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이제는 마음을 얻는 '공공외교' 시대

네덜란드에선 '한국=경제·민주 선진국'이라 배운다

2015-01-07 12:58:55 게재

네덜란드 역사·지리 5종 교과서에 한국 경제·정치 발전상 수록 … '교과서 기술 사업' 공공외교 5대 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네덜란드를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 국토 4분의 1이 바다보다 낮은 나라, '오렌지 군단'으로 유명한 축구 강호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국 하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애석하게도 '아시아에 위치한 작은 나라'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네덜란드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됐다. 지난해부터 한국을 소개하는 네덜란드 역사·지리 교과서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전까지 네덜란드 TM출판사의 초등지리 교과서에는 한국에 대한 소개가 '한국은 어업이 발달한 후진국'(오른쪽 위 사진)이라고 돼 있었다. 개정판에는 좋은 작업환경에서 디지털 TV 패널을 만드는 사진(오른쪽 아래)으로 교체됐고 한국이 고도의 산업국가, 최첨단 제품을 수출하는 국가로 소개됐다. 사진 박소원 기자


◆11월에 반팔옷 입고 한국 방문한 네덜란드 교수 = 이기철 전 주네덜란드대사(현 장관 특별보좌관)는 네덜란드에 부임한 지 얼마 안돼 충격적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 네덜란드의 유명 대학 교수가 11월에 반팔 차림으로 한국에 갔다가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늦가을에 접어든 한국에 여름옷을 입고 간 것은 한국의 영문명이 'SOUTH KOREA'였기 때문이다. 'SOUTH'라는 이름을 보고 우리나라가 남아시아에 있다고 생각하고 기후도 따뜻할 것이라 오해한 것이었다.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대학교수조차 한국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 수준이었다. 이 전 대사는 한국 관련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을 제외하고 보통 네덜란드 국민들은 한국에 대해 '분단국' '북핵' 정도의 정보 외에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사는 한국인은 네덜란드를 비교적 잘 아는 데 비해 네덜란드 국민들은 한국을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접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인지도가 달라졌다는 점을 생각해내고 네덜란드 교과서에 한국의 이야기를 실어야겠다는 구상을 하게 됐다.

◆"한국의 발전 이야기를 배우면 당신들에게도 이득" = 다른 나라의 교과서에 특정 국가의 이야기를 추가로 집필하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교과서 내용을 결정하는 의사결정구조를 먼저 파악했다. 이후 집필진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논리 개발에 집중했다.

주네덜란드대사관은 한국의 유례 없는 발전이 이를 배우는 네덜란드 학생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총 85개 국가 중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세계 유일의 국가다. 전쟁의 폐허에서 EU국가 평균 수준으로 경제 발전을 이뤘고 그것도 5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달성해 다른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됐다. 이러한 국가의 발전상은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고 설득했다.

폐허에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한 나라의 운명이 국민들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교훈을 주고 분단된 남북이 서로 다른 길을 간 결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공산주의와 통제경제보다 우월하다는 점도 확인시켜줬다.

여기에 네덜란드 등 국제사회의 지원 덕분에 한국이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고 지금 한국은 네덜란드에 약 4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나라가 됐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는 결국 자국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인류공영의 가르침도 들어갔다.

교과서 집필진들은 이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지면 할애 문제 등을 이유로 긍정적인 답변을 쉽게 주지 않았다.

또 네덜란드의 성향상 한 국가의 발전상만 기술하기보다는 객관성 유지를 위해 부작용도 함께 기술하려는 점도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집필자의 부정적 내용 기술을 바꾸기 위해 교과서당 20회 이상의 연락을 주고 받아야 했다.

대사관은 집필진 외에도 출판사 사장, 교육관계기관 관계자 등 의사결정과정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상하원 의장과 외교 차관, 교육 차관보, 국방부 장관 등의 면담에서 측면 지원을 꾸준히 요청했다.

◆한국을 여행한 손녀와 참전용사 할아버지의 대화 = 2년 여간의 꾸준한 노력 끝에 네덜란드 5개(초등·중등 포함) 교과서에서 한국 이야기가 포함됐다. 과거에는 '아시아의 새끼 호랑이' 정도로 언급하고 지나갔지만 개정 교과서에는 5~6페이지에 걸쳐 한국내용이 소개됐다.

한 교과서는 한국에 여행왔다간 손녀가 한국전 참전용사인 할아버지에게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한국편을 구성했다. 1950년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 있는 가난한 한국과 현재의 한국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얼마만큼의 경제 발전을 이루고 동시에 정치적 발전을 가져왔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교과서 기술 사업과 함께 한국전문수업 사업 추진도 병행됐다. 네덜란드 호리쿰시 초등학교에서는 연 5~10회 한국에 대한 전문 집중 수업이 실시되고 있다.

다른 공공외교 사업과 비교해 교과서 기술 사업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모든 국민들이 한국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진행 과정은 힘들지만 성공하게 되면 비용 대비 효과도 높은 편이다.

외교부는 교과서 기술 사업을 통해 한국의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추후 한류 확산이나 무역교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민들도 함께 한 공공외교 = 네덜란드 교과서 기술 사업은 대사관의 주도적인 노력과 함께 교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룬 쾌거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한 교민은 기존 네덜란드 교과서의 기술내용을 요약해 대사관에 전달하는가 하면 한 유학생은 대사가 교과서 집필진을 대상을 한국발전상을 홍보할 때 사용할 수 있는 파워포인트를 제작해 주기도 했다. 또 다른 교민 2세는 대사관이 제작한 한국전문수업교재 영문본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해 힘을 보탰다.

주네덜란드대사관은 교과서 사업을 통해 네덜란드 국민뿐 아니라 네덜란드 동포사회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교과서 기술 사업이 알려지고 난 뒤 주네덜란드한인회 홈페이지에는 "이기철 대사께서 올린 네덜란드 교과서 사업 글을 보고 가슴 벅차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네덜란드에서 24년간 교민으로 살아오면서 교민사회에서 보아온 일 중에서 가장 멋지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대상국 국민뿐 아니라 해당 국가에 거주하는 교민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공외교를 펼친 셈이다.

외교부는 교과서 사업이 대사관 업무를 적극적으로 동포사회에 알리고 동포사회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냄으로써 동포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촉진제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주네덜란드대사관의 교과서 기술 사업의 효과를 확인한 외교부는 이 사업을 5대 공공외교 축으로 선정하고 현재 전 재외공관에서 추진토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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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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