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풍에 원전 정지가 사고라는 주장을 해부한다
9월 8일자 내일신문에서는 '핵폭탄과 핵발전의 차이를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었다. 이것은 이준택 탈핵에너지교수모임 공동대표(전 건국대 이과대학장. 핵물리학)의 주장을 담은 것인데 사실과 다른 주장이 많아서 검토의 글을 쓴다. 우선 물리적으로 원자핵반응을 이해할 지라도 원자력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공학적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생물학자와 의사는 다르다.
첫째, 태풍에 원전이 발전을 정지했다는 것이 규정상 '사고'로 간주된다고 하였다. 그런 규정은 없다. 송변전설비에 고장이 발생하여, 전력을 송출할 수 없게 되면 원전을 정지시키는 것은 정상적인 조치이다. 이를 원전의 고장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수돗물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상수배관이 유실되어 수돗물을 보낼 수 없으면 생산을 중단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둘째, '소외전원 상실'이 심각한 사고라고 하였다. 원전에서 발생하는 일은 사고(Accident), 사건(Incident), 단순사건(Event)으로 분류된다. 소외전원 상실은 사고가 아니라 이벤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Nuclear Event Scale에도 소외전원 상실을 사고로 분류하지 않는다.
셋째, "정전이 되면 원자로 내 제어봉 작동이 제대로 안되고 이 경우 더 많은 중성자들이 핵분열을 일으켜 통제불능의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어봉은 중성자를 잘 흡수할 수 있는 물질이다. 제어봉은 원전을 정지시키고자 할 때는 언제든지 삽입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제어봉구동장치는 원자로와 일체형으로 제작되어 있고 제어봉구동장치와 제어봉은 전자석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전자석이 더 이상 제어봉을 잡고 있을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제어봉은 중력에 의해 자동적으로 낙하하여 원자로 내부로 삽입된다. 제어봉이 작동이 안된다는 얘기는 제어봉 구동장치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다. 중력이라는 자연력을 사용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에도 삽입되도록 한 것이다.
넷째, '우라늄-235 농축도가 90%이상이 되어야 핵폭탄을 만들 수 있고 핵폭탄에 사용되는 우라늄이 1kg 미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원자로에 우라늄이 4000톤이니 농축도가 3-4%밖에 되지 않아도 폭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것도 무리한 주장이다. 알코올 농도가 낮은 맥주는 아무리 많아도 불이 붙거나 폭발하지 않는다. 그래도 맥주가 많으면 폭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다섯째, '고리와 신고리 단지는 세계 최고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라고 하였다. 안전하기만 하면 밀집은 나쁜 것이 아니다.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는데 자원을 적게 사용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것이고 친환경적인 것이다. 농업기술이 발전하면 단위면적당 소출이 늘어나고 더 많은 땅을 숲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원의 발전은 고밀도로 진전하는 것이 대세이다.
여섯째, '전지구적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핵발전소는 불안요소 그 자체'라고 하였다. 이 부분은 통계가 말해주고 있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로 사망한 사람이 있는가? 세계적으로 500여기의 원전이 50년 이상 운전되었다. 하지만 UN과학위원회(UNSCEAR)에 따르면 TMI-2호기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는 사망자가 보고되고 있지 않으며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만 43명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원자력발전소는 더 높은 안전기준에 따라 설계되고 건설되기 때문에 사실상 더 높은 수준의 자연재해에 견딘다. 이번 태풍에서도 태양광과 풍력발전소가 못쓰게 되었지만 원전은 손상된 것이 아니므로 송변전설비만 복구되면 다시 가동할 수 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