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지원 확대요구 점차 커지는데 재원은 '제한적'

2023-04-11 10:58:08 게재

소액생계비대출 1천억원 8월쯤 소진, 재정지원 없이 금융권에서 조달 … "시장 기능 살리는 근본대책 필요"

경기침체 여파로 한층 어려움이 가중된 저소득·저신용자들의 불법사금융 이용을 막기 위한 서민금융지원 확대요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소액생계비대출의 추가 재원 마련에 나섰다.

지난 3월 27일 소액생계비(긴급생계비) 대출 상담 및 신청이 시작됐다. 3월 21∼24일까지 대출 상담 예약을 받은 결과 예약 가능 인원의 약 98%인 2만5144명이 상담 신청을 했다. 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은행권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기부금으로 시행되고 있는 소액생계비대출은 8월쯤 1000억원 규모의 재원이 모두 소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1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액생계비대출 일일 신청액이 7억원에서 6억원 초반으로 다소 낮아졌고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1000억원이 소진되는 시기는 8월쯤으로 예상된다"며 "추가 재원 마련을 위한 검토를 벌이고 있으며 5월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 연체 여부와 소득 유무에 상관없이 최대 100만원을 빌려주는 소액생계비대출 상품은 은행들이 500억원, 캠코가 500억원을 기부해 만들어졌다.

은행들은 3년간 매년 500억원 기부를 약속했고 캠코는 올해만 500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이 올해 추가 재원을 조달한다고 해도 당장 내년에는 규모가 500억원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기는 1년이지만 최대 5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상환 자금으로 재대출이 얼마나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내년 예산 반영한다지만 … 규모 크지 않을 듯 = 금융위원회는 내년 예산에 소액생계비대출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세 수입이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면서 재정 지원 여력도 줄어든 상태다. 금융당국은 예산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규모를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추가 재원 마련을 위해 은행권에 다시 손을 벌릴지, 비은행권 금융회사들에 요청할지, 정책금융기관들을 동원할지 불분명하다. 금융당국은 모든 가능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소액생계비대출로 은행권 팔을 비틀어서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지난 2월 은행연합회를 통해 "3년간 10조원 이상의 은행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소액생계비 대출이 포함돼 있다.

또 새희망홀씨 등 은행권의 서민금융상품 공급을 기존 목표인 연간 6조4000억원보다 매년 6000억원씩 확대해 3년간 약 1조8000억원을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이 올해 새희망홀씨 공급 목표를 전년 대비 4000억원(11.7%) 상향한 약 4조원으로 설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새희망홀씨는 연소득 4500만원 이하이면서 개인신용평점 하위 20%이거나 연소득 3500만원 이하(신용도 무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연 10.5%(상한) 금리로 최대 3500만원 이내에서 은행 자체 재원으로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은행권은 새희망홀씨 이외에도 햇살론과 햇살론유스 등의 서민금융상품에 추가로 매년 2000억원씩 3년간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은행권의 사회공헌계획 발표는 '이자 장사'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고액 성과급 지급에 사용했다는 '돈 잔치' 비판이 거세지면서 이뤄진 것이다.

◆"금융권에만 의존하는 방식 한계" = 국회에는 은행의 예대금리차에 따른 수익의 일부를 출연해서 서민금융생활 지원사업에 활용해야 한다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 예대금리차에 따른 수익의 0.3% 이내에서 출연할 경우 출연금은 연 1200억~1700억원(2020~2022년 이자이익 고려)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검토한 내용이다. 수석전문위원실은 검토보고서에서 "다른 업권과의 형평성, 출연의 효과 및 예대금리차 수익을 기준으로 한 출연금 부과의 적절성 등과 관련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또 금융당국은 경기침체에 따른 대출 연체율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은행에 대한 대손충당금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대손충당금뿐만 아니라 특별대손준비금 적립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 중소형은행들의 파산 위험이 국내 은행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낮지만 전 세계적으로 은행의 위기가 부각되고 있어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액생계비대출은 은행이 대출을 지원하는 방식의 다른 서민금융상품과 달리 기부금 형태의 돌려받지 못하는 자금이어서 지원 규모를 더 늘리기에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정부의 재정적자가 심각하고 금융권에만 의존하는 방식의 서민금융지원 방안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취약계층에 대해서도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 기능을 살리는 근본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법정 최고금리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논의를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기에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법정 최고금리는 2021년 7월 20%로 낮아졌다. 하지만 이후 금리 상승 등으로 조달금리가 높아진 대부업체들은 연 20% 금리에도 수익을 낼 수 없게 되면서 저신용자들을 상대로 한 신용대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저축은행과 상호금융권도 문턱을 높이면서 취약계층들은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워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 상황이다. 이 때문에 법정 최고금리를 시장금리에 따라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는 '시장금리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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