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EU 환경규제 … "위기를 기회로"

2023-03-07 11:03:25 게재

올해 43개 규제 새로 도입 … 국내 산업계 비상

CBAM 시행시 연간 수백억~수천억원 추가 비용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 실사 지침, 신 배터리 규정 등 EU(유럽연합)의 환경규제가 올해부터 본격화될 전망이어서 국내 산업계의 대책마련이 시급해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정만기 부회장은 지난 2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비즈니스 유럽(Business Europe)의 루이자 산토스 사무차장과 만나 EU의 주요 통상 정책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비즈니스 유럽은 22만여개의 대·중소 유럽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경제단체다.

이 자리에서 산토스 국장은 "올해에만 EU에서 새롭게 도입을 추진하는 규제가 43개나 된다"면서 "EU 기업들이 추산하는 바로는 규제 준수를 위한 서류 작성 등 행정 처리를 위해서만 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철강재 수출, 유럽비중 13.5% = 6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EU는 2019년 발표한 '그린 딜'(Green Deal) 전략에 따라 기존 환경 규제의 적용 대상과 기준을 대폭 확대·강화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CBAM △공급망 실사 지침 △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지침(CSRD) 으로 모두 올해 도입 예정이다.

국내 철강·화학업계는 CBAM이 2026년 1월 시행되면 단계별로 연간 수백억~수천억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CBAM은 타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을 EU로 수출할 경우 해당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탄소배출량 추정치를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EU는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시멘트 수소제품 등 6개 품목에 대해 올해 10월부터 2025년까지 전환기간(시범실시)으로 정하고 2026년 1월부터 2034년까지 단계적으로 CBAM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중 철강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EU 수출규모가 크고, 탄소 배출이 많은 고로공정 비중도 높아 향후 수출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2022년 기준 한국산 철강재 수출량(2568만톤) 가운데 EU로의 수출량은 345만9000톤으로 전체의 13.5%를 차지했다. 2020년 9.3%(268만8000톤), 2021년 10.5%(283만5000만톤) 등 대EU 수출 비중은 증가세다.

지난해 EU로의 수출 금액도 43억6900만달러로 전체 수출액(329억3900만달러)의 13.3%에 달했다.

유럽지역외 한국의 지역별 철강수출 비중은 아세안 17.9%(460만2000톤), 일본 12.3%(316만톤), 중국 11.2%(288만3000톤), 미국 9.9%(253만톤) 등이다. CBAM은 신고방식과 탄소배출 계산방식 등으로 역내·역외 차별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울러 ETS는 수출자가 신고하는 데 비해 CBAM은 수입자가 신고하도록 하고 있어 수출자가 수입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 경우 수출자의 원가 정보 등 기업의 영업기밀과 보안 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크다.

◆신 배터리 규정·플라스틱세도 추진 = 이 외에도 EU가 순환 경제 촉진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과 '신 배터리 규정'도 올해 중 발효 예정이며 일부 유럽 회원국에서는 '플라스틱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에코디자인 규정은 제품의 생애주기에서 내구성·재사용가능성·수리가능성·환경발자국 등의 조건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디지털제품여권을 발급해 공급망과 생애주기를 추적관리하고, 소비자가 사전에 해당정보를 알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신배터리 규정은 탄소발자국·내구성·용도변경·재활용이력 등이 포함된 라벨과 QR코드(일명 배터리 여권) 부착을 의무화한다. 2023년 1~2분기 발효 예정으로, 처벌은 EU 회원국 자율에 맡긴다.

화학물질과 관련해서는 '화학물질 분류·포장 규정'(CLP)이 개정 시행될 예정이며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와 '특정 유해 물질 사용 제한 제도'(RoHS)에 적용을 받는 규제 물질이 연내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 EU 규제에 전방위 대응 = 이처럼 쏟아지는 규제로 상황이 녹록지 않지만 국내기업들은 EU 환경규제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종안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소통하는 한편 친환경·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정정민 포스코유럽 브뤼셀사무소장은 지난 2일(현지시간) 주벨기에유럽연합한국문화원에서 내일신문과 만나 "포스코는 EU지역에서 유럽제철소를 제외하고 수출기업 중 넘버원(1위)이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 EU측에 CBAM의 탄소 배출량 계산방식을 사업장 단위가 아닌 공정·제품 단위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현재 ETS가 사업장별 부과 방식인데, 이는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유럽 철강기업의 가동률은 100%가 아니라 평균 70∼80%"라면서 "CBAM이 시행되면 유럽 내 철강사들이 내수판매를 확대할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 가운데 포스코 제품을 좀 더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포스코 브뤼셀사무소는 현재 프랑크푸르트 포스코유럽 대표법인 산하로, 2003년 폐소됐다가 EU 규제에 대한 전방위 대응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2019년 재개소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유럽법인을 둔 LG화학은 최근 헝가리에 일본 도레이와 함께 분리막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핵심원자재법(RMA)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투자를 단행했다.

김진석 법인장은 3일 "CBAM을 시행하면 유럽과 한국의 탄소 배출권 가격차이를 고려할 때 10배정도 비용을 더 내야할 것"이라며 "회사에서 유럽지역에 대관 업무팀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도 EU 집행위원회·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 산업계 입장을 전달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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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벨기에) 프랑크푸르트(독일 )=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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