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부, 국민 눈높이 서훈심사 방침 밝혀
쟁점안건 특별분과위 논의
동농 김가진 공과 재조명될 듯
2일 국가보훈부가 밝힌 독립유공자에 대한 공적심사 개선 방침은 그동안 이런 저런 이유로 번번이 서훈이 반려된 몇몇 독립운동가 유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공적심사위원회를 기존 2심제에서 특별분과위를 신설한 3심제로 확대해 쟁점 안건을 특별분과위에서 심층 논의하게 되는 과정에서 유공자의 공과에 대해 좀 더 종합적인 판단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더욱이 그동안 심사를 주도해 온 학계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법률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에게도 참여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독립운동가 서훈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다 다채로운 시각이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이번에 재검토 대상으로 거론되는 동농 김가진(1846∼1922)의 경우 '의병탄압' '친일파' '복벽파'라는 오해와 누명으로 30년 동안 8번의 서훈 신청이 반려돼 왔다. 아들(김의한)과 며느리(정정화)까지 서훈을 받았지만 정작 온 식솔을 이끌고 망명한 동농 선생은 서훈을 받지 못했다. 더욱이 조국 독립을 위해 온 집안이 싸웠지만 동농은 상하이 송경령능원에, 아들 김의한은 북한 재북인사묘에, 며느리 정정화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이산가족이다. 영원한 임정 소년으로 불리다 지난해 8월 타계한 손자 김자동 선생이 할아버지 서훈 문제를 풀고 유해를 국내로 모셔 오려 필사의 노력을 했던 것도 이런 사연 때문이다.
동농 김가진 선생은 독립협회 창설에 참여하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한 인물이다. 1922년 장례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장으로 치러질 정도로 독립운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도록 서훈을 받지 못해 유해 송환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 김자동 선생은 2018년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사촌형도 서훈을 받았는데 할아버지만 서훈을 못 받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 우리 집안이 독립운동하게 된 게 다 할아버지 때문인데..."라며 "서훈도 서훈이지만 묘소를 모셔 오지 못한 게 제일 마음에 걸린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6월 김가진 선생 선거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도 동농에 대한 재평가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규수 일본 히토쓰바시대학 한국학연구센터 교수는 "동농에 대한 재평가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주장했고, 윤상원 전북대 교수는 "독립운동을 하다 전향해 친일행위를 하는 이들은 많이 봤지만 이미 호의호식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로 뛰어든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라면서 "김가진이 남작 작위를 버리고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한 행위는 매우 소중하다"고 밝혔다. 윤 교수는 이어 "김가진은 작위와 그에 따른 온갖 일신영달을 버리고 상해로 망명했다"면서 "개인의 선택이었지만 그 결과는 집안 전체의 고통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종찬 우당장학회 이사장(현 광복회장)도 "동농 김가진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장으로 모셨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독립운동을 했던 쟁쟁한 분들이고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분들"이라며 "그분들의 김가진에 대한 평가가 이미 있는데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별도로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대의 쟁쟁한 독립운동가들도 인정하는 인물을 수십년이 지난 후대에서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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