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줄이는 적당한 불편

재활용품 가치 변동 반영한 부과금 기준(재활용기준비용) 필요

2022-08-22 00:00:01 게재

캔에는 적용하고 양식용부표는 빼고 '제각각' … 관리 품목 확대에만 급급하면 정책 신뢰도 떨어져

"분리배출할 때 생수병 라벨을 떼는 건 기본 아닌가요. 힘들면 무라벨 페트를 사용한 제품을 사서 드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해당 글이 올라오자 다들 공감하며 더 철저히 분리배출을 해야 한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번거롭긴 해도 분리배출에 대한 반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환경부 훈령에 따라 시민들은 무려 10여종(재활용가능 자원)을 분류해서 버려야 한다. 최근에는 투명 폐페트에 이어 멸균팩 살균팩 바이오플라스틱 등 추가 분리배출 필요성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 감내해야 할 부분은 하겠다는 분위기다.

이처럼 선형경제(생산-소비-폐기)를 뛰어넘어 순환경제로 가기 위한 시민 의식이 성숙한 지 오래다. 순환경제란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경제 모델을 말한다. 자원 활용 효율성을 극대화해 새롭게 사용하는 천연자원 양을 최소화한다.

문제는 분리배출 이후다. 우리나라는 재활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시행 중이다. 제품을 생산한 사람이 재활용까지 책임지라는 게 기본 취지다. EPR이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생산 수집 운반 선별 등 각 단계별로 필요한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돼야 하는 건 기본이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이 아무리 분리배출을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003년 이후 재활용기준비용 개편한 적 없어 = 16일 배연정 서울대학교 그린바이오과학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EPR 대상 품목별로 재활용기준비용에 유가물 가치(재활용품 판매 가격)가 포함되거나 아닌 경우가 있다"며 "유가물 가치가 시장 상황에 따라 폭락하거나 폭등하게 되면 재활용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재활용기준비용에 유가물 가치를 포함시키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활용기준비용에 시장가치를 제대로 반영해야 생산자가 포장재 재질이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다"며 "무색이나 유색 복합재질 페트병처럼 처리 과정은 유사하지만 유가물 가치가 크게 차이나는 품목의 경우 재활용기준비용에 유가물을 포함시켜야 재질에 따른 비용 차등화가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재활용기준비용은 EPR 재활용부과금 산출기준이 된다. 재활용부과금은 의무생산자나 해당 업무를 대행하는 재활용사업공제조합이 재활용의무량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 일정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재활용기준비용은 재활용 단계별로 소요되는 수집 운반 선별 처리비용 등의 합으로 산정된다. 재활용부과금은 재활용 미이행량에 재활용기준비용과 재활용비용산정지수, 할증률(최대 30%) 등을 곱해 결정한다. 재활용기준비용이 제대로 책정돼야 EPR의 본디 취지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EPR이 도입된 2003년 이후 재활용기준비용이 개편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입법조사처 '폐기물 재활용 활성화를 위한 재활용기준비용 개선방안' 보고서에서도 "재활용기준비용은 재활용부과금 규모를 결정하는 주요한 변수인데, 2003년 이후 물가상승률 정도 맞추는 수준으로 거의 변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환경부도 재활용기준비용 개편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품목별로 유가물을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골머리를 썩고 있다. 2003년 재활용기준비용 산정시 환경부는 유가물 판매 가격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새롭게 편입된 수산물 양식용 부자(浮子·부표)나 합성수지 재질 김발장(김을 한장 단위로 만들어 건조하기 위한 작은 건조대), 곤포 사일리지(수분 함량이 많은 보리 목초 생볏짚 등의 사료작물을 곤포에 밀봉 저장 후 발효)용 필름 등에는 유가물 가치를 적용하지 않았다. 만약 이들 품목에 캔 등과 마찬가지로 유가물 가치를 포함시켜 재활용기준비용을 재산정한다면 현행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16일 환경부 관계자는 "유가물 포함 여부 등을 포함해서 관련 연구 용역을 진행했고 검토 중"이라며 "큰 틀에서는 유가물 가치를 재활용기준비용에 포함시키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재활용기준비용에 유가물 가치를 전면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단계별로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장 걸림돌 해결 뒤 EPR 확대해야 = 환경부도 재활용기준비용에 유가물 가치를 포함시키는 걸로 가닥을 잡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다. 2018년 폐비닐 수거 대란 사태 이후 환경부 등 관계 부처 합동으로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 중 하나로 EPR 대상 품목을 2022년까지 총 63개(당시 43개)로 확대하는 방안이 들어갔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EPR 품목 확대 작업에 들어갔고 지난해 파렛트(pallet·합성수지 재질의 수평 받침대) 등 17개 품목 추가하기로 했다. 산업용 필름, 영농필름, 생활용품 20종, 교체용 정수기 필터 등 4개 품목은 2022년부터 EPR 대상에 들어갔다. 폴리에틸렌(PE)관 등 나머지 13개 품목은 2023년부터 적용된다.

이들 품목의 경우 과거에는 플라스틱 폐기물 회수·재활용 자발적 협약 제도 적용을 받았다. 자발적 협약은 재활용 기반을 순차적으로 만들기 위한 취지의 제도로 2008년부터 운영됐다. 폐기물부담금 부과 대상인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자가 환경부장관과 폐기물 회수·재활용에 대한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고, 협약상의 회수·재활용 목표치를 달성한 경우 폐기물부담금을 감면해준다.

이들 품목이 EPR에 들어오면서 재활용기준비용이 중요해졌다. 유가물 가치를 포함시키는지에 따라 자발적협약 재활용비용 대비 재활용기준비용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재활용 지원금 산정 시에도 영향을 받게 되므로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16일 환경부 관계자는 "2023년부터 추가 품목들이 EPR 적용을 받게 하기 위해서 지난해 시행령 등 개정 작업을 했는데, 유가물 가치를 포함시키지는 않았다"며 "폐기물부담금 등과 여러 가지로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어서 당분간은 이원체계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18일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순환경제로 가기 위해 EPR 확대가 필요하지만 현 시스템에서 가능하지 않은 부분들을 무리하게 진행하는 면이 없지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종이팩 투명페트병 등 시민들이 불편을 감내하면서까지 분리배출을 해도 현장에서는 재활용이 잘 안되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언제까지 몇개 확대 식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EPR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문제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는 소리다.

◆분담금 취지 명확해야 거부감 없어 = 11일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EPR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아닌 민간 주도로 이뤄져야 하는 제도"라며 "기업들 스스로가 비전을 세워서 정부에게 필요한 부분을 요구해야 하는데, 정부가 주도하면서 기업들은 최소한의 사항들만 지켜나가는 구조가 되다 보니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활용기준비용은 재활용분담금과도 일정 부분 연관이 있다. 물론 재활용분담금은 정부에서 산정하고 고시하지 않는다. 자원재활용법 제29조에 따른 공동운영위원회를 통해 매년 결정된다.

하지만 재활용분담금을 산정할 때 일정 부분 기준선으로 참조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 재활용기준비용과 재활용분담금 간의 차이가 너무 크거나 품목별로 산정기준이 다르게 되면 재활용 체계에 혼선이 올 수도 있다.

재활용분담금은 재활용활성화를 위해 재활용업체 지원 등에 사용된다. 재활용분담금이 재활용부과금보다 높게 책정되면 생산자가 재활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있다. 반면 재활용분담금 단가가 낮으면 재활용지원금을 받는 회수 및 재활용사업자의 사업 여건이 악화된다.

홍 소장은 "재활용활성화를 위해서 정확한 목표를 수립한 뒤 해야 할 일들과 비용이 나올 텐데, 의무생산자들은 이에 합당한 분담금을 내면 된다"며 "문제는 분담금을 통해 어떠한 점이 개선되는지 불분명하니까 의무생산자들도 분담금 책정 시 반발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분들을 명확하게 해줘야 EPR이 본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란?
제품 생산자 및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의무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의 폐기물에 대하여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의무생산자들은 공동으로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공제조합을 설립, 각 업체별 의무량에 상응하는 재활용분담금을 납부한다. 이 분담금은 재활용활성화를 위해 재활용업체 지원 등에 사용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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