후기의 특정 제도들이 어떻게 피지배층들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었는지 그리고 정부의 부정부패와 농민의 몰락과 같은 문제가 계속되는데도 왕조가 지속되는 데 어떻게 공헌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