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 G2 자리 두고 패권다툼 벌이는 중일 사이에서 활로 찾는 한국

중, '조어도 분쟁' 계기 일 제압하고 태평양 반분 시도

2014-10-15 00:00:01 게재

아베, 미일 동맹 강화로 중국에 맞대응 … 한국, 동북아평화협력구상 활용해 대화체제 구축 시도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의 세력 전이를 직접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영토분쟁지역이다. 영토분쟁은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주권이 행사되는 영토문제는 당사국의 자존심 다툼이자 패권 장악의 문제로 귀결된다.

일본은 '신념 우익'으로 불리는 아베 신조 총리가 '잃어버린 20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중국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잃어버린 100여년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굴기를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일강 구도로 돌아가던 태평양 시대를 끝내고 태평양을 반분하겠다는 욕심도 가지고 있다.

중·일 양국이 영토문제로 강하고 맞붙은 때는 공교롭게도 양국의 경제규모가 역전된 해인 2010년이었다. 부상하는 중국과 하락세에 있는 일본, 양국의 지역내 힘의 구도가 바뀌자 영토문제로 포장된 패권 다툼이 표면으로 드러난것이다.


◆2010년 중일 선박의 충돌 = 지난 2010년 9월 조어도(일본명: 센카쿠제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지역에서 중국 어선과 일본 경비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불법조업 의심을 받던 중국 어선은 조사를 피해 도주하던 중 일본 경비선과 충돌했고 일본 사법당국은 국내법에 따라 중국인 선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했다.

중국 정부는 선장이 단기간에 석방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예상 외로 시간이 길어지자 주중 일본대사를 다섯 차례 초치하고 수차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외교적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열흘이 지나는 동안에도 사건이 종결되지 않자 중국은 일본경제를 위협하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중국내 일본 기업활동 지연, 일본제품 불매운동, 희토류 일본 수출 금지 등의 조치가 취해지자 결국 17일 만에 일본은 구속된 선장을 석방시켰다. 이 일을 계기로 양국간 영토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수면 위로 떠오른 갈등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확대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선박 충돌 사건 후 갈등이 누적돼왔던 중일관계는 2012년 9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일본 정부가 사유지였던 조어도의 섬 3곳을 매입해 국유화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조어도를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국유화의 길을 선택했다. 도지사의 매입을 방치하는 것다는 국유화가 중국의 반발을 덜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판단은 빗나갔다.

중국은 일본의 국유화 조치가 그동안 유지돼왔던 양국의 '암묵적 용인'을 깼다고 판단했다. 그동안은 일본 측의 실효지배와 중국 측의 주권 주장이 병립 가능했지만 일본의 국유화는 중국의 주권 주장을 완전히 부인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 정부의 국유화 조치에 반발한 중국은 조어도를 영해기점으로 설정하고 순찰 항해를 시작했다. 이후 중국과 일본 순시선은 물대포 공격을 주고받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을 겪기도 했다. 지난 2013년 11월에는 중국이 일방적으로 조어도 상공을 포함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면서 중일이 다시 한번 맞붙었다.

일본은 영토분쟁 지역 부근에 자위대 주둔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8월 자민당은 자국 안보와 해양질서에 중요한 섬을 '특정 국경 낙도'로 지정해 항만, 공항을 정비해 자위대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특정 국경 낙도'에는 독도와 158km 떨어져 있는 오키 섬과 중일간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열도에서 150km 떨어진 요나구니 섬,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와 가까운 홋카이도 레분 섬 등이 포함된다. 중국의 해양 진출을 막으려는 일본의 의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일 정상회담 개최에도 영향 = 중일의 패권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토문제로 얼굴을 붉힌 중국과 일본은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선 후 정상회담 개최를 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조어도와 관련해 영유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일본이 인정해야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입장이고 일본은 전제조건이 있는 회담은 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다음달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중일정상회담이 개최될지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최근 아베의 책사로 불리는 야치 쇼타로 일 국가안전보장국장이 시 주석을 만났다는 보도를 하는 등 일 언론은 중일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일본은 정상회담을 위해 노력하는, 대화를 원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반면 중국은 대화를 거부하는, 꽉 막힌 국가로 이미지를 형성시키고 있다. 이마저도 사실은 G2 자리를 둘러싼 중일간 패권 다툼의 한 단면이다.

◆다자협의체로 동북아평화협력구상 활용 필요성 = 조어도 문제가 표면적으로는 영토분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중일간 패권 다툼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지역에서 중견국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 정부가 영토 의제에 대한 양국간 대화를 중재해야 한다는 역할론이 제기된다. 더욱이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영토분쟁지역을 안고 있는 만큼 공동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전문가들은 중일 양국간 분쟁을 한국이 직접 조정을 하기는 어렵지만 영토 의제를 포함한 대화의 장을 만들 만한 역량은 있다고 보고 있다. 영토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기 힘들면 해양자원 이용 문제나 해양환경보호 등으로 우회 접근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지난달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와 영토, 해양안보를 둘러싸고 역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동북아에는 다자협의를 통해 이런 문제를 풀어갈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런 문제의식 하에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박근혜 정부가 영토분쟁으로 고조되고 있는 '아시아 패러독스'를 해소할 방법으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을 어떻게 활용해나갈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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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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