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위기, 왜 역사상 최악이 됐나

2018-10-01 11:43:00 게재

2008년 금융위기, 미국만의 문제였나 에서 이어집니다

영국과 독일 역시 단호했다.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독일 재무장관인 페어 슈타인브뤽은 "금융위기는 미국의 문제"라며 "그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유일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 역시 "미국식 자유방임주의는 종말을 고했다"고 선언했다.

유럽 입장에서 '미국만의 위기'라는 생각은 나름대로 타당했다. 미국은 잘못된 전쟁에 발을 깊이 담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거부했다. 게다가 미국은 버는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은 미국의 금융위기를 '당연히 받아야 할 벌'(comeuppance)로 여겼다.

하지만 '미국만의 문제'라던 자신감 넘치던 예측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유럽 은행들이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 깊게 관련됐을 뿐 아니라 은행의 사업모델 역시 달러 펀딩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유럽대륙은 미국보다 심각한 경제, 정치적 위기(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에 빠져들었다. 아직도 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유럽의 망상은 2017년에도 여전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지난해 8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해 "10년 전 금융위기는 유럽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며 "근본적 문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시장이 막대한 리스크에 노출됐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유럽의 경기침체가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EU)과 회원국의 정치적 결단을 통해 유럽 내 경기침체를 완화할 수 있었다고 자화자찬했다.

보도자료의 발표 시점은 의미심장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정한 시작으로 간주하는 사건의 1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9일 프랑스 은행인 BNP파리바는 3개의 투자펀드를 동결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자산담보부증권(ABS) 시장에 변동성이 확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2007년초부터 시작된 집값 하락이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파문을 던지고 있다는 첫 번째 공식 신호였다. 같은 날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럽 은행시스템에 1310억달러의 유동성을 공급한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물론 미국의 모기지 시장 시스템은 고장났다. 모기지 대출의 상당수는 사기범죄였다. 그리고 모기지 증권을 설계한 과정에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상당수 모기지 증권은 악성 모기치 채권들을 한데 묶어 최고등급(AAA)의 합성채권으로 둔갑시켰다.

하지만 모기지 시스템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를 심화시키고 가속화했던 정확한 이유는 아니다. 2000~2001년 닷컴버블 붕괴 때 투자자들은 더 많은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위기로 몰아넣지는 않았다.

2008년 위기가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가 된 데는 은행들의 새로운 영업모델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은행들은 이른바 '소매금융'(retail banking)을 통해 자금을 모은다. 소매금융은 개인이나 기업이 은행에 '예금'이라는 형태로 돈을 빌려주고, 은행들은 그 예금으로 대출사업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전 세계 은행들은 점차 '도매금융'(wholesale banking)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은행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금융기관끼리 단기에 거액을 빌려 영업하는 형태다. 이러한 전환의 이유는 이익 높이기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였다. 도매금융 덕분에 은행들은 소매시장에서보다 훨씬 큰 돈을 빌릴 수 있었다. 보다 많은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보다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됐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에 진짜 위협은 미국과 유럽, 나아가 러시아와 아시아 등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다는 사실뿐만은 아니었다. 환율 미스매치와 관련된 단기 펀딩 역시 크나큰 위협이었다. 외국의 은행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달러가 필요하다. 달러는 다양한 방법으로 도매시장에서 얻을 수 있었다.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무담보로 대출 받는다든지, 단기 무담보 어음(CP)을 발급한다든지, 통화스와프 시장을 이용해 자국의 통화를 달러와 단기에 교환하는 등의 방식을 썼다. 즉 외국계 은행들은 달러로 갚아야 하는 부채를 계속 쌓아나갔다. 만약 달러를 공급하는 자본시장이 기능을 멈춘다면, 전 세계 많은 은행들은 즉각 도산에 빠질 터였다.

그리고 그같은 우려가 현실화했다. 거대 은행 중 첫 번째로 와르르 무너진 곳은 영국의 모기지 은행인 노던록이었다. 2007년 8~9월의 일이었다. 노던록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관련이 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영업모델은 전 세계 도매금융 시장에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었다. 같은 해 8월 9일 프랑스 BNP 파리바 은행이 펀드 동결을 공개하자 노던록 은행에 연결된 자금줄이 차단됐다. 노던록 사태를 보며 도매시장에서 자금을 공급하던 기관들은 더 많은 은행이 생각 이상의 악성 자산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신호로 여겼다. 알려지지 않은 리스크 전염 우려 때문에 도매시장을 통한 자본 수요공급 활동은 정지됐다. 위기에 빠진 지 닷새 만에 노던록 은행은 영국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은행들의 펀딩이 갑작스레 전면 중단된 것은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거대한 파문을 던졌다. 러시아와 한국 등 서브프라임 사태와 관련이 거의 없는 곳도 큰 충격파를 입었다. 도매시장에 의존하는 은행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2007년말 전 세계는 1조달러를 넘는 초국가적 뱅크런을 손놓고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보통 글로벌화를, 중국과 인도와 같은 신흥국 시장의 부상과 관련된 것이라고, 제조업과 상품 교역 측면과 관련된 것이라 여긴다. 이 나라들이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초 글로벌화는 미국과 유럽 등 대서양 양단을 축으로 금융 측면에서 진화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07년말 유럽 은행들이 달러로 빌린 채무와 보유중인 달러 자산과의 차액이 최소 1조달러에서 최대 1조2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호황기 때엔 은행들이 통화스와프 도매 시장을 통해 쉽사리 달러를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은행간 자금을 주고 받던 시장이 말라붙으면서, 유럽 은행들은 달러를 얻으려 혈안이 됐다.

2007년 가을 미국은 유럽 은행들이 달러 빚을 갚기 위해 달러 포트폴리오를 대거 허물어버릴 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유럽 은행들은 미국의 고위험 저신용도의 모기지 담보 증권 29%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유럽 은행들의 자산 투매는 유럽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유럽이 달러 자산을 덤핑해 모기지 담보 증권 가격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렇게 되면 모기지 담보 증권을 대량으로 갖고 있는 미국 은행들 역시 대규모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전면적 뱅크런은 시간문제였다. 미국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화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대서양 양단에 위치한 미국과 유럽 모두 금융이 동시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역대 최악이라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연준을 투입하다

재앙의 위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가 화두였다. 2008년 가을 서구 전반의 국가들은 비틀거리는 금융기관을 구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국 워싱턴 정가는 베어스턴스와 패니매, 프레디맥, 거대 보험사 AIG를 직접 지원키로 했다. 영국은 금융보험그룹인 스코틀랜드 핼리팩스 은행(HBOS)과 로이즈 그룹,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를 국영화했다. 벨기에와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스위스는 금융권 전반에 긴급자금을 지원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

위기가 확산하면서 외교를 통한 대응책도 시도됐다. 2008년 11월 주요 20개국 모임(G-20)이 처음 열렸다. 선진국은 물론 브라질 중국 인도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가들도 망라한 모임이었다. G-20 모임의 탄생은 신흥국 시장의 비중이 높아져 세계 경제가 다극화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위기 대응을 꺼리게 됐다는 점도 시사한다.

IMF는 많은 개도국이 싫어하는 기구였다. 워싱턴 정가 누구도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때 벌어졌던 '위기해법 논쟁'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IMF는 자금을 받는 위기국을 상대로 매우 가혹한 개혁조치를 요구하면서 국권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물밑에서 대안적 구제조치를 준비하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세계의 은행들이 달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충족해줄 단 하나의 기관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였다.

연준은 2007년말 유럽 은행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연준 버냉키 의장과 뉴욕연방은행 티모시 가이트너 총재는 이미 월가 은행들에게 특별한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은행의 재정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거의 무이자로 공급했다. 절박한 은행들이 모기지 담보 증권을 투매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즉각 유럽 은행들도 연준에 손을 벌리기 시작했고 연준이 이에 적극 응했다. 유럽 은행들은 연준이 '기간입찰대출'(Term Auction Facility)이라는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통해 풀어놓은 자금 3조3000억달러 가운데 절반 이상을 가져갔다. 그리고 2008년 3월부터 12월까지 연준이 시행한 '싱글 트랑쉐 공개시장조작'(Single-Tranche Open Market Operation)이라 불리는 또 다른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의 72%를 가져갔다. 크레딧스위스 은행 1곳이 싱글 트랑쉐 지원금의 1/4 이상을 차지했다.

연준이 외국계 은행들에게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유럽이 달러 자산을 투매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위기가 깊어지면서 연준 지도자들은 유럽에게 월가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에 접근을 허용하는 것만으론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럽의 달러 자금 수요는 막대했다. 게다가 미국에 양질의 담보를 제공하기도 어려웠다. 뉴욕 연은 가이트너 총재는 유럽 은행들에 달러를 공급하는 간접적 메커니즘에 의존했다. 오랫동안 잊힌 이름이었던 '유동성 스와프 라인'(liquidity swap line)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내일신문 2017년 8월 11일 10면 '10년 전 터진 금융위기 정말 극복했을까', 2017년 8월 14일 8면 '연준 통화스와프, 사실상 국제금융시스템 됐다' 참조).

유동성 스와프 라인은 중앙은행들끼리의 계약을 말한다. 즉, 연준과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일시적으로 통화를 교환하는 것이다. 연준이 상대국 중앙은행에 일정 규모의 달러를 제공하고, 그에 상응하는 상대국 통화를 받는 것이다. 외국 중앙은행은 연준에게 소정의 이자를 지급한다.

유동성 스와프 라인은 196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 하의 금-달러 연동제에서 활용됐던 것이다. 당시 각국은 금이나 달러를 확보해 자국 통화 가치를 지켜야 했다. 환율 불균형이 잦았고 이 때문에 유동성 스와프 라인이 적극 활용됐다.

하지만 70년대 초반 금-달러 연동이 파기되면서 유동성 스와프 라인은 점점 잊혀갔다. 1994~95년 멕시코 페소화 위기 때 다시 등장한 것이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그러다 2007~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로써 유럽과 중남미, 아시아 주요국 은행들이 달러를 빌리기 위해 거대한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됐다. 은행간 자본 수급 시장이 경색될 경우 연준이 직접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스와프 라인의 주요한 혜택은 일본이나 유럽, 주요 신흥국 중앙은행들이었다. 이들 나라는 비틀거리는 은행을 살리기 위해 연준으로부터 직접 달러를 빌렸다. 연준은 2007년 12월 유동성 스와프 라인을 열었다. 한도를 6200억달러로 설정했다. 2008년 10월 13일엔 달러 공급 한도를 없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무제한 달러 인출권을 얻었다. 2008년 12월 연준 재무제표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일 채권항목은 스와프 라인이었다. 만기도 하루부터 3개월까지로 다양했다. 2007년 12월부터 2010년 8월까지 연준이 스와프 라인을 통해 공급한 유동성은 4조5000억달러에 약간 못미쳤다. 그중 ECB가 2조5000억달러를 가져갔다. 유럽 은행들의 공멸을 막아준 건 연준의 스와프 라인이었다.

스와프 라인을 중앙은행들끼리의 내부 계약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심대한 전환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사실상 연준의 역외 지점으로 기능하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연준이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 된 것이다. 2008년 이전에는 많은 경제학자들이 달러의 투매, 붕괴를 예견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결국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대한 연준의 지배력을 더욱 크게 높였다.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하면서 연준은 전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매력을 더욱 높였다.

하지만 스와프 라인을 개설하면서 연준은 각국 중앙은행의 서열을 매겼다. 1순위는 ECB와 영국 스위스 일본 캐나다의 중앙은행들이었다. 브라질과 멕시코 싱가포르 한국 등이 그 다음이었다. 중국 인도 러시아는 스와프 라인에서 배제됐다.

스와프 라인을 개설한 연준 고위급들은 중국 인도 러시아를 배제하게 되면 지정학적 문제를 건드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스와프 라인에 포함될 14개국을 선정하면서 연준은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의 승인을 받았다. 2008년 10월 29일 연준 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2개국 중앙은행이 스와프 라인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인지는 생략됐다.

스와프 라인은 비밀이 아니었지만 적극 홍보되지 않았다. 연준은 자신이 세상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표하려 하지 않았다. 유럽의 거대 은행들이 무능력해 수조달러를 빌려갔다는 사실이 공표되면 미국 경제에도 크나큰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각국 중앙은행들도 자국 은행들에게 낙인을 찍고 싶지 않았다. 세계 주요 은행들이 달러 펀딩에 사활을 걸었다는 내용이 알려지면 국제 시장에 더 큰 공포를 줄 수도 있었다. 때문에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구한 연준의 조치는 대체적으로 망각됐다. 전례없는 연준의 개입은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졌다.

유동성 스와프 라인 규모는 2009년 빠르게 줄었다. 민간 신용시장이 회복되면서다. 2011년 미국 대법원이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낸 블룸버그통신의 손을 들어주면서 유동성 스와프 라인의 세부내역이 공개됐다.

다가올 위기, 수호천사는 누구?

하지만 현재 스와프 라인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잊혀진 이야기다. 유럽위원회(EC)는 미국이 만들어낸 위기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바클레이스와 도이체방크와 같은 유럽 은행들은 연준으로부터 수천억달러를 지원받았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미국의 은행과 달리 우리는 정부 지원 없이 위기를 헤쳐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포린어페어스는 "그같은 설명의 잘·잘못을 떠나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상호의존적이지만 양측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 서서히 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포린어페어스에 따르면 2008년은 전환기다. 한편으로는 21세기 글로벌 금융위기의 독특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론 20세기를 관통한 미-유럽의 역사적인 상호의존 네트워크로 위기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한때 견고했던 관계는 양측의 지도자들이 분열하면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은 위기의 결과로 달러가 전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 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 달러의 글로벌 GDP 비중은 60%를 밑돌았다. 하지만 현재는 약 70%까지 높아졌다. 후퇴한 건 미국의 금융이 아니라 유럽의 금융이다.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그 이후에도 허약체질의 유럽 은행들은 반복적으로 미국에 지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극에 달한 2010년 연준은 유럽에 대해 스와프 라인을 다시 열었다. 2013년 11월 연준과 ECB 간 유동성 스와프 라인은 상설화됐다.

유럽 은행들의 위기가 반복되면서 이제 연준이 유럽 은행의 안정성에 회의적인 시선을 갖게 됐다. 2010년 바젤 금융감독 위원회에서 협상을 하는 동안 미국과 유럽은 금융규제와 자본 요건 강화를 두고 충돌했다. 같은 해 7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에 서명한 이후 연준은 미국에서 영업하는 유럽 은행들에게 '법조항을 지키든지, 아니면 미국에서 나가라'고 통고했다.

포린어페어스는 "2008년 금융위기의 결과,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긴밀했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9~2017년 '글로벌 GDP에서 은행들의 대외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22%p 하락했다. 금액으로는 약 9조5000억달러다. 금융 국제화의 정도를 보여주는 이 지표가 감소한 이유는 바로 유럽 은행이다. 위기에 빠진 상당수 유럽은행이 2009년 미국에 대한 채권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도이체방크가 월가에서의 활동을 줄이겠다고 결정한 건 유럽 금융이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유럽 금융이 세계무대에서 퇴장하자 신흥국이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연준의 제로금리로 달러를 싸게 빌리는 일이 가능해지면서 신흥국이 미국 달러 금융시스템에 깊숙이 들어왔다. 2015년 기준 중국 기업들은 외국돈 표시로 된 부채를 1조7000억달러나 지고 있었다. 대부분 달러 표시 부채였다. 중국 투자금융 부문의 달러 수요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이는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수익을 낼 좋은 기회가 된다. 중국이 글로벌 금융에 통합된다는 징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상황전개는 새로운 위험을 만드는 법. 포린어페어스는 "연준이 2008년 위기를 대응할 수 있었던 기초는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형성된 미국과 유럽의 끈끈한 관계였다"며 "현재 대서양 양측의 관계가 불안정해지면서 다음번 금융위기가 닥칠 때 연준이 다시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이어 "10년 전에 비해 연준의 재량권이 크게 줄었다는 점, 미국 내 정치적 환경이 크게 변했다는 점, 다음 위기의 진앙지가 신흥국, 특히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준만으로는 다음 번 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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