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2세대 중견국 그룹 '믹타(MIKTA)'
중견국 역량 모아 기후변화·개발협력·핵안보 문제 논의
한국·멕시코·인니·터키·호주 참여, 지난해 9월 출범 … 내년 서울 3차회의서 비전선언문·공동프로젝트 발표 전망
지난달 17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중견국 협력체 '믹타(MIKTA)' 소속 외교장관들은 희생자를 애도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25일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멕시코, 인도네시아, 터키, 호주로 구성된 믹타가 발빠르게 여객기 피격 공동성명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외교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983년 KAL기 피격사건을 직접 담당했던 윤병세 외교장관은 시카고협약(국제민간항공협약) 개정 과정에서 민항기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추가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외교부는 이번 말레이기 사건과 관련해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촉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제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담은 공동성명 초안을 잡았다.
말레이기 피격 사건에 대한 공동성명은 믹타 출범 후 두 번째 결과물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위협이 고조되던 지난 4월에는 북핵문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4월 13~14일 멕시코시티에서 회동을 가진 5개국 장관들은 북한이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고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위협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추가 도발행위를 중단할 것을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이 성명이 나오는 데에도 우리 외교부의 역할이 컸다.
◆우리 주도로 만든 중견국 협력체 = 믹타라는 중견국 협력체가 만들어진 것은 우리 외교부의 주도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7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외교안보포럼(ARF) 계기에 윤 장관은 마르띠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카 전 호주 외교장관과 중견국 외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해 8월에는 믿 멕시코 외교장관과 전화통화를 통해 중견국 협력 메커니즘 출범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고, 9월 G20회의에 참석한 다붓오울루 터키 외교장관과도 협력체 출범을 논의했다. 9월 25일 열린 유엔총회를 계기로 'MIKTA'라는 협력체가 출범하게 됐다. MIKTA라는 이름은 5개국 영어이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믹타의 구성을 보면 모두 G20 회원국으로 경제발전 정도가 비슷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시장경제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들이다. 이상화 외교부 정책기획관실 공보담당관은 "지역적으로 모여 있지 않고 각자 그 대륙에서 대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국가들"이라며 "지역적인 배타성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가들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믹타는 출범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만큼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항마로 오해받기도 한다. BRICS가 미국 중심의 질서에 도전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데 믹타가 이에 반대하는 모임으로 보는 이들도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상화 공보담당관은 "현재는 믹타가 어떤 협의체인지 홍보하는 아웃리치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서 "내년 3차회의가 열리면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의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를 통해 믹타의 지향점이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번의 회의를 거치는 동안 5개국은 글로벌 이슈와 지역 현안 등 자국의 관심의제를 제시하고 공동 협력을 할 수 있는 의제로 좁혀가는 과정에 있다. 관심의제로는 개발협력, 핵안보, 기후변화, 환경, 보건 등이 논의되고 있다.
올 9월부터 우리 외교부가 차기 간사국을 맡게 되면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기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 서울에서 열리는 믹타 3차회의에서는 비전선언문을 발표하고 공동 프로젝트로 개발도상국 지원 방안을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외교 지평 넓히는 기회" = 우리 정부가 중견국 외교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기존 강대국의 능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기후변화, 빈곤분쟁 등 글로벌 이슈가 증가하면서 주도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 중국의 부상 등 글로벌 권력 이동과 G7, BRICS 등 블록화 경쟁 등으로 글로벌 거버넌스(협력)에 공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이를 중재하고 조정할 국가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견국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 외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중견국 외교를 통해 글로벌 이슈 논의과정과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믹타를 통해 한미동맹, 미·중·일·러 주변 강대국 관계에 집중돼 있는 외교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믹타의 출범은 기존의 '중견국으로서의 외교'를 넘어 '중견국에 대한 외교'를 달성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강선주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한국의 외교 패러다임은 오랫동안 한반도 평화와 안정, 경제발전이라는 국가 목표에 부합하도록 설정돼 있었고 그러한 외교 패러다임은 실제로 한반도의 안정과 한국이 세계 2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유용했다"면서 "이번 믹타의 출범은 변화된 한국에 부합하는 외교 패러다임인 중견국 외교로 전환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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