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기본소득 도입? 고심 깊어지는 기재부
지자체는 이미 시행 중, 정치권 압박은 커지고
"세원 줄고 있는데…" 문 대통령 결정에 달려
그렇다고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충당하는 것도 정부 입장에선 부담이다. 증세는 사회적 공감대와 정치권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시간이 걸린다. 이 때문에 기재부 내부에서는 '우선 순위'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국가재정이 △직접피해 구제와 방역 △저소득층 생계 긴급지원 △소상공인·기업 유동성 강화(도산 방지) △재난기본소득의 순서로 순차적으로 투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27일 "적어도 내년까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고 세원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면서 "피해구제와 방역, 자영업자와 기업 의 유동성 강화에는 신속하게 재정을 투입해야겠지만, 재난기본소득 등의 문제는 차분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5조원의 재원이 있다면 모든 국민에게 10만원씩 주는 것이 좋을지, 자영업자 도산 방지를 위해 보증재원으로 사용할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남기의 소신발언 배경은 =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난기본소득 요구에 소신 발언을 이어가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홍 부총리는 지난 15일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 의지를 밝힌 현금성 지원책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일부 국가의 경우, 영업장 폐쇄, 강제적 이동제한 등 경제 멈춤 위기(Sudden Stop)가 사실상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긴급부양책, 재난수당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며 "일각에서 실제 사용처가 없는 상태에서 돈을 푸는 엇박자 정책이 될 가능성도 지적한다"고 말했다.
재난기본소득 주장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더구나 얼마 전 홍 부총리는 국회에서 추경안 증액 여부를 놓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 경질설이 나오기도 했다.
관료 출신의 홍 부총리가 여권 핵심 인사들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지만, 국가적 재난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의 신임을 등에 업고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현금성 지원 요구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절충형 재난소득 도입하나 =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자치단체장들의 재난기본소득 도입 요청에 대해 '검토'를 약속한 상태다.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 별로 경쟁적으로 재난소득을 도입하면서 '엇박자'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청와대 결심 여부에 따라 '절충형 재난소득'을 도입하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수 국민을 지급대상으로 하되, 생계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좀 더 많은 액수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기획재정부는 31일 예정된 대통령 주재 제3차 비상경제회의에 지원방안 별 시나리오를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전 국민에게 똑같이 10만원씩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진짜 생계지원이 필요한 층을 선별해 20만~30만원씩 더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한국은 미국처럼 현금(달러)을 무제한 찍어내 지원할 수 있는 기축통화국들과는 사정이 다르다"면서 "재정건전성 악화는 결국 증세 등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경우 중위소득자 이하를 대상으로 '재난 긴급생활비'란 이름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각종 수당을 받고 있는 가구를 제외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서울 지역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4인 가구 소득기준 474만9174원) 중 정부의 소득 지원을 받지 않는 117만7000가구에게 월 30만~50만원을 '재난 긴급생활비'로 지급하기로 했다. 이달 30일부터 서울시 복지포털에서 온라인 접수를 통해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선불카드를 받으면 6월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정부의 '절충형 재난기본소득'은 총선 이후 추진될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지급방침을 확정하더라도 △지급 대상·금액·시기 △재원 규모 △조달 방식 △지원제도 명칭 등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