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기록 열람시 범죄 신고자 정보 보호해야”

2020-08-20 11:26:55 게재

법원, '마약 혐의' 피고인에게 신고자 이름.전화번호 내 줘

인권위 “사건관계인 개인정보 보호 기준 미흡해" 의견표명

재판기록의 열람 및 복사 과정에서 개인정보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범죄 신고자의 개인정보가 보호되기는커녕 기록 복사 과정에서 그대로 노출돼 범죄 피고인에게 전화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법원의 '재판기록 열람·복사 예규' 등이 목격자·신고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데 미흡하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19일 인권위에 따르면 견인차량 운전기사로 일하는 진정인은 2017년말에 교통사고 가해차량을 견인하다 차량 안에서 주사기 등 마약범죄와 관련된 물품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난해 9월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2년 전 자신이 신고했던 마약 사건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게 됐는지 따져물은 결과 피고인의 모친이 재판 준비를 위해 법원에 사건기록 전체 복사를 신청했고 이 중 경찰이 작성한 내사보고 내용 중에 사건 신고자인 진정인의 이름과 연락처가 기재돼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진정인은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해당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사건기록을 교부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조치란에 '불요'라고 결재했다. 이에 따라 법원 담당자는 신고자인 진정인의 성명, 연락처 등이 기재된 사건 기록을 그대로 복사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형사소송법 제35조에 따르면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소송중인 사건에 대해 관련 서류나 증거물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다. 이 때 재판장은 목격자, 신고자 등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 보호조치 여부를 결정한다.

인권위는 이 법에 따라 운용 중인 '재판기록 열람·복사 규칙', '재판기록 열람·복사 예규' 등을 검토한 결과, 해당 규정이 증인.신고자.목격자.제보자 등 사건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에는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피고인 측에 재판기록을 열람·복사해 주는 경우 존속살해, 촉탁살인, 강간, 마약 등 강력범죄 사건 중 신원관리카드가 작성된 사건, 신고자 등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가했거나 우려되는 사건 등으로 개인정보 보호조치 대상을 매우 좁게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또 "진정인과 같이 마약범죄와 관련하여 신고 등을 한 경우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제8조에 따라 일반적으로 인적사항 공개가 금지됨에도 법원은 위 예규에서 보호조치 대상을 특정범죄신고자 중 신원관리카드가 작성된 사건으로만 한정하고 있어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서 “이런 사례가 재발하기 않도록 관련 규정에 증인.신고자.목격자.제보자 등 사건 관계인의 개인정보를 보호조치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봐서 의견표명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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