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머리만 알고 가슴은 모르는 일본

중국의 부상에 위협 느끼는 일본, 한국에 손 내밀지만…

2014-09-03 00:00:01 게재

일, 중국의 패권적 질서로 동아시아 정세 재편 우려 … 위안부 문제, 한일관계 '걸림돌'로 인식하지만 새로운 해법 제시 안해

일본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달 24~30일 한일기자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한국의 '친중국적' 태도를 걱정하고 있었다. 북한과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한국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다르게 반응하는 게 의아해 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자위대 파견은 한국과의 공조를 위한 것인데 한국이 왜 그렇게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지 일본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일본인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인에게 신사는 가볍게 산책할수 있는 '공원'이자 기도를 드리는 '종교시설'이다. 물론 아베 신조 총리처럼 다른 의미로 참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사진 박소원 기자


◆중국에 대한 안보위협 인식 매우 커 = 일본이 주요 안보위협 대상으로 꼽는 곳은 북한과 중국이다.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로 일본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은 영토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충돌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위협 체감도는 매우 높다.

지난달 25일 만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국력이 증대된 나라는 국력 증대에 따른 책임이 요구된다. 그리고 국제적인 룰을 지키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발전해야 한다"면서 "중국도 그런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반드시 모든 것이 다 그렇진 않다"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 국방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투명성 있는 설명이 뒤따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외무성 관계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는 중국 국방비가 주변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주변 국가와 갈등을 겪고 있는 곳은 일본과 얽힌 센카쿠 열도를 비롯해 베트남과 필리핀 등과 영토 분쟁을 벌이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지다.

이 관계자는 "며칠 전에 미 공군기에 중국 비행기가 10미터 정도까지 접근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또 일본 자위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군기에 중국 비행기가 아주 가깝게 접근했다"며 "이것은 잘못하면 아주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한 것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보였다. 외무성 관계자는 "공해 상에서 자유롭게 비행한다는 것은 국제법상의 일반 원칙인데 중국은 이런 일반 법칙을 깨고 부당하게 (방공식별구역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최근 중국이 보인 일련의 행동에 대해 국제규범이 아닌 패권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일정상회담 개최 조건으로 중국이 '센카쿠 열도가 영유권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한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 등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적극적인 대응방침을 세우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기치 하에 국가안전보장협의회(NSC)를 설치하고 국가안전보장 전략도 만들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각의 결정도 내려졌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위협을 크게 느끼면서도 자국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한국의 우려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외무성 관계자는 "일본과 한국은 생각하는 것도 같고 놓여진 상황도 같다"고 말해 한국에 대한 일본의 '얕은' 인식을 드러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도 미일동맹 강화를 위한 것이고 결국 이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에도 유익한 것이라는 것이 일본의 생각이다.

◆위안부 문제, 한일관계 최대 장애요인 =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자위대 파견을 요청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국민들은 양가적인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정부가 역사문제와 안보협력분야의 대일본 외교에서 딜레마를 겪는 상황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2년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비밀리에 추진했다가 홍역을 겪었고 지난해 12월에는 남수단 주둔 한빛부대가 일본 탄약을 지원받은 문제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 한일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위안부 문제를 꼽고 있다. 청구권협정으로 법적인 책임 문제가 해소됐다고 보는 일본이 내놓을 수 있는 해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도 한국이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있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피해자 할머니의 '생활안정'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진정한 사과'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놓친 것이다.

일본내에서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되는 오누마 야스아키 메이지대 특임교수(전 아시아여성기금 이사)조차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절망스럽다는 평가를 내놨다. 지난달 25일 만난 오누마 교수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렵고 힘들게 사시고 있다. 여생도 길지 않다"며 "이분들이 어떻게 그동안의 불행을 만회할 수 있을까를 집중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사라졌다"고 섭섭해 했다.

그는 "과거에 만났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관계자가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50년이 걸리든 100년이 걸리든 어쩔 수 없다'고 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개인의 행복이나 그들이 놓인 처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정의 실현 문제로 바꿔치기 됐다"고 비판했다.

일부 지원단체가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식민지배로 인한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칼로 무 자르듯이 쉽게 불식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오누마 교수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오누마 교수는 90년대 제안됐던 아시아여성기금 방안(총리의 사죄편지 포함)이 아베 정부에서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리핀, 대만,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의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이 제시한 보상에 응하면서 이 문제가 마무리됐지만 수십년간 식민지배를 경험한 한국에서는 여전히 위안부 문제가 현재진행형이다.

위안부 문제를 지금까지 붙들고 있는 한국을 일본이 이해하지 못하듯이, 진정한 역사반성 없는 일본이 국제평화를 위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을 한국도 쉽게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역사문제와 안보협력 문제는 따로 떼어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해자'가 그런 제안을 할 때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관련기사]
- [내일의 눈] 일본 수산물과 위안부 문제의 공통점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박소원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