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의 '유니버시티 로드'를 기대하며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실리콘밸리 스탠퍼드대 앞 유니버시티 로드 한 식당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테이블 곳곳에서 노트북을 사이에 둔 채, 아이디어와 기술을 설명하는 청년들과 그 속에서 진주 같은 벤처기업을 찾고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투자자들이 열띤 미팅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벤처기업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는 이런 장면들이 성장기반이 됐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장한 세계적 기업들이 정보통신(IT) 바이오기술(BT)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의 원동력이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대학가에선 여전히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학생과 투자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보다, '고시촌', '공시족'과 같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더 자주 언론에 비춰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우리 모습은 '반이 비워진 물컵' 일까, 아니면 '반이 채워진 물컵' 일까? 필자는 '반이 채워진 물컵'으로 보고 싶다. 우리나라 대학의 R&D 투입은 연간 6.1조원(2018). 대학이 창출하는 특허의 수 2만여건(2018)에 달한다. 특허의 품질을 높여야 하는 과제는 있지만, 교수와 학생들의 창의적인 연구 성과는 끊임없이 창출되고 있다. 즉, 물컵에 물이 반은 채워져 있는 것이다.
이제 채워야 할 나머지 반은 명확해 보인다. 우수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에 자금을 공급하여, 기술을 상용화하고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금융투자가 필요하다. 특허기술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과 민간펀드가 늘어나고, 지식재산 투자가 활성화 될 때, 청년 창업자들이 혁신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혁신기업을 바탕으로 산업과 국가 경제도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대는 최근 기술이전 수입료 부분에서 전국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동안 특허기반연구개발( IP-R&D)와 특허기술의 전략적 사업화 지원을 통해 고부가가치 핵심특허 창출과 활용에 집중한 결과다. 그런데 만일 우리대학의 핵심특허들이 금융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술이전만이 아니라 조인트벤처와 같은 실험실 창업을 통해 대학이 보유한 기술을 직접 사업화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투자처를 찾지 못한 유동 자금은 여전히 넘쳐 난다고 한다. 이러한 유동 자금이 대학 또는 중소·벤처기업이 보유한 특허 등 지식재산에 투자된다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위기 돌파'라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가에도 학생들이 투자자들과 갑론을박하며, 창업의 꿈을 키우는 '유니버시티 로드'가 펼쳐져야 한다.
정부와 대학, 그리고 금융업계가 다함께 노력해, 우리 대학 및 벤처기업의 창의성과 지식재산에 금융 투자가 더해져 물 컵을 채워나갈 때, 비로소 혁신의 성과는 넘쳐 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