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제왕, 물류창고를 겨냥하다

2023-06-28 11:12:04 게재

보스턴 다이내믹스 물류자동화 로봇 '스트레치' … 레제코 "연구에서 제조업으로 전환"

올해 1월 중순 게시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최신 유튜브 동영상은 6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자랑한다. 건설현장을 연상시키는 배경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비계에 나무판자를 올려놓고 공구가 든 가방을 들고 네 계단을 오른 뒤 판자를 뛰어올라 사람에게 가방을 던지고 멋진 공중제비를 선보이며 영상을 마무리한다.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장면은 아무런 특수효과 없이 제작했다.

1992년 MIT 교수 마크 라이버트가 설립한 이 회사는 미국 보스턴 교외 월섬에 본사를 두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최첨단 2족보행 및 4족보행 로봇을 개발해왔다. 이 로봇은 미군의 첨단프로젝트 연구기관인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계약을 맺고 개발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2008년 숲과 눈, 얼음, 잔해 등 모든 종류의 지형에서 미 보병들의 장비를 운반하도록 설계된 4족보행 로봇 '빅독'(BigDog)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통해 처음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접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검색엔진 창립자들이 미래 로봇을 발명하려던 시기 구글의 소유가 됐고, 이후 같은 꿈을 추구하던 손정의 소프트뱅크의 자회사가 됐다. 2021년엔 한국 현대차그룹에 인수됐다. 프랑스 경제전문지 '레제코'(Les Echos)는 27일 "화려한 로봇 동영상이 여전히 유튜브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새로운 미션은 물류창고 자동화에 맞춰지고 있다"며 이 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었다.

올해 5월 30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 로봇자동화 컨퍼런스'(ICRA)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출품한 로봇팔이 한 관람객의 얼굴을 그리고 있다. 사진 AP=연합뉴스


세계기록 가진 4족보행 로봇

2019년 11월부터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CEO가 된 로버트 플레이터는 "30년 동안 우리는 세번이나 스스로를 재창조했다"고 말했다. 회사 설립 당시부터 직원으로 일한 그는 MIT 마크 라이버트 교수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체조 챔피언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색로봇인 '3D 바이페드'(3D Biped)에 뜀뛰기와 공중제비 능력을 적용했다. 그는 "처음 10년 동안은 주로 시뮬레이션 툴을 만들었다. 두번째 10년 동안은 로봇공학 연구로 전환해 모든 종류의 기계를 설계했다. 마지막으로 연구분야에서 제조분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 본사의 작은 박물관은 로봇의 진화를 보여준다. 1990년대로 거슬러오르는 최초의 2족보행 로봇부터 DARPA의 지원을 받은 수많은 프로토타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로봇들이 있다. 전봇대 오르기, 벽 오르기, 공중에서 점프해 장애물 통과하기, 최대한 빨리 달리기 등 특정과제에 대응하는 로봇들이다. 빅독의 사촌인 '치타'는 2012년부터 4족보행 로봇 중 최고 속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자메이카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의 최고기록보다 빠른 45.5㎞/h다.

또한 DARPA 프로젝트인 '아틀라스'는 지속적으로 기술쇼케이스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1년에 1번씩 유튜브에 아틀라스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새로운 동영상을 게시하는데 매번 수백만~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스팟, 반려견 로봇

아틀라스가 연구개발 진전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동안, 훨씬 더 작은 기계인 로봇개 '스팟'(Spot)이 수익을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10년대 초 미 국방부를 위해 설계된 4족보행 로봇의 경량버전인 이 로봇은 7만5000달러(약 9800만원)의 가격으로 2019년 출시 이후 1000대 이상 판매됐다.

이전모델과 마찬가지로 스팟은 가파른 지형을 극복하고 거의 모든 상황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다. 또 원격으로 제어하거나 미리 정의된 경로를 따르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으며, 관절형 팔(밸브를 돌리거나 문을 여는 데 사용), 적외선 카메라(온도기록) 또는 라이더 센서(3D로 지역을 매핑하는 데 사용)를 장착할 수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최고전략책임자 마크 테어만은 "우리는 크게 3가지 영역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첫째, 방사능 오염으로 사람을 보내는 것 같은 복잡하고 위험한 고위험 환경에서의 개입이다. 둘째, 온도나 소음을 분석해 고장이나 누출을 경고하는 등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목적인 산업검사다. 마지막으로 학계에서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스팟을 사용한다.

첫번째 구매자 중 하나는 양조장 점검에 사용하는 미국의 거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 인베브와 항공드론과 결합해 창고를 모니터링하는 미국 보안회사인 애실론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파리 대중교통국(RATP)이 비바테크 전시회에서 이 로봇의 시연을 본 뒤 2021년 스팟을 사들였다. '페르스발'(Perceval, 원탁의 기사 중 한명의 이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로봇은 주로 점검임무에 사용된다. RATP 인프라혁신 프로그램 매니저인 헬렌 바헤즈레 드 란레이는 "우리는 3만5000개의 구조물을 점검하는데, 그중에는 지하철역 아래 지하공간이나 터널처럼 사람이 검사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구조물이 있다"고 설명했다.

페르스발은 약 40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드란데이는 "이러한 임무는 일반적으로 간단한 임무지만 매우 복잡한 공간에서는 로봇의 민첩성, 원격 눈 또는 열화상 카메라가 특히 유용하다"고 말했다. 1년 뒤 이 로봇개는 엔지니어링 구조물 검사를 담당하는 부서에 '입양'됐다. 그는 "직원들의 안전상 너무 위험해 할 수 없었던 연간 약 100건의 검사에 페르스발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경찰과 소방서에서 스팟을 사용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CEO인 플레이터는 "매사추세츠 주경찰은 폭발물이 들어 있을 수 있는 버려진 소포를 검사할 때 스팟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플로리다의 한 마을 경찰이 아버지에게 납치된 어린 소년을 구출하기 위해 스팟을 투입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무장로봇개에 대한 반발

하지만 로봇개가 항상 호평을 받는 건 아니다. 2021년 4월 뉴욕 경찰국은 로봇개 활용에 거센 반발이 일어 스팟을 돌려보내야 했다.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뉴욕 하원의원이 경찰 로봇견을 '지상감시드론'이라고 지적하면서다.

군사연구를 기반으로 태동한 이 회사의 배경을 고려하면 이같은 반발이 낯선 것은 아니다. 새로운 아틀라스 비디오가 나올 때마다 '로보캅'이나 '터미네이터'와 비교하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UN이 자율살상무기, 즉 '킬러로봇' 금지에 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이 주제에 분명한 입장을 취했다. 지난해 10월 이 회사는 로봇을 전쟁무기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우리는 원격제어로봇이나 자율로봇에 무기를 추가하는 것이 새로운 위험과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믿는다"며 "정책입안자들이 우리와 협력해 로봇의 안전한 사용을 촉진하고 오용을 금지해야 한다"을 촉구했다.

물류창고 자동화에 나선 스트레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최신 제품군인 '스트레치'(Stretch)가 살상무기가 될 가능성은 낮다. 롤링카트에 장착돼 흡입 컵이 달린 이 로봇팔은 물류창고를 위해 설계됐다. 창고로봇사업부 부사장 겸 책임자인 케빈 블랭크스푸어는 스트레치의 임무를 '인간과 동등한 속도'로 박스에서 컨테이너와 세미 트레일러에서 물건을 꺼내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스트레치는 물류를 위해 특별히 설계됐다. 동일한 기술을 사용해 설계됐지만 아틀라스나 스팟과 같은 일반적인 로봇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사실 스트레치 개발은 아틀라스가 상자를 옮기는 모습을 담은 2016년 동영상에서 시작됐다. 플레이터 CEO는 "창고관리자들로부터 구매를 원하는 전화가 여러통 걸려왔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수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첫번째 시제품인 '핸들'(Handle)은 두 개의 독립된 바퀴 위에 두개의 팔이 매달려 있었다. 화려하지만 너무 느렸던 핸들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박물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후속작인 스트레치는 자동차공장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기계팔처럼 생겼으며, 인간 '동료'가 다치지 않도록 와이어 케이지 안에서 작업한다.

자동화되고 있는 물류부문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경영진은 스트레치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지난해 유통대기업인 DHL서플라이체인은 3년간 1500만달러 규모의 선주문을 체결했으며, 현재 일부 물류창고에 스트레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케빈 블랭크스푸어는 "우리를 찾는 고객들의 진짜 문제는 인력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추위나 더위 속에서 하루종일 20㎏짜리 상자를 들어올리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라. 이는 이직률이 높고 작업장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작업"이라며 스트레치의 성공 가능성을 자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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