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기술,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2021-04-02 12:04:46 게재
코로나백신 성공 이어 말라리아, 암 연구도 진전 … 애틀랜틱 “잠재적 전망 커”
하지만 하룻밤새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이 기술은 사실 수십년 동안 진행된 것이다. 1970년대 헝가리의 한 과학자가 초기 mRNA 연구를 주도했다. 그리고 2020년 12월 14일 mRNA 백신이 미국에서 첫 승인을 받았다. 그 사이에 40여년 세월의 간극이 있다. 미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최신호에 따르면 인공 mRNA 아이디어가 실현가능하게 될 때까지의 장기간 여정에서 여러 과학자들이 직업경력을 망쳤고, 여러 회사는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애틀랜틱은 “그럼에도 mRNA를 만들겠다는 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핵심원리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이라며 “전세계 가장 강력한 제약사는 다름 아닌 우리 몸 안에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인간의 거의 모든 생체기능은 단백질에 의존한다. mRNA는 우리 몸의 세포에 어떤 단백질을 만들라고 이야기한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인간이 편집한 mRNA로 우리 몸의 세포기계를 징발해 태양 아래 존재하는 모든 단백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인체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분자를 대량생산해 고장난 장기를 고치거나 혈류를 개선시킬 수 있다. 또는 세포에게 메뉴판에 없는 단백질을 만들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면 우리 면역체계는 이를 침입자로 인식해 파괴하게 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mRNA 백신은 우리 세포에 독특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라고 세부적인 지시내용을 전달한다. 외부의 침입자를 인식한 우리의 면역체계는 이 단백질을 파괴한다. 이후 실제 바이러스가 침입한다면 우리 신체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다시 인식해 잘 훈련된 군대를 동원해 정확하게 그 바이러스를 공격한다. 감염의 위험을 줄이고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mRNA의 성공스토리는 코로나19에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mRNA의 잠재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훌쩍 뛰어넘는다. 올해 예일대 연구팀은 비슷한 RNA를 기반으로 한 말라리아 백신을 내놓아 특허를 받았다. 말라리아는 전세계 치명적인 질병 중 하나다. 화이자는 “mRNA는 쉽게 편집할 수 있기에 계절독감에서도 이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절독감은 끊임없이 돌연변이를 만들어 매년 전세계 수십만명을 죽인다.
지난해 화이자와 손을 잡은 바이오엔테크는 특정종양과 관련된 단백질을 만드는 개인별 맞춤형 치료법을 개발중이다. 우리 몸에 자라나는 암을 격퇴하기 위해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인공 mRNA 치료법은 다양한 경화증 진행을 늦추거나 뒤집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바이오엔테크 최고의료책임자(CMO) 외즐렘 튀레지는 “mRNA가 폭넓게 변형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며 “원칙상 단백질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mRNA로 대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 백신연구센터장인 존 매스컬러는 “지난해는 mRNA가 정식으로 데뷔하는 해였다”며 “RNA 기술은 올해 과학계에서 최고의 스토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돌파구 만들어낸 기나긴 여정
지난 40여년 동안 인공 RNA 연구로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었다. 1978년 헝가리 생물연구센터의 젊은 과학자인 카탈린 카리코는 인공 RNA를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1980년대 그는 헝가리를 떠나 미국에 갔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도 그는 인체가 거부하지 않는 mRNA를 설계하는 데 여전히 고전했다. 그는 정부의 연구 보조금을 받는 데 실패했고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연구의 의의를 인정받지 못했다. 결국 신분 강등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띄엄띄엄 연구를 하는 동안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다 2000년대 초 카리코와 그의 동료 연구자 드류 바이스만은 마침내 돌파구를 열었다. 세포 방어막을 뚫고 인공 mRNA를 은밀히 집어넣는 방법을 알아낸 것. 두 연구자는 분자 구성요소 중 하나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RNA의 한 가닥으로 구성된 뉴클레오시드다. 과학저널 ‘스탯’은 “카리코와 바이스만은 타이어를 교환하듯 구성요소 하나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썼다.
카리코의 해당 논문은 미국의 연구자들과 교수, 벤처투자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들은 회사를 설립했다. ‘모디파이드’(변형이라는 영어단어)와 RNA를 합친 이름의 모더나였다.
독일에서 면역학 연구를 하던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도 mRNA의 잠재력을 알아챘다. 이들 부부는 여러개의 회사를 세웠다. 그중 하나가 mRNA 기반 암 치료법을 연구하는 바이오엔테크였다.
튀레지는 “우리가 회사를 설립했을 때 업계에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mRNA는 입증된 제품이 없는 새로운 기술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약품 개발은 고도의 규제를 받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 이외의 길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지만 수년 동안 계속 밀어붙였다. 독지가와 투자자, 기타 기업들의 도움 덕분에 가능했다. 모더나는 미국국립보건원(NIH)과 협력했고 지카바이러스 등의 백신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다르파’(미 국방고등연구기획청)로부터 수천만달러의 지원을 받았다.
화이자는 2018년 mRNA 독감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바이오엔테크와 연합했다. 화이자 바이러스백신 연구개발을 관장하는 필립 도미처는 “mRNA기술은 애초 독감과 관련해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속도와 유연성 때문이었다”며 “mRNA를 빠르게 편집할 수 있다. 이는 독감바이러스에 매우 유용하다. 독감은 매년 북반구용 남반구용 두개의 백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우한시가 봉쇄됐을 때, 모더나와 바이오엔테크는 수년째 mRNA 기술을 미세조정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하자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는 기존의 독감백신 연구를 즉각 코로나19 백신 연구로 전환했다. 도미처는 “독감 단백질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로 바꾸는 경우였다. 그리 큰 도약이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다.
수십년 동안의 기초연구 위에 쌓인, 수년 동안의 mRNA 임상실험 연구로 무장한 과학자들은 놀랄 만한 속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미스터리를 풀었다. 지난해 1월 11일 중국 연구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자서열을 공개했다. 모더나의 mRNA 백신 제조법은 그로부터 약 48시간 뒤 완성됐다. 2월 말 여러개의 백신이 임상실험을 위해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로 보내졌다. 모더나를 포함한 여러 백신 후보군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트럼프행정부의 ‘초고속작전’으로 개발과정이 가속됐다. mRNA 기술은 약 40년의 방황을 마치고 결국 약속의 땅에 발을 디뎠다. 애틀랜틱은 “과학은 일반적으로 천천히 가다 갑자기 빨라지는 2단변속 과정을 거쳐 발전한다”고 전했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다르파와 화이자가 mRNA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속도와 민첩함 때문이었다. mRNA 기술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 많은 질병에 돌파구를 열어젖힌다면, 속도와 민첩함이 또 주연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말라리아는 매년 40만명 이상의 사람을 죽인다. 대개 아이들이 희생된다. 말라리아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아닌 ‘플라스모디움 속’(genus Plasmodium)에 속하는 열원충이라는 유기체 때문에 걸린다. 열원충은 인간의 면역체계를 피하기 위해 모양을 바꾸는 다수의 전략을 쓴다.
대부분의 질병은 한번 걸리면 인체에서 보호막을 개발한다. 하지만 말라리아는 우리의 세포 방어망을 뒤흔들어 계속 감염되게 만든다. 백신접종으로 말라리아를 막기 어려운 이유다. 현재 나와 있는 유일한 백신을 4차례 접종해도 효과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달 RNA 기반 말라리아 백신의 특허가 승인됐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으로 유망성을 보였다. 예일대 의대 의학자이자 해당 백신의 공동개발자인 리처드 부칼라는 “수년 동안 이 백신을 연구중이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판도가 지난 6개월 동안 바뀌었다. 코로나19 백신의 성공 때문”이라고 말했다.
말라리아 백신은 자가증식 RNA(saRNA)를 사용한다. 이는 모더나와 화이자가 사용한 mRNA 기술과 미묘한 구별점이 있다. 코로나19 백신은 필요한 양의 mRNA를 모두 미리 주사해야 한다. 하지만 자가증식 RNA는 우리 세포 안에서 자체적으로 복제하도록 설계됐다. 이른바 ‘복사-붙이기’ 기능이다. 극소량의 백신으로도 대규모 면역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부칼라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많은 mRNA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 밖의 많은 나라들이 백신을 구하기 어려운 이유”라며 “반면 saRNA는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1/100만 주입해도 된다. 대규모로 확산하는 질병을 막기엔 더 쉽다”고 말했다.
암도 mRNA 기술의 유망한 타깃에 포함된다. 물론 과학자들은 암을 위한 단일의 백신을 고안하지 않는다. 암은 단일의 질병이 아니라 100가지가 넘는 병폐가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암의 명칭은 대개 발병부위를 따라 짓는다. 만약 특정 종양을 공격하라고 인체를 훈련시킬 수 있는 자가치료법으로 수백가지의 암을 대응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바이오엔테크가 암면역학을 연구하는 배경이다. 원리는 이렇다. 각각의 암환자로부터 종양 세포조직 샘플을 취해 유전분석을 한다. 분석결과에 기반해 개인맞춤형의 mRNA 백신을 설계한다. 이 백신은 환자의 세포에 '특정 종양의 특정 변이와 관련된 단백질을 생산하라'고 지시한다. 해당 환자의 면역체계가 몸 전반에 있는 비슷한 종양세포를 인식하고 파괴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러한 분석과 설계의 순환과정은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중국 과학자들이 공개한 코로나 바이러스 유전자서열로부터 백신을 만든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이오엔테크 외즐렘 튀레지는 "mRNA를 생산하고 제조하는 것과 관련해 코로나19에서 배운 교훈을 암 치료에 대한 연구에도 적용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오엔테크는 현재 흑색종과 유방암, 난소암 등 '고형암'(solid cancer)에 대한 맞춤형 백신 임상시험을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자들은 최근 의학저널 '몰리큘라 캔서'(Molecular Cancer)에 "맞춤형 백신을 통한 암치료는 지난 수년 동안 개발속도가 둔화됐지만 코로나19 돌파구와 함께 암 백신 임상시험의 조짐이 좋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가까운 미래 암면역학 부문의 mRNA 백신을 신속히 개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 스스로 만든 행운
2020년 3월 베일러 의과대 백신 과학자인 피터 호테즈는 mRNA 기술이 코로나19와의 대결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유전자재조합 백신을 연구중인 제약기업 머크에 기대를 걸었다. 머크는 '수포성 구내염 바이러스'(VSV)라 불리는 변형 가금류 바이러스를 활용해 세계 최초 에볼라 백신을 개발한 곳이다. 하지만 머크는 코로나백신 임상시험 결과가 기대와 다르자 올해 초 개발을 중단했다.
호테즈는 머크의 실패를 과학에 관한 중대한 교훈이자 mRNA에 관한 경고로 받아들인다. 그는 "한가지 전염병에 작동하는 기술은 다른 질병에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시험을 마칠 때까지 어떤 백신이 효과를 낼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mRNA 백신을 기적의 약물이라고 부르는 건 아직 섣부르다고 보는 이유다. mRNA 백신은 다음 목표에서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mRNA의 열혈 지지자도 그 지점에 동의한다. 화이자의 도미처는 "이는 마법의 탄환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완벽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바이오엔테크의 튀레지 역시 "mRNA가 모든 것에 효과를 내는 성배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라며 "우리는 mRNA로 성공할 수 있는 질병, 그렇지 않은 질병을 알아내려 한다. 우리는 모든 감염질병 각각에 대해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mRNA는 향후 10년 동안 두 번째 돌파구를 낼 수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영원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과학계에선 아마 '독특하게 단순한 적으로부터 온 팬데믹에서 mRNA 기술이 큰 혜택을 입었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호테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대에서 가장 쉬운 백신 타깃이었는지 모른다"며 "우리가 과녁을 향해 던진 거의 모든 것이 적중했다"고 말했다.
애틀랜틱 역시 "아마 우리는 운이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온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쉬웠던 건 그동안 의학계가 쉼없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고 강조했다.
4년 전 중동 메르스가 아라비아반도와 한국을 강타한 이후, NIH와 밴더빌트대학, 다트머스대학 등의 과학자 18명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을 공개했다. 바로 스파이크 단백질의 형태와 행동에 대한 세부적인 시험내용이었다.
이 논문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미스터리와 취약성을 해독한 것이다. 이 작은 병원체가 곧 전세계를 마비시킬 것이라는 것을 누구도 알기 전인 2017년 논문이다. 과학자들은 논문에서 예지력을 가진 듯 "우리의 연구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의 구조 기반 설계에 토대를 제공한다"고 썼다.
애틀랜틱은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mRNA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며 "코로나19 백신은 과학적 성공에서 그리고 과학적 실패에 위에 구축됐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수십년 동안 과학자들은 HIV(에이즈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백신을 설계하는 데 고전했다. 과학계 외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분야가 이젠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고 봤다.
하지만 MIT 경제학자이자 의사인 제프리 E. 해리스는 지난달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올린 논문에서 "HIV 백신 연구에서 반복된 실패가 있었음에도 과학자들은 기이하고 증명이 안되는 백신 기술에 수많은 시간과 돈을 쓰며 연구를 이어갔다"고 지적했다. 인공 mRNA와 존슨앤드존슨 백신을 구동시키는 바이러스 벡터 기술이 대표적이다. 해리스는 "임상시험 단계에 다다른 코로나19 백신의 거의 90%는 HIV 백신 연구에서 시도된 원형으로 추적해 올라갈 수 있는 기술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하나의 HIV 백신이 성공했다면, 이를 개발한 기업은 대단한 부를 거머쥐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백신영역의 모든 경쟁자들이 집단적인 실패로부터 배웠고, 결국 이는 집단지성에 기여했다. HIV 백신 연구에서의 무수한 오류와 실수는 새로운 기술의 대폭발의 자양분이 됐고, 가능성 있는 새로운 백신의 황금시대를 안내하는 데 일조했다"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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