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독자공급망도 중국 봉쇄도 ‘비현실적’
2021-05-14 12:38:48 게재
닛케이아시아
미국의 제재 위협이 커질수록, 중국정부의 지원은 늘어났다. 중국 관영언론 ‘중국증권보’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반도체 부문에 대한 지방정부의 지원금과 민간투자는 최소 1700억달러에 달한다. 게다가 다른 반도체 제조사들은 물론 거대 기술기업 샤오미와 오포, 비보, 레노버 등도 중국 반도체나 장비를 일정 수준 주문한다. 중국 반도체기업 한 경영자는 닛케이아시아에 “공개적인 지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반도체업계 모든 이들이 암묵적으로 지키는 선이 있다. 누군가가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짓거나 제조라인을 증설하면, 최소한 관련 제조장비의 30%는 중국업체에서 구매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전 영역에서 미국의 선진 기업들은 태평양 건너 ‘도플갱어’(누군가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나 동물)를 갖고 있다. 중국 반도체기업들은 따라잡고자 하는 미국 상대 기업들의 모든 것을 본뜨려 한다. 예를 들어 양쯔메모리의 전략과 시장 접근법은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소재한 마이크론과 놀라우리만큼 닮았다. 중국 당국은 베이징 소재 ‘베이팡화창’(NAURA)이 다양한 칩제조 장비를 만드는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와 닮기를 희망한다.
상하이 소재 ‘중웨이반도체’(AMEC)는 미국 램리서치의 중국 버전이다. 램리서치는 칩제조 핵심장비인 에칭기계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톈진 소재 ‘화하이칭커’(Hwatsing Technology)는 최첨단 화학기계적 연마장비를 만드는데,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의 독점을 깰 태세를 갖추고 있다.
양쯔메모리는 중국 당국의 제1의 관심대상이다. 중국 최고 행정당국인 국무원 관료들이 집중 관리하고 있다. 또 반도체업계에 대한 최고급 종잣돈인 ‘중국반도체산업투자펀드’가 양쯔메모리의 지분 24%를 갖고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채드 바운은 “중국이 얼마나 신속히, 얼마나 질좋은 독립적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할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계속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미국 무역전쟁과 화웨이 제재는,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바라마지 않던 구실을 제공했다. 2013년 미 국가안전보장국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대대적인 폭로로 미국 기술기업들이 미 정부의 전세계 감시에 광범위하게 참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 기술 의존이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다.
전국민의 성원을 받다
미국 기술 의존을 끝내려는 야심찬 계획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대대적인 정부 투자가 이뤄졌다. 예를 들어 2015년 중국 국무원은 ‘중국제조2025’(Made in China 2025) 산업정책을 내놓았다. 중국 하이테크 기술 발전과 수출 장려가 목적이었다. 2025년까지 반도체산업 자급률을 70%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진척은 더뎠다. 미국 리서치기업 IC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업계는 이 목표치에 크게 모자란다. 2020년 중국에서 만든 반도체 물량은 내수시장의 15.9%를 차지했다. IC인사이트는 올해 1월 2025년 이 비율이 19.4%로 소폭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가운데 중국기업의 점유율은 5.9%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전부 중국에 회사를 둔 외국계기업들이 만든 반도체였다.
그러나 미국의 제재로 중국의 반도체 자급노력을 방해하던 걸림돌이 제거됐다. 바로 반도체 수요 기업들의 협력 부재다. 이들은 경험이 미숙한 중국 기업 제품보다 성능과 품질이 확인된 외국계 기업에서 반도체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 흐름이 현재 결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 소재 반도체제조사의 한 임원은 닛케이에 “중국 칩 제조사들은 삼성이나 인텔 등 주요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생산라인에 사용하는 검증된 제조장비를 똑같이 사용했다. 생산품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국 제조 장비를 쓰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임원은 “그러나 미국 제재의 위협이 커지면서 점차 최고 사양의 미국 제조 기술 대신 자국 제조 대체장비를 실험하고 있다”며 “이를 생산하는 중국 기업들은 마침내 경쟁에 뛰어들 기회,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갖게 됐다. 전국민이 이를 적극 성원하는 환경도 갖춰졌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가트너’의 반도체전문가 로저 솅은 닛케이에 “미중 갈등으로 생산현지화 필요성에 대한 반도체업계의 의견이 통일됐다”며 “이제 자생력을 갖춘 반도체 산업을 구축해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최고 우선순위가 됐다. 정책당국도 기업 경영진도, 국민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온주입기 제조사인 킹스톤세미컨덕터조인트스탁의 한 CEO는 닛케이에 “중국 반도체 제조 도구와 재료 제조사들은 대부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기업들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 덕분에 사업을 확장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뿐 아니라 많은 동료기업들이 올해 생산할 물량은 이미 전량 예약됐다”고 덧붙였다.
중국 최대 반도체장비 제조사인 베이팡화창은 2020년 사상 최고 수익을 냈다. 전년 대비 73% 늘었다. 에칭장비 제조사인 중웨이반도체는 2020년 말 미국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지난해 최고 매출을 올렸다. 중국판 나스닥인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에 상장을 신청하면서 낸 설명서에 따르면 얼마 전만 해도 기껏해야 3번째 선택지에 불과했던 화하이칭커의 화학기계적연마 장비는 이미 중신궈지와 화홍세미컨덕터, 양쯔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제조사들에게 널리 사용되고 있다. 상하이 시당국이 지배주주인 상하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이큅먼트는 언젠가 유력 리소그래피 장비제조사인 ASML과 니콘, 캐논과 경쟁하기를 원하는 중국 정부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현재 최첨단 칩 제조장비 분야에서 중국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은 기껏해야 2% 수준이다. 번스타인리서치는 “반도체 자급률이 약 10%인 상황에서 이는 매우 낮은 수치이지만, 향후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중국, 반도체 시장 뒤흔들까
중국의 속도전은 공급과 수요가 미묘하게 평형을 이룬 글로벌 반도체시장에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전세계 반도체 부족은 수많은 산업계를 위기로 몰고 있다. 화웨이 이사회 순환의장을 맡고 있는 에릭 쉬는 지난달 “부분적 이유는 미국의 제재 가능성에 위협을 느끼면서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사재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닛케이에 “양쯔메모리와 중신궈지 등 반도체칩 기업들은 올해 개장한 공동소유 물류창고에 향후 구매가 불가능할 가능성이 있는 각종 부품들을 대량으로 사들여 축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반도체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반도체업계는 곧 닥칠 수 있는 반도체 과잉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양쯔메모리 등의 중국 반도체기업들이 생산량을 크게 늘리면서다.
사안에 정통한 취재원에 따르면 양쯔메모리는 올해 하반기 월별 메모리칩 생산량을 2배 늘려 10만개 웨이퍼를 내놓을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양쯔메모리는 반도체 원재료 웨이퍼 기준으로 글로벌 낸드플래시메모리 시장 점유율을 7%를 가져가게 된다. 대만 소재 컨설팅기업 ‘트렌드포스’는 데이터단위인 기가비트 기준으로 양쯔메모리의 올해 낸드플래시메모리 점유율은 3.8%, 내년엔 6.7%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2년 전만 해도 제로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일취월장이다. 업계 리더인 삼성전자 점유율은 34%다. 트렌드포스 애널리스트 에이브릴 우는 “양쯔메모리가 내년부터 낸드플래시 시장 전반을 가격으로 뒤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장은 과잉공급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쯔메모리 CEO 사이먼 양은 2018년 한 기업 포럼에서 반도체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우리는 시장을 교란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니다. 우리는 반도체업계가 지속가능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양쯔메모리는 64단 낸드플래시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사이자 6위 낸드플래시 제조사인 인텔은 이 시장의 공급과잉을 예상하면서 지난해 다롄 소재 낸드플래시메모리 공장을 SK하이닉스에 매각하며 앞으로 벌어질 치열한 경쟁에서 물러났다.
아찔할 정도로 급성장하는 양쯔메모리는 중국이 반도체 부문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양쯔메모리는 2016년 문을 열었고, 4년도 안돼 최첨단 3D 낸드플래시메모리를 양산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는 메모리셀 1단을 탑재한 평평한 웨이퍼였다. 하지만 최근 ‘3D 중첩 반도체’가 최첨단 기준이 됐다. 각각의 메모리셀 위에 또 다른 메모리셀을 겹쳐 넣은 반도체다. 거의 모든 컴퓨터와 스마트폰, 서버, 자율주행차 등에 쓰인다.
2017년 미국 반도체제조사 ‘웨스턴디지털’은 반도체의 마천루 격인 64단반도체를 선보였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176단 반도체 양산에 돌입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에 비견되는 반도체다.
양쯔메모리는 지난 2년 동안 64단 칩을 양산했고, 최근부터 우한 소재 낸드플래시메모리 공장에서 128단 칩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현재 192단 칩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이를 히말라야 산맥에 비유했다.
목을 조르는 기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양쯔메모리 등 중국 반도체업계의 급성장 시나리오는 서구의 칩과 주요 장비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애국심과 자급자족의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100% 미국 기술과 장비를 탈피하는 게 가까운 미래 현실가능하다고 믿는 이는 거의 없다.
번스타인리서치 반도체 전문가인 마크 리는 닛케이에 "양쯔메모리가 미국 공급업체들과 지속적으로 거래한다면, 그들은 확실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이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만들기 원하는 게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대단한 실행력이 요구된다. 우리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칩 제조 장비 조달량을 크게 줄여나가는 일이 매우 신속히 이뤄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쯔메모리는 자체적인 공급망 검사 결과, 많은 핵심 프로세스가 즉각 자국의 공급업체로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고급 렌즈와 정밀베어링, 고급 진공실, 모터, 무선주파수 부품, 프로그램화 칩 등은 여전히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제조사들로부터 구매해야 한다. 양쯔메모리뿐 아니라 중국 반도체업계 대다수가 여전히 리소그래피와 이온 주입, 에칭, 화학적 물리적 기상증착, 화학기계적 연마 등에서 외국 장비사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칩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없어선 안될 장비들이다.
중국 정부는 그같은 기술을 '목을 옥죄는' 것으로 인식한다. 미국의 압력의 가해질 포인트라는 것. 첨단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미국의 선도적인 기업들을 우회할 방법은 없다. 예를 들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이온주입과 물리, 화학기상증착, 화학-기계적 연마 등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 '램리서치'는 에칭과 화학기상증착, 웨이퍼세정 장비 등에서 세계 최고다.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KLA'와 보스턴 소재 '테라다인'은 결함 분석과 실패 점검에 쓰이는 테스팅·측정 장비에 전문성을 갖고 있다. 반도체 재료 공급사인 '다우'와 '듀폰', '3M' 등 미국 기업들 역시 선진 칩 제조에 사용되는 특수화학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마크 리는 "미국 기업들을 모두 합해 선진 반도체를 만드는 주요 단계에서 장비와 재료의 8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전기화학적 증착과 게이트스택 도구 등과 같은 일부 전문화된 영역의 점유율은 100%에 가깝다"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에 또 다른 핵심 취약점이 드러났다. 화웨이 칩 설계 자회사로 중국 1위 개발사인 '하이실리콘'은 미국의 제재로 전자설계 자동화 도구를 위한 기술적 지원과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차단당했다. 결국 하이실리콘은 집적회로뿐 아니라 인쇄회로기판과 기타 전자시스템 설계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소프트웨어 사용에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런 도구의 공급은 '시놉시스'와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 '앤시스', '지멘스 EDA'(독일기업이지만 미국에 있음) 등 미국 기업들이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시놉시스나 케이던스의 전직 임직원들을 영입하면서 자체 기업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진척은 더딘 편이다. 중국 최대 칩 설계 도구 제조사인 '엠피리언'의 한 간부는 "우리는 탈 미국 캠페인 덕분에 일부 일감을 얻었다"며 "하지만 시놉시스와 케이던스를 완전히 대체하라고 요구하는 건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로켓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인공위성과 최신 전투기에 쓰이는 비메모리 반도체로, 회로 변경이 불가능한 일반 반도체와 달리 여러 번 회로를 다시 새겨 넣을 수 있는 '필드 프로그래머블 게이트 어레이'(FPGA) 등 일부 핵심 영역의 시장 리더는 '자일링스'와 인텔의 '알테라'다. 반면 중국의 경우 이러한 영역은 대개 공백으로 남아 있다. 중앙처리장치(CPU)도 '인텔'과 'AMD'가 글로벌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와 제조장비 부문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기에, 해당 기술의 흐름을 중국으로 향하지 못하도록 막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미국기업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SK하이닉스, 소니 등 반도체 제조사들은 생산라인과 개발 프로세스에서 미국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이들의 제품 판매에 비토권을 행사한다.
한 반도체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닛케이에 "일단 미국이 누군가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면, 아시아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를 심각한 경고로 받아들인다. 법적으로는 상품을 계속 판매할 수 있지만 아시아 기업들은 정치적 압력 때문에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면서 제품을 판매하지 않거나 판매 중단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도 공개적으로 미국의 뜻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기업도 미국의 제재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 최대 칩제조 장비사인 네덜란드의 'ASML'은 EUV리소그래피 장비의 독점 공급사다. 세계에서 가장 비싸지만 가장 최고급의 도구다. 애플이 최근 공개한 아이폰 핵심프로세서 등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없어선 안될 장비다. ASML은 미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ASML 장비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부품 중 약 1/5이 코네티컷 소재 미국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ASML은 2019년 미국의 압력으로 EUV장비에 대한 중국의 첫번째 주문을 중단했다.
따라서 중국 기업들에게 장비 현지화는 신속히 달성해야 할 목표다. 가장 중요한 건 미국의 제재대상에 오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안후이성 허페이에 소재한 중국 핵심 반도체제조사인 '창신메모리'의 한 CEO는 "신속히 세계를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크게 뒤처져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지정학적 환경에서 최선의 방법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의 일을 하면서 조용히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쯔메모리는 '반도체업계에 고도의 도전적이며 복잡한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며 2019년부터 법준수 팀을 늘렸다. 미국에게 책잡힐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양쯔메모리는 자급자족의 플랜 B를 추구하면서도, 모든 외국 장비를 생산공장에서 들어내는 것이 여전히 비현실적인 목표라고 본다. 양쯔메모리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 유럽 공급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한다. 양쯔메모리는 현지화 노력과 별개로 사업확장을 위해 미국 장비와 부품을 통해 계속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마크 리는 "중국이 지역 공급업체를 키우려 하는 건 사실 불가역적 트렌드"라며 "하지만 현실적으로 장애물이 많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 기업들이 보다 많은 사업을 따내고 더 빨리 성장하길 원한다면, 외국의 시장 리더들이 활용하는 모든 장비와 도구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게 보다 실용적"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의 기술·국가안보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인 마티즌 래서는 닛케이에 "반도체를 완전 자급자족하겠다는 중국의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중국 단독의 공급망을 짜는 건 너무 많은 돈이 든다. 외국 기술과 경험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게 미국 정부가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커플링과 봉쇄의 상쇄효과
전방위 노력에도 중국 반도체업계가 미국 부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중국의 기술과 반도체산업을 완전한 봉쇄할 수 있다는 미국의 시나리오 역시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전세계 양대 강국인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상호의존적이다. 1, 2위 반도체 시장이기도 하다. 올해 1월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반도체기업 매출의 최소 25%를 차지한다. 그같은 시장이 사라지길 원하는 기업은 없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채드 바운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중국 접근법은 아직 내용이 분명치 않다. 한편으로 미국은 최근 무역협상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이 보다 많은 반도체를 구매하길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미국 기술 활용을 계속 제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이 군사적 용도와 국가안보에 연계된 영역에서 보다 정교한 수출통제를 할 것으로 본다"며 "결국 이는 상쇄효과를 낸다. 중국은 거대한 소비시장이다. 만약 수많은 반도체의 선적이 제한된다면, 미국 기업들의 손해 역시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까지 바이든행정부는 중국의 기술적 발전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2018년 이후 트럼프행정부가 제재대상에 올린 중국기업은 162곳이다. 지난달 미국 상무부는 중국 슈퍼컴퓨터 제조사 7곳을 추가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중국 군부와 연계됐다는 혐의에서다.
지난달 12일 백악관은 반도체와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주제로 관련 기업 CEO들을 만났다. 여기엔 인텔과 삼성, TSMC 등 세계 3대 반도체제조사들이 모두 포함됐다. 포드와 GM 등 자동차제조사 CEO들도 다수 있었다. 글로벌 반도체산업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CEO 회담 전 모두발언에서 "중국 공산당은 반도체 공급방을 재편하고 지배하기 위해 공격적인 계획을 짜고 있다"며 민주, 공화 상원의원 23명의 편지를 인용했다. 그는 "중국과 전세계는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기다려줘야 하는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행정부는 반도체 제조와 연구개발에 50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중국의 산업육성정책을 본뜬 것이다. 또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지난해 외국과의 사업거래가 국가안보 리스크를 주는지 조사하는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이에 앞서 대만 정부도 자국 기술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새로운 투자심의 규정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밀란 소재 반도체장비 제조사에 대한 중국 선전시 투자기업의 인수 제의를 퇴짜놨다.
아시아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제조능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라는 미정부의 압력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인 TSMC와 세계 최대 메모리반도체 제조기업인 삼성전자는 미국의 제재 때문에 한때 주요 고객이었던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었다. 올해 1분기 TSMC의 중국 매출 비중은 6%였다. 전년 동기 22%에서 크게 줄었다. 지난 3개 분기에서 삼성의 중국 매출 비중 역시 하락했다.
대만 소재 '국방안전연구원'(INDSR)의 선임 애널리스트인 수쯔윤은 "글로벌 반도체 설계기업과 제조기업들 대부분은 현재 미국편에 서야 하는 입장이다. 미국 기술이 제품과 서비스에서 중요한 입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은 미중 양국의 갈등에 끼게 될 경우 무엇이 최선의 이익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급망을 완전히 탈동조화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전세계 수천 곳의 공급업체가 수십년 동안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 기술 원천 없이 중국이 기술발전 속도를 높이기는 어려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완전 배제한다는 것 역시 실용적이지 않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와 전자부품에 사용되는 핵심 희토류와 주요 원자재의 거대한 공급시장이다.
대만의 메모리칩 제조사로 애플과 소니 닌텐도 등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매크로닉스 인터내셔널' 창업자 겸 회장인 우민치우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단기적으로 중국의 기술개발이 다소 둔화될 수 있다"며 "하지만 중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경쟁력 있는 반도체산업을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이는 중국으로선 포기할 수 없는 방향이다. 그리고 되돌아갈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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