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김정일 사망 3년, 김정은 유일영도체제 공고화
군부에 대한 당 통제 강화 … '우리식 경제관리조치' 도입
[정치·경제 분야]
지난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2009년부터 후계자 수업을 해왔던 김정은이 3대 수령의 자리에 올랐다. 김 국방위원장 사후 3년동안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군부에 눌려 있던 당의 위상을 복원하고 유일영도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주력했다. 핵무력과 경제 개발의 병진노선 하에서 생산자의 자율성을 독려하는 경제관리조치를 시행하는 한편 외자 유치를 염두에 둔 개발구법도 제정·시행했다.
◆선군정치에서 선당정치로 =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정일 체제에서 '선군정치'로 비대해진 군부 권력을 통제하고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 때문에 김정은 체제에서는 당 관련 회의체에서 주요 사안에 대한 의사를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시대 기본 정책 방향인 '핵무력 경제발전 병진 노선'도 당 회의체를 결정을 거쳐 채택된 것이다. 지난해 3월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병진노선을 채택, 천명했다. 지난해 12월 이뤄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의 숙청도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논의된 것이었다. 이 확대회의에서 북한은 장 부장이 반당, 반혁명 종파행위를 했다고 규정하고 모든 직무에서 해임하고 출당·제명 결정을 내렸다.
김 제1위원장이 '당 제1비서'로 추대된 것도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서였다. 당대표자회는 당 창건 69년간 고작 4차례밖에 열리지 않았으며 2010년 9월 열린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 제1위원장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 등 공식 직책에 올랐다.
이렇듯 당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도 강화됐다. 김 제1위원장은 2013년 8월 발표한 담화에서 "인민군대의 총적 방향은 오직 하나 우리 당이 가리키는 한 방향으로 총구를 내대고 곧바로 나가는 것"이라며 군에 대한 당의 영도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군부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와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군부에서 빈번하게 수뇌부 인사들의 교체와 계급 강등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인민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이 수시로 교체되면서 전통적인 군부 엘리트의 위상이 낮아졌다.
당을 통한 군부 통제를 강화하고 당정군 핵심요직에 김정은의 측근을 앉히면서 김정은의 유일영도체제는 더욱 공고화됐다. 군부 최고 실세 자리인 총정치국장에 당료 출신인 최룡해와 황병서를 차례로 배치하고 김정일 시대에서 오랫동안 군부 요직을 차지했던 실세들은 모두 물러앉혔다.
장성택 숙청 이후 김경희의 자리도 서서히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으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김여정은 지난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으로 이름을 올리며 '백두혈통'의 등장을 알린 뒤 김 제1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고 있다. 최근 북한 매체에 따르면 김여정은 노동당 부부장(차관급) 직책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경제 개혁·개방 시도 = 6·28 방침으로 알려진 '우리식 경제관리체계'는 지난 2012년 6월에 발표됐다. 6·28 방침의 주요내용은 산업전반에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 따르면 6·28 방침은 농업의 '분조관리제 안에서의 포전담당제', 공업의 '경영권한을 현장에 부여한 것'과 '노동자·농민의 일욕심을 돋구는 것'이다. 또 독자 경영체제 도입이 '국가 계획을 벗어난 생산을 자체의 결심으로 조직하고 판매하며 종업원들의 보수, 복리후생 등도 자체의 실정에 맞게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우리식 경제관리체계는 아직까지는 북한의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새로운 경제관리조치는 현실과 공식 제도 사이의 차이를 메워주는 것으로 이를 통해 시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내년에는 그동안 실험적 시범적으로 추진해온 경제조치를 보완해 법제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밖에도 북한은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하고 내각에 '대외경제성'을 신설하는 등 대외개방·협력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고 있다. 북한은 2013년 신의주 특수경제지대와 경제개발구 13곳을 지정했고 2014년에는 경제개발구 6곳을 추가로 발표했다.
북한이 경제분야에서 나름의 개혁 개방을 시도하고 있지만 핵무력과 경제 발전을 병행 추진한다는 모순 때문에 경제적 성과가 현저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군사비 지출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
김정은 체제 이후 남북은 기싸움 수준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집권 3년차인 김정은의 북한과 집권 2년차인 박근혜 정부의 탐색전이 계속되면서 한반도 정세는 냉온탕을 오갔다.
◆계속되는 남북간 탐색전 = 지난해 4월 북한의 일방적인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남북간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북한은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하고 북측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이후 7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통해 공단은 재가동에 들어갔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개성공단이 중단돼 있던 지난해 6월 북한은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했다가 다시 남측 수석대표의 급을 문제삼아 회담을 무산시켰다. 지난 9월에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핵심 실세 3인이 참가해 '2차 고위급 접촉'을 제안해놓고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삼아 회담을 또다시 무산시켰다.
북한의 이러한 갈지자 행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에 대해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요구하면서 최소한 '비방·중상 중지'라는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초에도 북한은 신년사 등을 통해 관계개선 분위기 조성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조치로 비방·중상 중지를 요구했다. 지난 2월 열린 1차 고위급접촉에서도 상호 비방·중상 중지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북중관계 냉기류 여전 =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지 만 3년이 되도록 북한과 중국의 외교관계는 좀처럼 복원되지 않고 있다. 북중간 고위급 인사의 왕래도 뜸하다. 지난해 최룡해의 방중 이후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이 방북한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교류가 없는 상태다.
2013년 5월 '김정은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당시 군 총정치국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하고 "고위급 교류를 비롯한 양국 관계 발전을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북중 우호는 양국의 공동 이익에 부합한다"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반면 서구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 손을 잡고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북러간 물류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시범운행중에 있고, 러시아가 3000km가 넘는 북한 내륙철도를 현대화하기로 한 포베다(승리) 프로젝트도 착수한 상태다.
지난 11월에는 최룡해 당 비서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을 만나 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북러는 정상회담 개최를 시사하며 밀월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3차 핵실험, 인권문제로 고립 심화 = 북한은 지난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헌법에 핵 보유국 지위를 명시하고 이후 영변 경수로 가동을 선언했다.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전격 감행하며 핵무기의 경량화, 다종화를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외교공세, 유엔 및 쌍무적인 제재 완화·해제를 통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제재 없는 핵무기 보유국 지위' 확보를 당면 목표로 설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미 협상력 확대를 위해서라도 북은 핵개발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대립 갈등 국면이 심화될 가능성이 엿보인다. 북한은 인권문제를 주권문제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인권문제 개선을 위한 국제적 압박이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지 관심이다.
이밖에도 북한은 외자 유치와 기술 도입을 위해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면서 구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우호·협력 관계를 확대하려는 행보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