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킨지, 기업 허리 와해한 뒤 CEO에 경영 집중시켜
▶ "'맥킨지(경영컨설팅기업)'는 어떻게 중산층을 파괴했나" 에서 이어집니다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능력주의의 함정' 저자 대니얼 마코비츠에 따르면 포춘지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기자인 월터 키츨은 2009년 저서 '전략의 신'(Lords of Strategy)에서 "컨설턴트들이 기업의 경영기능을 엘리트 경영진에 집중시키면서 공개적으로 기업과 사회의 계층 조성을 추구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경영기법을 브랜드화해 기업의 중간 간부를 배제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것.
기업컨설팅에 관한 또 다른 설명은 1998년 발간된 '주술사'(The Witch Doctors)라는 책에서 엿볼 수 있다. 존 미클스웨이트가 쓴 이 책은 우리나라에 '누가 경영을 말하는가'로 출간됐다. 이 책에 따르면 CSC 소속 컨설팅회사는 MIT슬론경영대와 함께 기업 내 조직재구성 기법을 개발했다. 조직재구성의 목적은 불필요한 구성원을 도태시키는 것. 정확히 이야기하면 '중간 관리자'다. 그런 뒤 남아 있는 인원을 한데 모아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 미국 통신기업 GTE와 애플, AT&T 자회사 퍼시픽벨 등은 조직재구성을 이유로 조직 축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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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킨지는 '간접비 가치분석'(OVA)이라 불리는 기법을 통해 조직축소 경로를 짰다. 맥킨지는 '20세기 중반 기업들이 중간 간부의 경영 판단에 과도하게 의존했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OVA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맥킨지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1975년 5월호 기고에서 "OVA를 통한 조직축소는 신속하긴 하지만 고통이 없을 리 없다"며 "간접비는 일반적으로 사람과 관계된 것이 70~85%다. 대부분 비용 절감은 직원감축에서 온다. 간접비를 줄이는 것은 고통스런 결정을 요구한다"고 인정했다.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은 1980년대 말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간부들을 '기업관료' 또는 '무능력한 데다 동종교배하는' 사람들로 규정하기도 했다.
경영컨설턴트들이 개발한 기법에 따라 미국 기업들은 조직을 재편성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랫동안 '해고는 없다'고 장담해온 기업들도 너나없이 새로운 기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업이나 경영에 특별한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경영적 기풍이 부는 것에 적극 호응해 조직을 축소했다.
기업들은 이익이 나거나 안 나거나, 호황일 때나 불황일 때나 조직을 축소했다. 그런 흐름이 절정에 달한 것은 이례적으로 강한 경제호황이 지속됐던 1990년대였다. AT&T는 한 부서 내 중간간부 대 일반직의 비율을 1대 5에서 1대 30으로 줄이려 했다. 전반적으로 중간 간부는 일반 노동자에 비해 2배 넘게 감축됐다. 조직 축소는 매우 고통스러웠다. IBM이 1990년대 종신고용제를 폐지할 당시, 지역의 간부들은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본사 주변의 총기매장을 돌아다니며 '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생산직 노동자들도 그로 인한 회오리바람을 피하진 못했다. 경영컨설팅사의 조언을 받은 기업들은 일반직에게 남겨진 경영 참여 기능과 통로, 그에 따른 혜택을 폐지했다. 기업들은 노조를 와해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한때 밝은 미래를 약속했던 일자리는 우울해졌다.
물류운송업체 UPS는 오랫동안 '정직원 고용'과 '내부 승진 원칙'으로 이름을 높인 회사였다. 하지만 1993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쓰임새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UPS 노동자들이 가입한 전미트럭운송노조 '팀스터스'(Teamsters)는 이에 항의하며 1997년 파업에 돌입했다.
구호는 '비정규직의 미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Part-time America won't work)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UPS를 과거의 고용관행으로 되돌리는 데 실패했다. UPS는 이후 50만명 이상의 비정규직을 고용했다. 그 가운데 승진 턱을 낼 행운을 얻은 사람은 고작 1만3000명에 그쳤다.
미국의 민간기업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960년 30%대에서 2016년 6%대로 하락했다. 해고된 노동자들 일부는 같은 기업의 하청계약 노동자로 재고용됐다.
하지만 언제든 계약해지 당할 수 있었고, 회사경영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건 엄두도 못 냈다. IBM이 1990년대 대규모 감원을 시행했을 때, 5명 중 1명은 '컨설턴트'라는 명목으로 재고용됐다. 다른 기업들은 하청계약 모델에 기반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의류업체 베네통은 1500명의 정직원을 두고 있지만 2만5000명의 노동자를 하청계약으로 돌려 재활용하고 있다.
정규직에서 불안정한 임시직으로의 전환은 현재도 빠르게 지속되고 있다. 긱경제(Gig Economy)는 사실 하이테크 시대에 일반화된 하청계약 모델이다. 우버는 더욱 극단적인 베네통이다. 운전자가 경영계획이나 업무조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아예 없다. 상하 이동이 가능한 기업의 계층사다리에 아예 끼지를 못한다. 승진은 엄두도 못 낸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경영컨설팅은 사실 종신직 노동자를 단기 비정규직, 또는 하청계약 노동자로 교체하는 데 쓰이는 도구다.
마코비츠 교수는 "경영컨설턴트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변화를 선두에서 지휘한다. 노동자들이 경영적 기능 참여에까지 오르는 것을 원천 봉쇄한다"며 "기업 경영과 컨설팅 기업이 결합하면서 탄생한 새로운 종족은 이제 알고리즘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조립라인 노동자나 판매직 일자리를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 경영업무 자체를 자동화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의 기능이 불필요해졌거나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영과 조정의 기능을 중간 간부와 생산직 노동자들에게서 빼앗아 소수의 최고경영진에 몰아준다는 의미다. 경영 계획과 업무 조정을 독점하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민주적 경영체제는 일반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줬고 엘리트 경영진의 힘을 약화시켰다. 따라서 나쁜 CEO라 해도 회사에 큰 해를 끼치지 못했고, 좋은 CEO라 해도 회사에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늘날 최고 경영진들은 막대한 통제권한을 행사한다. 그 결과로 경영에 따른 경제적 수익을 사실상 모두 가져간다. 20세기 중반 대기업 CEO는 일반적으로 생산직 노동자 임금의 약 20배를 가져갔다. 오늘날 대기업 CEO는 대략 300배 가까운 보수를 받는다. 최근 수년 동안 S&P1500 소속 기업(약 7500명의 최고경영자들) 중 5대 기업 CEO들이 전체 1500개 기업 총수익의 약 10%를 가져갔다.
경영컨설턴트들에게 능력주의란 조직재구성이다. 앞서 월터 키츨은 "일부 돼지는 다른 돼지들보다 똑똑하기에 더 많은 돈을 받을 만하다"고 썼다. 경영컨설턴트들이 중간간부와 일반직의 인원감축, 엘리트 경영진의 폭발적 보수 상승을 합리화하는 데 쓰는 말이다. 따라서 기업의 조직재구성 기법은 사실 탄생부터 기술적 의미보다 이념적 의미가 컸다.
마코비츠 교수는 "경영컨설턴트들은 미국 기업의 '군살을 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lean and fit) 경영기법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계층제를 고착화하면서 경영진을 '비대하고 비열하게'(fat and mean) 만드는 것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경영 기능을 소수에 집중시키는 모델은 최고경영진에게 고도의 집중력과 능력을 요구한다. 동시에 조직재구성은 기업 내 유망한 노동자들을 경영진으로 공급하던 과거의 경로를 흩트러 놓았다. 노동현장을 통한 내부 교육을 삭제하고 기업의 계층 사다리에서 중간 간부들을 축출하면서, 컨설턴트들은 경영 인재들을 외부에서 수혈할 것을 강권한다. 일류대학 엘리트 졸업생이나 MBA 출신, 경영컨설팅 기업 소속 컨설턴트들이다.
1세기 전 미국 기업 대표들의 대학 졸업률은 5명 중 1명꼴이 채 안됐다. 오늘날 최고경영자들은 일반적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학사는 물론 MBA도 거친다. 그리고 경영컨설팅사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많은 CEO들은 컨설팅기업에 몸 담았던 이력을 갖고 있다. 포춘 선정 500대 기업 CEO 중 맥킨지에 몸 담았던 CEO만 70명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모간스탠리 등의 현직 CEO 또는 COO가 맥킨지 출신이다. 실제 전 세계에서 맥킨지보다 더 많은 CEO를 배출하는 기업은 없다.
물론 컨설팅사에 몸담았던 경영컨설턴트들은 일을 잘한다. 3대 컨설팅사로 꼽히는 맥킨지와 베인앤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정기적으로 두자릿수 매출 상승률을 자랑한다. 현재 연매출 200억달러, 5만명에 육박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표 덕분에 경영컨설팅기업들은 일류대학 재학생과 졸업생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경영컨설팅은 월가 금융사와 함께 최고로 선망하는 직종이 됐다.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예일대 졸업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인기직장이다. 스탠퍼드대 졸업생들은 컨설팅과 금융, 기술기업 세 분야를 선호한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은 1953년까지 맥킨지에 졸업생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하버드 졸업생의 1/4가 컨설팅사로 간다. 와튼스쿨 졸업생들은 제조업 대비 컨설팅 종사 비율이 10배 이상 높다.
경영컨설턴트들이 받는 초임을 보면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맥킨지는 학사 졸업생에게 1만달러에 육박하는 연봉을, MBA 졸업생에겐 2만달러 가까운 연봉을 준다. 맥킨지는 이익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 내부 정보에 따르면 맥킨지에서 파트너로 일하는 컨설턴트들은 평균 수백만달러 연봉을 받는다고 한다.
맥킨지의 영향력은 단지 경제적 숫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맥킨지는 엘리트주의를 끊임없이 고양한다. 입사시험에서 철저한 분석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제해결 기술을 테스트하는데, 사전 지식이 없는 문제들이다. 어떤 산업이나 기업도 못 풀었던 문제들이다. 따라서 맥킨지에 입사한다는 건 그 자체로 최고 대학에서 최고 성적을 거뒀다는 의미다. 맥킨지는 또 가장 뛰어난 엘리트 졸업생들을 영입한다. 로즈장학생 마셜장학생들은 MBA 졸업생과 직위와 보수에서 동등하게 대우 받는다. 맥킨지는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우리보다 더 많은 로즈장학생, 마셜장학생들을 보유한 기업은 없다"고 자랑한다.
맥킨지는 능력주의를 자랑스럽게 강조한다. 맥킨지의 임무 선언문엔 "뛰어난 인재를 위해 비교할 수 없는 직무 환경을 제공한다"는 문구가 있을 정도로 일류대학과 맞먹는 지적분석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자사 컨설턴트들의 전매특허 분석능력은 그 어떤 기업 자문단도 감히 도전할 수 없다고 장담한다.
최근 MBA 졸업생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맥킨지는 골드만삭스와 바클레이스를 제외하고 MBA 졸업생들에게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기업이었다. 맥킨지에서는 제때 승진하지 못하면 퇴사해야 하는 관행이 구축돼 있기도 하다.
월터 키츨은 앞서의 저서에서 "경영컨설팅 기업들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동자들의 산업적 경험이 아니라, 엘리트 인재들의 아이디어에 기반해 권력과 권위를 얻었다"고 썼다.
마코비츠 교수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피트 부티지지로 되돌아간다. 그는 "부티지지는 맥킨지 인재상에 완벽하게 부응한다"고 지적했다. 부티지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싶어 맥킨지에 입사했다"며 "맥킨지는 MBA 학위가 없는 나에게서 기회를 포착하려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 시사월간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맥킨지로부터 배운 교훈들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맥킨지에서 일하면서 민간과 공공, 비영리 영역에서 제기되는 흥미로운 문제와 도전과제를 해결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런 부티지지는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사우스벤드 역사상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돼 일했다. 이젠 주정부, 연방정부 공직 경험 없이 미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되려고 꿈꾸고 있다.
마코비츠 교수는 자신이 부티지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유에 대해 "컨설팅 혁명의 중심적 역할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었다는 점"이라며 "미국은 현대판 카스트제도 사회로 접어들었다는 위기감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마코비츠에 따르면 부티지지처럼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기업 전략뿐 아니라 가치를 통째로 바꿨다. GM은 좋은 차를, IBM은 우수한 타자기와 컴퓨터를, AT&T는 효율적인 통신기기를 개선하려고 열망했다. 기업 내부에서 승진한 경영자들은 20세기 중반 모델을 통해 생산에 대한 그같은 가치를 공유했다. 그들에게 이익이란, 기업 경영에 따라 긍정적으로 주어지는 부수적 효과였다.
하지만 경영컨설팅은 특정한 산업, 특정 기업에서 경영진을 분리했다. 이제 일반적인 경영진이 있다. 그들은 모든 기업에 공통적인 단 한가지 일에 대처해야 한다. 주주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이제 경영진은 새로우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모델에서 양산된다. 경영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의 산출이다. 마코비츠 교수는 "부티지지는 이러한 세계관을 정치판으로 끌고 들어온다"며 "부티지지 선거 캠페인을 보면 '전 국민에 기본 의료를 보장하자'는 헬스케어에 대한 강력한 비판 언사를 들을 수 있다. 그가 쓰는 특정한 단어은 민간 보험사 팸플릿에 들어있는 문구를 그대로 끄집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티지지의 믿음은 위험하다"며 "기술관료적 경영인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미국의 중산층을 뒤흔들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맥킨지를 필두로 한 경영컨설팅 기업의 기술관료 엘리트들이 미국 중산층에 어떤 실체적 위험을 가했는지에 무감각한 것이다. 그것을 망각하는 건 악의에서 나온 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무지하고 멍청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코비츠 교수는 "개인의 미덕 또는 윤리를 강조하는 것은 도덕과 양심의 가책을 흡수할 희생양을 만들어내거나 또는 부정한 시스템으로 향하는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결과적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하는 일"이라며 "소수의 엘리트가 미국의 경제와 정치 체제를 목조르고 있다. 소수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폭넓게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