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녹조비상
강의 자정작용 되살려야 낙동강 녹조 사라진다
8개 보로 막은 후 매년 '독성 녹조'로 몸살 … 상수원 녹조사태, 정치논리 아니라 '국민 생존' 문제로 봐야
4대강 보는 고정식 보가 아닌 수문을 열 수 있는 가동보 구조인데 보 수문을 열면 취수와 양수가 불가능해진다. 사실상 수문을 열 수 없게 만든 미완성작이다. 보 개방을 둘러싼 농민들이나 지자체와의 갈등은 여기서 비롯됐다.
가동보는 필요한 경우 수문을 열고 닫을 수 있어야 그 기능이 완성되는 것이다. 수문을 최저수위까지 개방해도 취양수가 가능하도록 전액 국가예산으로 취양수장 시설개선을 시급히 해야 하는 이유다.
영남지역 주요 도시의 상수원수가 수년째 독성 녹조로 뒤덮이고 그 물로 재배한 농작물에서 녹조 독성이 검출되는 상황인데 이제 더이상 보 개방을 놓고 정치적 논쟁을 벌여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람이 마시는 물과 농작물은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 건강권과 생존권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낙동강은 원래 '모래의 강'이다. 4대강사업 전까지 낙동강은 풍성한 백사장 사이로 뱀처럼 구불구불 흘렀다.
낙동강에는 모래도 같이 흐른다. 모래톱이 풍성한 강에서는 물과 모래가 뒤섞여 흐른다. 갈수기엔 눈에 보이는 강물보다 모래톱 아래로 흐르는 물이 더 많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강물이 맑게 유지된다.
모래는 수질 정화작용이 뛰어난 물질이다.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도 모래를 통과시켜서 만든다. 굵은모래-중간모래-가는모래 3단계 모래 여과를 거쳐 흐르는 강물을 수돗물로 만든다.
◆"보 막으면 수질이 더 좋아진다?" = 4대강사업의 핵심은 준설과 보 건설이었다. 특히 낙동강에서는 대규모 준설로 모래톱을 파냈고 8개의 보(댐)를 건설해 강물을 가두었다. 그 영향은 어떻게 나타났을까?
환경부 수질측정망 자료를 보면 4대강사업 전에 비해 상주 구미 등 낙동강 상류부터 수질이 전체적으로 나빠졌다.
'상주3지점'(상주시 낙동면)은 2008년까지 연평균 BOD 기준 0.9ppm을 유지한 1급수 지점이었다. 그러나 4대강 공사 이후 2013년 1.6ppm, 2014년 1.7ppm으로 악화됐다. 이 지점은 2021년까지 1.6ppm으로 여전히 1급수 수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구미시 취수지점인 '강정지점'(구미시 고아읍)도 4대강사업 전까지 연중 1급수(BOD 1.0ppm 이하)를 유지했던 곳이다. 그러나 2009년 1.2ppm으로 떨어졌고 2012년 1.4ppm, 2013년 1.6ppm, 2014년 1.8ppm으로 악화됐다.
강정지점도 2021년 연평균 BOD 2.0ppm으로 1급수 수질을 회복하지 못했다. 해평취수장 위에 있는 구미보는 담수 1년 만에 수문이 시퍼런 녹조 이끼로 뒤덮였다.
◆녹조 사태 반복되는 낙동강 하류 = 대구 화원나루에서 금호강을 만난 낙동강은 구미와 대구의 오염물질을 가득 머금은 채 부산을 향해 힘겨운 흐름을 이어간다.
대구 화원나루의 해발고도는 20여미터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은 해발고도 차이로 낙동강은 부산까지 흘러가야 한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흐름이 느린 구간인데 4대강사업 이후 달성보-합천보-함안보 담수로 정체시간이 더 늘어났다. 독성 녹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정체된 강물에 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면 수온이 급속도로 올라간다. 수온이 올라가는 한낮에는 물속에서 녹조 덩어리들이 뭉쳐지면서 뭉게뭉게 수면 위로 떠올라 물꽃이 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4대강사업 전에도 한여름이면 이 구간 낙동강에는 녹조가 종종 발생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매년, 상류 상주에서 하류 창원 본포교까지 거의 전 구간,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지속적으로 녹조가 발생한 적은 1989년 수질측정망 가동 이래 한번도 없었다.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20일 환경부 조사에서 대구 강정보 유해남조류 세포수가 1㎖에 7만9000마리까지 늘어났다. 유해남조류 세포수가 1만마리 이상이면 조류경보제 '경계'에 해당한다.
이 문제에 대해 류연기 환경부 물환경정책관은 24일 "현재 가뭄이 심해서 안동댐 임하댐 방류량을 늘리기도 어렵고, 모내기철이라 농업용수 취수 때문에 보 개방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4대강 보 문제를 담당하는 이호중 4대강조사평가단장은 "4대강조사평가단도 6월 말에 해산된다"며 지금 상황에서 보 개방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 때 환경부는 "조류 발생시 보 수문을 열어 방류하는 대책 이외에 방재대책을 추가로 수립, 제시하라"고 부산지방국토청장(당시 낙동강살리기사업 2팀장)에게 보완 요구를 했다.
그래서 국토부는 온갖 수역정화시설(△유지관리 선박 △태양광 물 순환장치 △수질정화 식물 식재 △주기적 퇴적토 배출 △수중믹서 등)을 추가하겠다고 약속했다.
4대강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에서 '조류 발생시 보 수문 개방'은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었다. 그런데 조류가 발생한 2013년 이후 국토부는 낙동강 보 수문을 한번도 제대로 연 일이 없다. 환경부도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수자원공사가 환경부로 넘어온 뒤에도 낙동강 8개 보 수문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경상남도가 작성한 '2019년 녹조 발생 예방 및 대응 추진계획' 연구에 따르면 8개 보 설치 후 낙동강의 흐름은 예전에 비해 10배 이상 느려졌다.
8개 보의 체류시간을 보면 △상주보 17.8배(보 설치 전 0.4일 → 설치 후 7.1일) △낙단보 14.3배(0.6일 → 8.6일) △구미보 17.3배(0.8일 → 13.8일) △칠곡보 19.2배(1.1일 → 21.1일) △강정보 19.1배(1.1일 → 21일) △달성보 10.3배(0.9일 → 9.3일) △합천보 4.7배(2.2일 → 10.3일) △함안보 5.2배(1.7일 → 8.9일) 등이다.
◆8개 보 개방하면 어떻게 될까? = 희망은 있다. 환경부가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 한강의 10개 보 개방 후 조류농도 체류시간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다.
특히 낙동강은 보 개방시 오염물질 체류시간이 약 65일(90%)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류 상주보에서 하류 함안보까지 체류시간이 '보 미개방시 72.6일'에서 '최저수위 개방시 7.1일'로 줄어드는 것이다.
◆낙동강 하류 수계만 2급수 원수 = 낙동강수계를 제외한 다른 도시들은 대부분 BOD 1.0ppm 내외 1급수 원수를 공급받는다. △팔당호(서울 수도권) △대청호(대전 충청권) △용담호(전주 전북권) △동복·주남호(광주 전남권) 등이다. 강원도는 기본적으로 1급수 수계에 위치한다.
낙동강수계만 △대구(BOD 2.0~1.9ppm) △창원(BOD 2.1~1.6ppm) △부산(BOD 2.0~1.7ppm)의 2급수 이하 원수로 수돗물을 만든다. BOD 수치만 나쁜 게 아니다. 구미 아래 낙동강은 여름에는 녹조류, 겨울에는 규조류로 뒤범벅이 된다. 여기에 구미·대구공단의 화학물질까지 더해진다.
지금 낙동강에 필요한 것은 강을 막은 보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과 풍성한 모래톱이다.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강을 따라가며 보면 강물은 스스로 끊임없이 맑아지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강물은 웬만큼 더러워져도 다시 맑아지고, 또 더럽혀도 흘러내려가면서 다시 맑아진다. 1급수의 맑은 물이 하류로 갈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사람들이 강의 자정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오염물질을 강에 내다버리기 때문이다.
강물이 더럽다고 강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흐려진 강물은 그만큼 사람들의 본성이 흐려졌다는 얘기다. 강을 살리려면 4대강사업 같은 토목공사보다 상류와 하류 지자체의 교류가 훨씬 중요하다.
낙동강 수계도를 길게 펴놓고 지난달 수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안동과 구미, 대구, 부산이 매월 같이 모니터링하는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안동을 지난 낙동강이 0.5ppm 흐려졌다면 안동은 하류 예천에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자.
강 상하류 지자체들 사이의 이런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면 한국의 강은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맑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