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주가 만난 '비즈니스 한류의 개척자들'
"중동의 명사들 모이는 '바레인 사랑방' 주인입니다"
킹덤팰리스호텔-아리랑&에도 식당 오한남 사장
혹시 일자리를 찾고 계십니까. 그런 당신은 '우물 안 개구리'는 아닌지요.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글로벌 무대를 살펴보십시오. 지구촌 곳곳에서 '비즈니스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개척자들이 많습니다. 그 생생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실래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더군요.
까마득하게 뻗은 긴 다리가 거친 바다 한 가운데로 거침없이 내 달리고 있었다. 강화도 두 배 정도 넓이의 섬나라인 바레인과 중동의 대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연결하는 장장 25㎞의 킹 파하드 코즈웨이 연육교다. 토요일 오후 바레인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킹 파하드 코즈웨이는 심한 교통체증을 빚고 있었다. 반면 사우디에서 바레인으로 들어오는 반대편 차선은 텅텅 비어있었다.
"사우디 사람들은 주말인 목요일 저녁이나 금요일 오전에 바레인으로 건너옵니다. 바레인은 사우디보다 훨씬 개방적인 나라거든요 바레인에서 주말을 즐긴 사람들이 토요일 오후엔 다시 사우디로 돌아가지요. 그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저렇게 교통체증이 빚어지는 거예요. 번호판이 KSA로 시작되는 차량은 전부 사우디 사람들 겁니다."
<사진:걸프만 중앙에 위치한 바레인은 중개무역지로서의 활발한 역할 때문에 '중동의 홍콩'으로 불리 우고 있다.>
사우디로 가는 꽉 막힌 킹 파하드 코즈웨이 위에서 벤츠를 운전하고 가는 사람은 바레인의 동포 사업가 오한남(61) 사장이다. 바레인과 사우디 국경에 있는 전망대로 바다 바람을 쐬러 나선 길이었다. 오 사장은 엘리트 코스를 벗어난 적이 없는 스포츠인이다. 배구명문인 대신고등학교의 148연승을 일궈낸 주역들 중 하나였고, 국가배구대표 선수를 거쳐 실업팀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한때 우리나라 배구계를 주름잡던 배구스타 출신인 오 사장은 지금은 바레인에서 중동의 명소로 꼽히는 한국음식점 아리랑&에도와 킹덤 팰리스 호텔을 운영하는 큰 사업가로 변신했다. 오 사장은 '페르시아만의 사랑방 주인'이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인근 국가의 사람들은 오 사장이 운영하는 아리랑&에도 식당에서 한식과 일식 등 별미를 즐기고, 식당 바로 옆의 킹덤 팰리스 호텔에서 며칠 씩 편하게 쉬고 간다. 중동의 명사들이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 사장은 또한 12기부터 현재 16기까지 5대 째 평통자문위원을 역임하고 있으며, 바레인 한인회장과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지회장 자리도 맡고 있다. 올 1월엔 한국대학배구연맹 회장에 추대되면서 다시 배구 지도자로 컴백을 하기도 했다.
<사진:바레인에서 아리랑 & 에도 한식당과 킹덤 팰리스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오한남 사장이 무하마드 알 칼리파(맨 오른쪽) 바레인배구협회장 및 바레인 배구국가대표팀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배구 국가대표 출신으로 바레인 국가대표를 지도하기도 했던 오 사장은 올해 초 4년 임기의 한국대학배구연맹 회장을 맡아 스포츠 민간외교관 역할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바레인과 사우디을 가르는 국경에 도착하자 둥근 타워모양의 쌍둥이 전망대가 양국 국경을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 꼭대기로 올랐다. 툭 터진 페르시아만의 전망이 시야로 밀려든다. 한 참 바다 경치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였다. 한 가족 나들이객들이 오 사장을 보고는 반갑게 영어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사진:오한남 사장은 바레인의 명소가 된 한식당 '아리랑 & 에도' 덕에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을 정도로 유명인사가 됐다. 오 사장이 바레인과 사우디 국경에 있는 킹 파하드 코즈웨이 전망대에서 우연히 만난 필리핀인 단골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스터 오, 여긴 웬일이십니까. 저 알아보시겠어요. 사장님 음식점 아리랑&에도 단골입니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은 사장님 식당에서 밥을 먹는답니다."
오 사장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바레인 거주 필리핀 사람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주말 나들이를 나온 것이었다. 건축일을 하는 제프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아주 쾌활하고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오 사장님, 저기 사우디 방향으로 가는 꽉 막힌 도로를 좀 보세요. 당신 음식점과 호텔에서 지갑을 비우고 사우디로 돌아가는 사우디 사람들을 태운 차들입니다. 아예 이곳 전망대에 아리랑&에도 지점을 하나 차리는 게 어때요. 소주랑 삼겹살, 불고기, 잡채, 김치를 이곳에서 파는 거예요. 사우디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한 잔 더 하고 가게 만드는 겁니다."
돌아오는 길은 뻥 뚫려 있었다. 잠깐 바깥 경치 구경을 하는 사이 어느 새 차는 마나마 시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아리랑&에도가 자리 잡은 곳은 서울의 무교동쯤에 해당하는 곳이다. 마나마의 신흥 상업지구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곳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여직원이 달려 나오면서 "어서 오세요" 라고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홀 안은 빈자리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손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한국인과 현지 아랍인은 물론 전 세계 인종이 다 섞여 있었다. 각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언어도 한국어와 아랍어, 영어, 불어, 일본어 등 각양각색이다.
"오늘은 그래도 덜 붐비는 편입니다. 수요일과 목요일, 금요일은 1층 식당은 물론 2층 바까지 꽉 들어찹니다. 예약 손님이 아니면 받지를 못할 정도지요. 이곳은 단지 식당이 아닙니다. 바레인과 사우디에서 한 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는 명소랍니다. 중동에선 유명한 식당이지요.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사람들이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애용하는 곳입니다. 사교의 장이기도 하고 정보교류의 장이기도 합니다. 사우디에 있는 한국 업체에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선을 대려고 하면 힘들지만 이곳에서 보름정도 죽치고 있으면 웬만한 요인들은 다 만날 수 있어요."
오 사장 식당경영의 핵심은 한 마디로 '친절의 선순환'이었다. 오 사장의 직원들은 고객들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반드시 보상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었다. 직원들이 친절하면 손님의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면 손님은 넉넉한 팁으로 보상을 하고, 팁을 받은 직원은 신바람을 내면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저희 식당에 자주 오시는 우리나라 대기업 임원 한 분이 저에게 식당 경영 노하우 좀 가르쳐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거창하게 경영 노하우라고 할 게 없습니다. 손님들이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마음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는 게 경영 노하우라면 노하우라고 할 수 있지요. 굳이 제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게 있다면 직원들의 예절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우리 직원들은 단골손님이 아니더라도 항상 이름을 불러드립니다. 요즘은 대개 카드로 음식 값을 계산하잖아요. 그 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 계산서에 그분 이름을 적도록 교육을 시킵니다. 식사를 하고 나갈 때 '미스터 박, 맛있게 드셨나요.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하면 손님들 기분이 좋아지지요. 그리고 그 손님이 다시 오면 이름을 기억했다가 '어서 오세요. 미스터 박'하고 인사를 하면 손님들이 깜짝 놀라지요. 그래서 우리 직원들은 손님들로부터 팁도 많이 받고 있어요."
<사진: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작은 항구에서 고깃배 선원들이 식수를 싣고 있다. 바레인은 3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도서국가이다.>
오 사장의 집은 마나마 도심을 살짝 벗어난 바닷가에 위치해 있었다. 48층짜리 초고층 빌딩 3개가 페르시아만을 굽어보고 있었다. 바레인의 알짜배기 부자들이 몰려 산다는 진 아브라지 루루 빌딩이이었다. 오 사장은 골드타워와 블랙타워, 실버타워 등 3개 빌딩 중 가장 비싼 골드타워의 스카이라운지 층에 살고 있었다. 위압적인 외부 모습과는 달리 아파트 내부는 아주 소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그곳의 안주인인 인해경 여사가 차와 과일을 내왔다.
48층 전망 좋은 아파트에서 차를 마시면서 배구인에서 사업가로 변신을 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오 사장>: "운동을 하면서 거의 져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배구명문 대신고등학교와 대한항공, 명지대학 등에서 여한 없는 선수생활을 했지요. 은퇴 후 81년 한양여고 코치생활을 조금 하다가 82년 11월 카타르 알 알리 스포츠클럽 팀 감독으로 간 게 첫 중동진출입니다. 85년 다시 귀국해서 91년까지 한일합섬 지도를 맡았지요. 91년도에 두바이 실업팀 초청으로 다시 중동 땅을 밟았어요. 배구는 축구와 농구, 핸드볼 등과 함께 중동 4대 스포츠로 꼽히는 인기 종목입니다. 80~90년대 국제무대에서 한국배구 지도자들에 대한 인기가 아주 높았어요. 사우디의 경우 1부와 2부, 3부 코치가 전부 우리나라 배구인으로 채워졌을 때도 있었습니다. 1993년에 다시 바레인 체육부 초청으로 이곳에 왔지요. 바레인 대표팀과 나세르 클럽의 감독생활을 했습니다."
<인 여사>: "나중에 사우디와 카타르 클럽팀에서도 남편을 불렀어요. 그중에서도 사우디는 아주 좋은 조건을 제시했어요. 연봉도 높았고, 집과 차까지 제공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우디 인터내셔널 스쿨에 아이들 들어갈 자리가 없더라고요. 아이들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 때 우리 아이들은 마나마에 있는 이탈리아 가톨릭계 학교인 시크릿 하트 스쿨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결국 아이들 교육 때문에 사우디 클럽팀의 오퍼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오 사장>: "스포츠 지도자는 성적에 따라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파리 목숨이지요. 잘 나갈 때 미리 어떻게 살 것인지 구상을 해야 합니다. 바레인에서도 이곳저곳 클럽팀에서 계속 붙들었지만 지속가능한 삶의 방편을 찾기로 했지요. 마침 수도 마나마에 있는 타이러스 호텔 내 한식당이 매물로 나왔더라고요. 우리나라 동포 여성이 하던 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이었습니다. 1994년 그걸 인수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인 여사>: "40명 정도 받을 수 있는 조그만 식당이었어요. 그런데 처음 해본 일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 때 우리 식당이 호텔 2층에 있었어요. 하도 손님이 안 오니까 남편이 식당 창문을 통해 주차장을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더라고요. 혹시나 주차장에 차를 대는 손님이 있나 없나 목을 빼고 보는 거였어요. 그 때 마음이 너무 아파서 펑펑 울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텔 매니저가 바뀌면서 입주 업체들의 임대료를 대폭 올렸습니다. 심지어 주차비까지 내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다 내면 남는 게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아이 하나가 식당 자리 하나가 난 곳이 있다며 소개를 해 주더라고요. 그곳에서 지금의 아리랑&에도라는 이름으로 새로 식당을 개업하게 된 거지요.
새롭게 개업을 하면서 남편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어요. 우선 한식과 일식을 함께 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적중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중동사람들에게 일식이 훨씬 더 알려져 있었거든요. 견물생심 아닙니까. 일식 먹으러 왔던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하나 둘 한식을 시키기 시작하더라고요. 활어회 수족관도 현지인들의 호기심을 끄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바레인이 섬나라잖아요. 마나마에도 시트라와 히드 등 배 들어오는 작은 항구들이 많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금바리라고 부르는 하무르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도미, 오징어 등 활어를 사다가 넣고 팔았어요."
<오 사장>: "식사만 팔아서는 한계가 있어요. 식당 2층에는 바와 스테이지도 꾸몄습니다. 술을 팔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거지요. 필리핀과 에티오피아 가수를 전속으로 고용해서 팝송과 아랍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2층 바는 아랍손님으로 바글바글 했어요. 그러다가 한류바람을 타면서 우리 음식을 찾는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드라마가 이곳에서 방영되면서 한국음식 많이 알려졌어요. 드라마에 소주 마시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고 바레인 손님들도 소주를 주문하기 시작하더군요. 요즘 우리 식당에서 한 달에 80~90박스 정도의 소주가 팔립니다."
배구선수들은 눈이 빠르다. 배구는 살아있는 공을 상대하는 하는 것이다. 잠깐 한 눈을 팔면 구멍이 생기고, 또한 그 빈 구멍을 찾는 빠른 눈을 필요로 하는 게 바로 배구다. 식당사업을 하던 오 사장의 눈에 새로운 사업의 빈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호텔사업이었다. 오 사장이 운영하는 킹덤 팰리스 호텔은 아리랑&에도 식당에서 불과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말쑥한 모양을 한 7층짜리 건물이었다. 1층에 오 사장의 방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오 사장의 호텔사업 이야기를 들었다.
"식당만 가지고는 양이 차지를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손님들이 호텔방을 구하지 못해 난리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승부를 걸어보기로 한 거지요. 98년 10월 객실 40개 정도 규모의 호텔을 시작했습니다. 식당을 하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호텔을 렌트한 거지요. 개업을 하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영업이 잘 되더라고요. 이곳 주말인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손님을 받지 못할 정도로 객실이 꽉꽉 찾습니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카타르, UAE, 오만 등에서 사람들이 엄청 몰려오거든요. 한 마디로 바레인은 인근 중동국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면서 휴식을 취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워낙 호텔사업이 잘 되니까 하나 둘씩 자꾸 호텔을 늘리게 되더라고요. 처음 시작한 후라 플라자와 후라 플라라1, 후라 플라자2, 비치플라자, 비치 타워, 그리고 이곳 킹덤 팔레스까지 모두 6개까지 호텔을 늘렸습니다. 모두 객실 30~40개 규모의 중소형 호텔이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경쟁호텔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하나하나 접기 시작했습니다. 장사가 안 돼서 접은 건 아니었지만 너무 일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리도 너무 버거웠고요. 그래서 권리금을 받고 다 넘겼습니다. 2006년 9월 렌트를 한 5개 호텔을 정리하고 1개를 샀어요. 렌트한 호텔 수를 줄인 대신 호텔 한 개를 사버린 거지요. 당시 우리 돈으로 70억 원 정도에 샀습니다. 호텔건물 담보로 은행돈 30억 원 정도는 빌렸지요. 그런데 4년 만에 싹 다 갚았어요. 그 전까지 만해도 외국인은 부동산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후라지역과 아무아지 섬 개발 지역 등은 외국인들에게도 부동산을 살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어요. 제가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호텔을 취득해서 허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오 사장은 요즘 다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바로 교육사업이다. 외국인 학생들은 넘치고, 인터내셔널 스쿨 자리는 만성적으로 부족한 바레인의 교육현실을 오래 동안 지켜봐온 끝에 내린 결론이다. 자신을 사업가로 키워준 바레인 사회에 대한 기여의 방편으로 생각해 낸 길이도 하다. 바레인의 빈 공백을 향한 오 사장의 강 스파이크가 이번엔 어떤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낼까.
박상주 언론인·오지여행가 sangjo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