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붕괴' 로마클럽 보고서, 아직 유효하다?

2021-07-16 11:24:44 게재

KPMG 연구진 성장의 한계 후속연구 "지금처럼 경제만 중시하면 10여년 내 성장 멈춰"

1972년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관한 보고서인 '성장의 한계'가 발간됐다. 산업문명 붕괴 리스크를 탐색하며 성장의 한계가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지구촌 산업문명이 21세기 언젠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자원의 과도한 착취, 이에 따른 환경오염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이 책은 즉각 베스트셀러가 돼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관련 연구를 수행한 곳은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였고 책을 발간한 곳은 '로마클럽'이었다. 이곳은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는 세계적인 비영리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


이 책은 "연못에 수련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갑절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완전히 수련에게 점령되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라는 말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성장의 한계는 3가지 주요 시나리오를 가정했다. 기존대로 경제성장에 매진하는 경우, 기술발전으로 오염과 식량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경우, 사회적 우선순위를 경제성장이 아닌 교육과 복지에 두는 경우다. 기존대로 행동할 경우의 시나리오의 결론은 인구증가와 이에 따른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으로 21세기 언젠가 문명의 존립기반이 위협받는다는 것이었다.

최근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글로벌 빅4 회계법인 'KPMG'의 지속가능성 연구팀 가야 헤링턴 선임 국장은 예일대가 발간하는 '산업생태학저널'에 낸 보고서에서 최근 실증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의 한계의 결론을 업데이트했다. 이에 따르면 출간 50년이 된 성장의 한계가 내린 결론은 여전히 유효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 역시 '지금처럼 행동할 경우'(business as usual) 글로벌 문명의 궤적은 향후 10여년 내 돌이킬 수 없는 경제성장 쇠퇴를 겪는다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2040년을 전후로 사회적 붕괴를 촉발할 수 있다.

헤링턴은 연구보고서 서문에 "1970년대 베스트셀러였던 성장의 한계가 제시한 3가지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이 오늘날의 실증적 데이터에 가장 부합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썼다.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20주년인 1992년 2번째 책이, 30주년 즈음한 2004년 세번째 책이 나왔다. 그 사이사이 연구보고서는 모두 33번 나왔다. 마지막 보고서는 2014년이었다. 헤링턴의 보고서는 이후 8년 동안의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의 한계를 업데이트한 것이다.

헤링턴은 10가지 핵심변수를 중심으로 데이터를 뽑았다. 인구와 출산율, 사망률, 산업생산량, 식량생산량, 서비스, 재생불가능 자원, 환경오염, 인류복지, 생태발자국 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상황은 기존대로 시나리오와 기술발전 시나리오와 가깝다.

헤링턴은 "두가지 시나리오의 결론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쯤 뒤 전세계 경제성장이 멈춘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지금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인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전례없는 기술적 발전을 이루는 상황에서도 기존처럼 경제성장을 우선순위에 두게 되면 결론을 바꿀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인류는 불가피하게 이번 세기 내 산업자본과 농업생산량, 복지수준의 감소를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사회적 붕괴가 인류의 절멸을 의미하진 않는다. 경제와 산업생산 성장이 멈추면서 쇠퇴한다는 의미다. 식량생산량이 감소하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 기존경로 시나리오는 2040년을 즈음해 급격히 감소함을 보여준다. 기술발전 시나리오에서도 비슷한 시기 경제적 하락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회적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링턴의 보고서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최신 실증적 데이터와 가장 거리가 먼 시나리오는 사회적 우선순위 변화다. 이 시나리오에선 지속가능한 경제라는 안정적 체제로 진입할 수 있다. 지구촌이 광범위한 기술혁신과 과감한 공공보건·교육 투자를 달성한다는 전제를 가진 시나리오다.

헤링턴은 "기존경로 시나리오와 기술발전 시나리오 모두 10여년 뒤 경제성장의 종말을 가리키지만, 후자가 확실한 붕괴패턴을 보이는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이 있다"며 "두 시나리오는 현재까지의 데이터에 근접한 것일 뿐, 아직 확정된 결론은 아니다. 미래는 열려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 그는 "인류가 경로를 바꿀 만한 시간은 향후 10년에 불과하다"며 "성장의 한계에 대한 업데이트 연구는 기회의 창이 빨리 닫히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냥 비관적인 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전세계는 신속한 백신 개발에 나서 성공했다. 환경과 식량위기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맞아 역시 신속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우리는 좋은 교훈을 얻었다. 우리가 행동하기로 결정했다면 글로벌 도전과제를 신속하고 건설적으로 대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헤링턴은 "사회적 우선순위를 바꿔 생산적 능력을 건설적인 방면으로 돌려야 한다"며 "이에 필요한 변화는 쉽지 않고, 전환기에 맞닥뜨릴 도전과제도 클 것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미래는 여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연구에 적용된 데이터는 우리가 향후 10년 동안 결정하는 것이 인류문명의 장기적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비록 그 가능성은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작을 수 있다. 환경과 사회, 좋은 지배구조(ESG) 등의 우선순위는 미래를 긍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이는 정부와 기업 모두 사고방식을 바꿔야 함을 의미한다"며 "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모두를 위해 작동하는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문명을 만드는 게 아주 늦지는 않았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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