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충돌 방지, 핵전쟁 예방 출발점"

2022-11-23 11:08:07 게재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

제7차 세종국방포럼서 주장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되는 가운데 국내외 전문가들과 당국자들의 관심은 온통 북핵에 대한 억제력 강화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위협의 또 다른 축인 불안정 문제를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23일 오전에 열린 제7차 세종국방포럼에서 이 같이 지적하며 억제의 실패 못지않게 위기관리의 실패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부소장은 이날 포럼에 앞서 미리공개한 발표자료를 통해 북핵 위협이 제기하는 위험의 성격에 대해 억제의 신뢰성과 실효성 문제라는 측면과 위기 불안정성의 문제라는 두 가지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북핵 위협 고도화로 인해 억제력 강화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위험성은 위기 불안정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발생할 가능성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김 부소장은 위기 안정성에 대한 각성과 함께 대책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우선 북한의 핵 독트린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주문했다. 북한이 발표한 핵 무력 법령에 대해 "공세적, 자의적 핵 사용", "가장 공세적이고 급진적인 핵 독트린"이라는 일각의 평가가 존재하지만 핵 무력 법령 제1조에서도 핵 무력이 '전쟁 억제'를 기본으로 하되, 억제 실패 시 결정적 승리를 위한 '작전적 사명'을 수행한다고 명시하는 등 큰 틀에서 억제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북한의 핵 교리의 억제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전술핵 실전 사용 위협을 통해 의도적으로 핵 사용 문턱을 낮췄다는 점이며, 이 자체로 한반도의 위기 안정성이 취약해 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즉 핵 무력의 작전적 사명이 강조된다는 것은 위기 단계별 북한의 핵 사용 옵션이 다양화되고 핵 사용 임계점이 낮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핵 위기 상황은 ①선제 핵 사용 유인(압박), ②위기 통제 가능성이라는 기준에 의해 4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가능한 데, 한반도는 그중 가장 위험성이 높은 유형(Firestorm Model)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재래식 위기 상황에서 핵 사용 유인이 크고, 위기 통제가 어려운 이중적 악성 조건을 갖췄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따라서 일단 재래식 전쟁이 발발하면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고, 핵이 일단 사용된 이후에는 조절과 통제가 어려워 극단까지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조건으로 분석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재래식 전쟁 자체에 돌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만약 재래식 전쟁 발발 시 핵전으로 확전을 막기 위해서는 전·평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북핵 위협 고도화에 따라 한미는 ①억제의 실효성 제고와 함께 ②위기 불안정성 문제에 유의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는데, 현재 우리 사회는 첫 번째 문제에만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다.

확장억제는 전략자산 전개와 같은 무력 시위 방식에 매몰되기 보다는 확장억제 내용적 심화와 제도화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 부소장의 충고다.

또 미국의 핵 사용을 담보하려는 노력(억제의 신뢰성)뿐 아니라 한국의 입장이 반영된 형태로 확장억제가 작동되는 것 중요(확장억제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과 거부권)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이나 참수(decapitation)와 같은 득보다 실이 큰 자극적 메시지는 폐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제기했다.

김 부소장은 유사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쟁의 와중에도 고위급 핫라인과 대화가 작동했던 카길 위기의 사례(양국 총리 핫라인 운용, 파키스탄 외교 장관 뉴델리 방문)를 참고해 한반도에서도 전·평시 전략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며 "재래식 충돌 자체를 막는 것이 핵전쟁 예방의 출발이며 이 점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 매우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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