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의 역습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2021-11-08 11:28:35 게재

슈피겔 "청정에너지 기술의 불편한 진실 … 남반구 자원 남획으로 북반구 지속가능 전환"

친환경에너지 기술로 거론되는 풍력발전 터빈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풍력터빈은 순환하는 공기를 깨끗한 전력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터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풍력터빈에 들어가는 많은 부품은 자연에 대한 야만적 침범의 산물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최신호에 따르면 각각의 풍력터빈엔 시멘트와 모래, 강철 아연 알루미늄이 들어간다. 그리고 수톤에 달하는 구리가 필요하다.


중형 규모의 해상 풍력터빈 발전기와 기어박스, 변전소, 전선 케이블에 약 67톤의 구리가 들어간다. 이런 양의 구리를 캐기 위해 광부들은 5만톤의 흙과 바위를 파헤쳐야 한다. 에펠탑 5배에 이르는 무게다. 암석은 잘개 쪼개지고 갈리고 물에 씻겨 침출된다. 약간의 청정전력을 생산하기 위해 방대한 자연이 파괴된다.

칠레 북쪽 '로스펠람브레스' 구리광산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전세계 최대 구리광산 중 하나로 3600m 고도에 거대한 회색 분화구가 있다. 전세계 구리 생산량의 2%가 여기서 나온다. 3500마력의 강력한 덤프트럭들이 수톤에 이르는 토양을 실어나른다. 암석들은 약 13km 길이의 컨베이어벨트로 옮겨진다. 구리는 이런 바위들에서 추출한다. 처리과정에 거대한 양의 전력과 물이 필요하다. 매우 건조한 이 지역에서는 물 자체가 값비싼 원자재다.

이 사업은 영국 런던 소재 칠레 광산기업인 '안토파가스타'가 운영한다. 광산 지분 60%를 소유하고 있다. 이 기업은 2013년 광산 인근에 수력발전소를 지어 로스펠람브레스 광산에 독점적으로 전기를 공급한다. 농사에 쓸 물이 부족해진 주변 농부들은 안토파가스타의 구리채굴 사업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로스펠람브레스 광산은 더 커질 전망이다. 안토파가스타는 태평양 연안에서 바닷물을 끌어와 담수화한 뒤 광산작업에 투입하고 있다. 이 기업 경영진은 향후 수년 동안 구리광산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구리에 대한 글로벌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전력케이블과 전기차 모터, 풍력터빈 등 친환경기술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슈피겔은 "녹색에너지 기술이 기후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친환경기술은 지구의 값비싼 자원들을 남획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는 산업화된 현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즉 글로벌 에너지 전환 뒤에 숨은 역설적 모순"이라고 전했다.

그 딜레마는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가난한 남반구(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자원이 대규모로 착취돼 부유한 북반구(글로벌 노스) 국가들의 친환경 지속가능성을 떠받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원 연구자인 매티스 웨커너겔은 이를 '재앙적 상황전개'라고 일컫는다. 그는 슈피겔에 "사람들은 그같은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1962년 스위스 바젤에서 태어난 웨커너겔은 환경운동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 중 한명이다. 그는 전세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두가지 은유적 개념을 만들었다. 하나는 '생태 발자국'(environmental footprint)이다. 우리가 소비한 자원을 다시 만들기 위해 필요한 토지나 바다 면적을 수치로 나타낸 것. 웨커너겔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지구가 스스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1.7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독일 국민처럼 소비한다면, 약 3개의 지구가 필요하다.

또 다른 개념은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이다. 인류가 사용한 지구의 자원과 배출한 폐기물의 규모가 지구의 생산 및 자정 능력을 1년중 언제 초과하는지를 따진다. 올해는 7월 29일이었다. 웨커너겔은 "우리는 현재의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6개의 실린더가 달린 재규어차를 배터리 구동의 테슬라로 바꾸는 게 우리가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너무 단견적"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은 전기차를 몰거나 풍력과 태양광에서 얻은 전기를 쓰면서, 또는 지하실에 리튬이온 에너지저장 시설을 구축하면서 지속가능성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기후변화 대처 기술을 위해 쓰이는 원재료 생산과정이 환경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는 실감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풍력터빈에 사용되는 희토류인 네오디뮴 1톤을 제조하는 동안 77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1톤의 강철을 생산하는 데엔 이산화탄소 1.9톤이 배출된다.

미국 과학자 도넬라 메도우스와 그의 동료들은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를 내놓은 지 약 반세기가 지났다. 자연에 대한 남획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측면의 문제가 됐다.

전세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마련된 청정 기술에서, 원자재에 대한 방대한 수요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풍력터빈과 태양광발전 시스템, 전기차, 리튬이온배터리, 고전압 전선과 연료전지 등은 한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원자재가 소비된다는 사실이다.

1㎢의 태양광발전단지엔 11톤의 은이 들어간다. 테슬라 모델S 1대엔 1만대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리튬이 들어간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엔진차보다 6배 많은 주요 원자재가 필요하다. 배터리 시스템에 쓰이는 구리와 흑연 코발트 니켈 등이다. 육상 풍력터빈은 비슷한 규모의 가스화력발전소보다 주요 원자재를 9배 많이 쓴다.

이런 금속들의 수요가 높아지는 건 특정 성질 덕분이다. 코발트와 니켈은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인다. 네오디뮴은 풍력발전기의 자성력을 증폭시킨다. 백금(플래티넘)은 연료전지의 처리과정을 가속화한다. 이리듐은 전해조에서 그같은 기능을 한다. 구리의 전도성은 모든 전기장치와 설비에서 필수적이다. 전세계에 설치된 각종 전선엔 약 1억5000만톤의 구리가 들어가 있다. 슈피겔은 "문제는 인류의 에너지 전환이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초기 단계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추산에 따르면 주요 원자재에 대한 수요는 2040년 4배로 늘어난다. 리튬에 대한 수요는 42배 높아질 전망이다. IEA 사무총장 파티 비롤은 "이런 원자재는 미래의 글로벌 청정 에너지 시스템에서 핵심 부품이 된다"고 말했다.

에너지경제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비롤 사무총장은 최근까지만 해도 이런 문제를 다룰 필요가 없었다. 그의 관심 영역은 늘 석유와 천연가스였다. 그는 애초 석유수출국기구(OPEC) 애널리스트로, 이후 첫번째 국제유가 파동이 일어나면서 석유소비국들이 1974년 파리에서 창립한 IEA의 애널리스트로서 활동했다. 석유파동으로 전세계 각국은 소수 산유국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의존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 산업국가들은 새로운 의존성에 빠지게 됐다. 이번엔 석유가 아니라 광물자원이다. 비롤 사무총장은 석유파동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고 본다.

주요 광물의 상당수는 소수 국가들에서 나온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글로벌 니켈 공급의 45%를 점한다. 중국은 희토류 60%를 공급한다. 콩고는 코발트 생산의 2/3를 차지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금시장의 70%를 지배한다. 지리상 집중도는 석유사업보다 더 두드러진다. OPEC의 13개 회원국은 글로벌 석유 공급의 약 35%를 차지한다. 반면 광산업에선 10개국이 원자재의 약 70%(금액 기준)를 생산한다.

지질학적 관점에서 좋은 소식은 광물자원이 부족할 일은 없다는 점이다. 명칭과는 달리 희토류는 사실 희소하지 않다. 그리고 중국에만 독점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채굴업에 들어가는 비용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캐낸 광석의 질은 더 떨어지고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은 더 줄어들고 있다. 공급이 치솟는 수요를 힘겹게 따라가면서, 주요 광물자원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니켈 가격은 26%, 구리는 43%, 알루미늄은 56% 상승했다. 탄산리튬 가격은 대략 1년 동안 3배 올라 톤당 2만달러를 넘었다. 동시에 전세계 금속 재고가 급감하고 있다.

무언가 균형을 잃어버린 상황임은 분명하다. 유가파동을 몸소 겪었던 IEA 비롤 사무총장은 으스스한 기시감을 느낀다. 그는 "과거 석유업계의 상황과 현재 금속시장의 상황이 비슷하다"며 "기후변화 대처 열망과 구리와 니켈 리튬 등 주요 원자재 공급 사이의 불일치가 점차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 가난하다 … 자원부국의 역설" 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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