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중국이 광범위한 '주변국 외교' 펼치는 이유

"중국의 시선은 인도양·태평양으로 옮겨갔다"

2014-09-25 13:56:37 게재

'아시아태평양'에서 '인도양·태평양 시대'로 … 동남·중앙·남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 목표

이선진 교수 인터뷰

동아시아의 중심이 동북아시아에서 동남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의 경제성장으로 이 지역 시장잠재력이 커지고 동북아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힘들다고 판단한 중국은 동남아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선진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교수는 외교관 출신이다. 1975년 9월 외무부에 입부(외시 9회)해 주일공사와 주상하이 총영사, 외교부 외교정책실장,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지낸 중국-동남아시아 지역전문가다. 이 교수는 자비로 중국과 동남아시아 접경지역을 6년째 육로를 따라 장기여행을 하며 지역경제 통합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 박소원 기자

외교관 출신 동남아전문가인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이제는 중국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시아는 아시아태평양경제공동체(APEC)로 대표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주의에서 점차 '인도양·태평양' 지역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이미 미국도 '인도양·태평양' 지역주의를 언급하고 있으며 동남아의 맹주 인도네시아도 새로운 동아시아의 질서로 '인도양·태평양' 지역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인도 등 서남아시아로 가려면 동남아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중국도 인도와 연결하려면 육로든 해로든 동남아를 거쳐야 한다. 동남아의 지리적 중요도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옛날에는 동남아 지역에 먹을 게 없으니까 동북아에만 머물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 중국, 일본은 상대 견제의 측면에서나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동북아에서 동남아, 서남아를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남아의 지리·전략적인 매력에 동남아 자체의 능력 배양이 조화되면 점점 더 동북아보다 동남아쪽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신의 능력 배양을 위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은 2015년 '아세안공동체'를 구축한다는 계획 하에 통합을 추진 중이다. 아세안의 통합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이 교수는 "그동안 과정을 보면 통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완벽한 통합이 실현되느냐 아니냐보다 현재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라오스의 경우 5년 전 만 해도 공산정권 붕괴 우려로 개방에 거부감을 가졌는데 지금 적극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아세안의 지리·경제적 중요성을 알고 있는 중국은 그동안의 대미 중심 외교에서 동남아 등 주변국 외교에 비중을 더 두는 모습으로 변했다. 이 교수는 "중국 외교의 방향이 바뀌게 된 것은 중국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향후 5~10년간 미국과는 정치, 외교, 안보 협력의 여지가 많지 않고 일본과도 경제협력은 지속되겠지만 정치, 안보관계에서는 취약점을 안고 갈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와도 정치, 안보 협력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추가적인 협력의 여지가 적고, 경제협력의 여지는 많으나 러시아 경제 규모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지난 2013년 10월 주변국 외교에 관한 좌담회에서 주변국 외교의 실천 방안으로 실크로드 구상을 발표했다. 실크로드 구상은 중국의 세계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의 주변국 외교 전략은 미국의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취임 후 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이 공존하는 신형대국관계를 추구했으나 당분간 이 관계를 실현하기 어려운 상태"라며 "일단은 중앙아, 동남아, 남아시아로 방향을 돌려 이들 지역에서 정치, 경제적 성장 동력을 만들어 세계 대국의 영향권을 만들어나가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동남아 접근 전략은 계속 바뀌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국경을 중심으로 대동남아 접근 정책을 썼다.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에 국경을 개방하고 국경을 넘는 교통망 건설을 지원해주는 한편 국경무역 및 주민 왕래를 장려해 성공을 거뒀다.

2008년에는 통킹 만(중국명: 보하이 만)을 본격 개발하면서 '해양 아세안' 국가인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에 접근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아세안에서 낙후국가로 꼽혔던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의 교류에서 외연을 확대해 아세안에 대한 해양 접근 전략을 시도한 것이다.

중국이 오랜 기간에 걸쳐 아세안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모든 부분에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영해분쟁으로 인한 베트남과의 관계는 중국의 대아세안 전략 전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은 최근 베트남과의 분쟁수역에 석유시추선을 설치하는 등 남중국해를 자국의 핵심이해 지역으로 간주, 강경 대응하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은 초창기 아세안 진출을 시작하면서 운남-운서-베트남 루트를 가장 중시했다"며 "중국과 베트남 관계가 순조로웠다면 중국의 대아세안 진출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여전히 이 루트에 대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다. 스촨, 귀저우, 윈난 등 내륙지방에서 동남아, 대양주로 나가는 가장 경제적인 루트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중국의 대외정책대로 추진될 것으로 이 교수는 내다보고 있다. 그는 "중국은 영토분쟁을 겪고 있는 베트남과 필리핀에 대해 다른 대응을 하고 있다"며 "미국을 끌어들인 필리핀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만 베트남에 대해서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베트남 루트 개발을 위한 포석을 두고 있다는 얘기다.

미얀마의 철도 건설 문제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중국과 미얀마 정부는 미얀마 무세-라쇼-만달레이를 거쳐 인도양까지 이어지는 철도를 건설하기로 MOU를 맺었지만 지금은 보류된 상태다.

이 교수는 "중국은 현재 미얀마 정세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국면이 아닌 만큼 우선 내부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시 미얀마 정부와 협상이 되면 인도양까지 철도를 개통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중국이 절실함을 가지고 장기전략으로 밀어붙이면 미얀마 내 철도 개통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중국의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행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이 교수는 "1980년대 올림픽 등 스포츠 외교로 외연을 넓히고, 2000년대 남북관계 개선으로 북한까지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외연이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는 12월 열릴 한-아세안특별정상회의는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는 "이제 레토릭(수사)으로만 해서는 안되고, 감동을 주는 실질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 [동남아전문가 이선진 교수가 전하는] 미얀마와 중국의 국경도시, 무세와 루이리의 변화
- 중국, 동남아 너머 중앙·남아시아까지 '주변국 외교'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박소원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