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들, 기후변화에 립서비스만?

2020-07-02 12:14:09 게재

오일프라이스

코로나19 팬데믹에 글로벌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긍정적인 것을 찾기 어렵다. 미 의회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팬데믹에 올해 글로벌 경제 규모는 약 6% 위축될 전망이다. 국제 경제와 무역, 나라간 정치적 관계가 어긋나면서 장기적 피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에너지전문매체 '오일프라이스'는 1일 "에너지업계는 다른 부문보다 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석유와 가스 수요는 급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한 줄기 희망이 있긴 하다. 녹색에너지다. 과거 여러 차례 신재생에너지의 시대가 온다는 예언이 있었지만, 들어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녹색에너지가 주류로 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일부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지만, 대안에너지 소비는 화석연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장들이 한목소리로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제롬 파월 의장은 올 1월 "연준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며 "각국은 기후변화의 위험에 맞서 회복탄력적이고 왕성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도 "기후변화 대처를 우선순위에 놓겠다"고 공언했다. 영국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는 "기후변화로 인한 금융적 위협에 대처하려면 새로운 금융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녹색에너지의 증시 실적은 좋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신재생에너지를 도덕적 의무와 연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주요 투자처로 삼은 건 아니었다. 화석연료의 저렴한 비용이 주는 매력이 여전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신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해 비용을 크게 절감시키고 있다. 이젠 보조금 없이 화석연료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준에 이르렀다.

2010~2017년 태양광, 풍력 발전 비용은 각각 81%, 62% 감소했다. 천연가스와 석탄 비용과 동급이다. 공장의 경제적 기대수명과 건설비용 등을 고려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따지면 태양광과 육상 풍력이 석탄과 천연가스보다 더 저렴한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신재생에너지는 전력을 어떤 방법으로 생산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인 '에너지 믹스'(Energy Mix)에서 점차 큰 역할을 맡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새롭게 보태진 발전용량 중 태양광과 풍력, 수력, 지열, 바이오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가 72%를 차지했다.

석유 수요가 거의 30% 하락한 현재, 신재생에너지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에너지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올해 1분기 신재생에너지의 글로벌 사용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 글로벌 에너지 믹스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019년 말 기준 28%로, 전년 동기 26%에서 상승했다. 대신 석탄과 천연가스 비중이 그만큼 줄었다.

투자자들은 이제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30개 거대 유틸리티(수도·전기·가스 등 공익사업)와 녹색에너지 주식을 추종하는 'S&P글로벌 클린에너지 인덱스'는 지난 2년 동안 배당금을 포함해 37% 수익률을 보였다. 같은 기간 S&P500 지수 수익률은 18%였다. 또 미국내 등록된 친환경에너지 기업들을 중심으로 취합한 'SPDR S&P켄쇼 클린파워 ETF'(CNRG)는 2018년 10월 출시된 이래 현재까지 70% 수익률을 냈다. 한편 태양광 관련 글로벌 주식을 골라 담은 '인베스코 솔라 ETF'(TAN)은 올 1월부터 현재까지 13.4%, 2019년 1월 기점으로는 80% 수익률을 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제 성숙 단계 기술로 예측가능한 장기적 수익을 제공한다는 평가다. 현재 가장 핫한 부문은 배터리 저장 부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에서 운영중인 유틸리티급 배터리 저장 능력은 2014년 214메가와트에서 2019년 3월 899메가와트로 4배 이상 늘었다. EIA는 유틸리티 규모 배터리 저장 능력이 2023년 180% 늘어 2500메가와트를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스위스 UBS은행은 미국 에너지 저장 시장이 향후 10년 동안 426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을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는 공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수백억달러를 들여 석유와 가스 기업들을 구제하고 있다.

연준의 자산은 올해 3조달러 늘었다. 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채 등을 지속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영국 소재 싱크탱크 '인플루언스 맵'은 연준이 미국 석유, 가스 부문 채권을 약 200억달러 사들이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ECB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은 연준보다는 녹색을 띤다.

하지만 그린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ECB 역시 화석연료에 76억파운드를 투입했다. 그동안 회사채 매입액 300억파운드의 1/4 규모다.

오일프라이스는 "생존에 성공한 화석연료 기업들은 결국 기후변화 목표와 갈등을 빚을 것은 뻔하다"며 "결국 납세자의 돈은 또 다시 기후변화 대처에 투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중앙은행들은 자신이 '행동주의'로 보이는 것을 경계하며 몸을 사리고 있다"며 "적절한 법제화가 이뤄져 중앙은행이 직접 기후변화 대처에 나설 수 있도록 임무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 대처와 관련해 계속 립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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