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유권자들, 탁신 귀국 후 배신에 불만 표출

2023-09-15 10:39:29 게재

"우리가 아닌 자신 위해 귀국"

군부세력 손잡고 정부 구성해

태국의 억만장자 탁신 친나왓 전 총리가 1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의 귀국은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넨셜타임즈(FT)가 14일 보도했다. 지난달 개인 제트기를 타고 탁신이 귀국한 날 그의 지지기반인 프아타이당은 군부 진영 정당들과 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5월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진보적인 전진당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번복한 것이다. 전진당의 공약인 '불경죄 폐지'에 반대하는 군부가 임명한 상원이 한 목소리고 반대해 전진당 대표가 총리로 선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탁신은 귀국 즉시 부패혐의로 투옥됐지만, 국왕의 사면으로 형량이 8년에서 1년으로 단축됐다. 그는 수감 첫날밤부터 경찰병원 개인실에서 머물고 있는데, 열악한 일반교도소와 달리 에어컨, TV, 냉장고 등을 갖춘 병실에서 지내는 것으로 알려지며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탁신의 고향 치앙마이에서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는 마눈차야 두앙동 씨는 "탁신이 돌아오는 것은 괜찮지만 그가 돌아온 이유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는 점은 만족스럽지 않다"며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프아타이당 지지에서 전진당 지지로 바꿨다는 학교 교사 포차마른 싱하라치는 "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정부에 있다는 사실에 실망했다"며 "이제 태국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정치학부 학장인 파일린 푸지나판에 따르면 푸아타이당이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못하고 새로운 유권자 세대에 대응하지 못해 당의 지지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들이 충분히 매력적인 새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고, 당이 젊은 유권자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탁신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파일린 학장은 "그들은 탁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제외하고는 민주주의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자신이 만난 많은 푸아타이 지지자들이 최근 군부와 함께 통치하기로 한 합의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2010년 군부는 몇 주 동안 방콕 중심부를 점거했던 친탁신 '빨간 셔츠' 시위대 수십 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비디오그래퍼인 나타퐁 아와이와논은 "빨간 셔츠가 그를 위해 싸웠고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며 "이제 그들은 헛되이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치앙마이 시에서 패배한 푸아타이 국회의원 후보인 자카폰 탕수티탐은 실망한 당 지지자들에게 공감을 표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때가 오면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레타 타비신 신임 총리의 보좌관으로 임명된 자카폰은 "우리는 선거 캠페인에서 논의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군부와 함께 집권한 푸아타이당이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열망과 현 상황의 유지를 바라는 군부 등 기득권세력 사이에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 태국 시민들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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