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료감정(한국의료분쟁조정위원회) 전수조사하라"

2022-04-21 11:45:15 게재

시민단체들 "의료과실 은폐·축소 의혹 … 공정성·투명성 부족"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이 의료과실을 은폐·축소하고 있다며 의사 출신 감정위원 3명을 경찰에 고발한 환자·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에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건강세상네트워크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20일 경실련 강당에서 '의료중재원 공정성·투명성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의료과실 감정 공정성 촉구 기자회견│20일 서울 종로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열린 '의료분쟁중재원 감정 공정성·투명성 촉구 환자시민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의료중재원 감정부가 독립성과 전문성을 이유로 폐쇄적으로 운영돼 일부 상임감정위원의 전횡 등이 지도·감독 되지 않았다"며 "보건복지부의 진상조사와 경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사고 원인과 내용을 객관적으로 규명해야 할 감정 과정에서 의료과실을 은폐한 정황이 일부 드러났다"며 "기관 운영의 투명성이 낮아 감정의 편파성에 우려도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의료중재원은 환자와 의료진 간 의료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앞서 경실련은 의료중재원 소속 전직 상임감정위원들이 의료 과실을 누락·조작해 감정서를 작성했다며 올해 1월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의료중재원 사무실에 수사관들을 보내 3시간 가량 압수수색을 벌였다.

시민단체들은 의료중재원이 '실적 쌓기용' 조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의료중재원의 실적이 조정 성립 건수로 평가되기 때문에 감정 과정에서도 만장일치를 유도하거나 소수의견을 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중재원에 의료사고가 접수될 경우 의료인 상임감정위원 1명과 보건의료인·검사·변호사·소비자권익위원 등 4명의 비상임감정위원을 포함한 총 5명으로 이뤄진 감정부가 구성된다. 각 위원들은 감정소견서를 제출하고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감정 결과를 도출한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반드시 소수의견을 적어야 한다. 이 결과는 조정부에 전달돼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 활용된다.

송기민 경실련 정책위원은 "통상적으로 상임감정위원은 감정 결과에서 무과실을 의도한다"면서 "소수의견을 기재해 달라고 하면 과실 대신 설명의무부족으로 타협해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송 정책위원은 2017년까지 의료중재원 소비자권익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날 회견에서는 의료중재원 감정에 대한 문제사례도 소개됐다. 경실련 조사 결과 의료중재원은 2017년 환자가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과실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감정서에 기재하지 않았다. 감정서에도 '과실'이라 적지 않고, '적절하지 않음, 아쉬움, 부족함, 소홀함, 주의를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임'이라는 소극적 표현을 사용했다.

현재 소비자권익위원으로 활동 중인 양현정 환자단체연합 이사도 "의료중재원의 실적이 조정 성립 건수로 평가되다 보니, 원만한 조정을 위해 감정서에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양 이사는 "감정서에는 과실유무와 인과관계를 적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과실'을 적시하지 않으려 '부족했다' '소홀했다' 등의 애매한 단어를 사용한다"며 "감정서에 과실 유무가 명확히 기재돼야 신청인이 조정과 소송 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에서 만장일치를 유도하기 위한 감정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감정위원 배정도 불공정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상임감정위원이 감정 과정에서 반대의견을 낸 위원을 배제하거나 친분이 있는 위원을 배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만장일치된 내용과 다르게 과실을 주장한 이후 두 달 동안 회의에 배정되지 않았던 사례, 상임감정위원과 의료인 비상임위원이 공개적으로 친분을 과시하는 경우 등이 소개됐다.

환자·시민단체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국가가 나서서 환자와 의료인 사이에 다툼을 해결하는 이유는 억울한 환자 피해를 신속하게 해결하고, 의료 환경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며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의료사고의 과실과 원인 규명을 위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정 업무가 선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편파적 감정으로 공정성을 훼손하고 이를 조직적으로 방치했다면 의료중재원은 더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환자·시민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의료중재원 관계자는 "현재 수사 중인 내용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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