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영토분쟁 불씨 남긴 미국 … 중 "분쟁 배후는 미국"

2014-10-15 12:53:21 게재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동북아 질서를 개편하면서 이 지역에 영토분쟁의 소지를 남겨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중국은 이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다. 냉전시기 미국이 소련 등 공산권에 대항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됐던 동북아의 영토분쟁이 지금은 G2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는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중일간 최대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조어도(일본명: 센카쿠 제도, 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도 이면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조어도가 일본에 의해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된 것은 1895년이었다. 제국주의 야욕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은 1905년 독도도 시마네현으로 편입시켰다.


제국주의 논리에 따라 강제편입된 영토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한 후 원 상태로 회복돼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일본 패전 당시 타이완과 부속도서는 중국에 반환됐고 독도도 '맥아더라인'을 통해 일본령에서 분리됐지만 대일강화조약인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오히려 모호한 상태로 돌아갔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은 조어도를 포함한 오키나와 지역을 자국의 신탁통치 지역으로 설정하고 독도는 조약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아 중일간, 한일간 영토 분쟁의 불씨를 남겼다. 이렇게 만들어진 분쟁지역은 추후 미국이 동북아에서 전략적 행보에 우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와 관련해 도요시타 나라히코 간사이가쿠인대학 교수는 "닉슨 대통령은 미·중 데탕드를 앞두고 조어도 문제를 애매하게 다뤄 중국을 배려하는 한편, 잠재적인 분쟁의 불씨를 남겨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일본과 러시아 간의 영토분쟁지역인 북방영토(쿠릴열도) 문제도 미국이 야기한 측면이 크다. 북방영토는 1855년 러일 화친조약에서 일본의 영토로 인정됐고 1875년에는 쿠릴열도 전체가 일본 영토로 인정됐다.

그러나 1945년 미국은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계기로 쿠릴 열도의 관할을 인정해주고 소련은 같은 해 9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후 쿠릴열도 관할권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도 명문화됐다.

강화조약을 통해 소련에 할양된 북방영토를 수복하라고 일본을 부추긴 것도 미국이었다. 1956년 일본과 소련이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을 진행하자 일본은 미국의 입장을 반영해 북방영토 4개 섬 중 2개의 섬은 일본 영토라고 주장했다. 소련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었다. 결국 당시 일본과 소련 정부는 '외교관계가 회복된 후 평화조약 체결에 관한 교섭을 계속한다'는 식으로 영토문제를 봉합해 아직까지도 이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외교관 출신인 마고사키 우케루 전 방위대 교수는 "미국은 냉전 기간에 일본이 미국을 벗어나 소련과 독자적인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며 "똑같은 방법으로 조어도 문제를 중국 견제 카드로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일간, 한일간, 러일간 영토분쟁의 씨앗을 남긴 미국은 국제사회의 경찰 노릇을 하며 언제든지 이 지역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최근 조어도 분쟁을 빌미로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미일군사협력의 동력도 얻고 있다. 지난해 중국이 조어도 상공을 포함한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조어도는 미일안보조약 적용 범위에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러한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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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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