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 세월호 묻혀있는 팽목항

"바닷속에 죄없이 눈부신 아이들이 있습니다"

2015-04-14 11:02:05 게재

유가족이 되고픈 실종자가족의 아픔

어정쩡한 정부, 유가족-진도 또 울려

요즈음 팽목 가는 길은 꽃 천지입니다. 왕복 2차선 도로 옆 벚꽃은 만개했고, 유채와 산벚이 들판과 산을 메우다시피 피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도 꽃은 피었을 것인데,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을 매일 다니면서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누군들 보였겠습니까. 봄꽃 여행길에 나선 304명이 물 아래 갇혔습니다. 게다가 9명은 아직 돌아오지도 못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묵던 진도체육관은 이달 말에 있을 전남도민체육대회 준비가 한창입니다. 수색 현장의 영상을 보며 통곡과 오열이 반복됐던 곳입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정부가 수색작업을 중단하면서 실종자 가족들도 자리를 옮겨야 했습니다. 팽목 넘어가는 길에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의 아들 제안으로 '세월호 기억의 숲'이 들어서는 백동 무궁화 동산이 있습니다. 마침 10일 기념식수를 앞두고 은행나무 30그루가 도착해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우선 심었다가 팽목항 인근에 추모공원이 들어서면 옮겨 심을 예정입니다.

4월이 되면서 한산하던 팽목항 방파제를 찾는 추모객들이 제법 늘었다. 방파제 왼쪽으로 배를 타고 1시간을 가면 세월호가 잠긴 맹골수도가 있고, 오른쪽 선착장엔 임시로 만든 가족숙소와 분향소가 있다. 9일 낮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이름을 적은 깃발이 바람이 흔들린다. 진도 = 이명환 기자


팽목 주차장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차와 사람이 뒤엉켜 왁자 했던 항구 입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빈자리를 바닷물이 한참 더 들어와 채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임시안치소가 있던 자리엔 작은 분향소가 들어섰습니다. 시신이 들어오면 신원을 확인하고 가족에게 넘겨주던 '통곡의 땅'이었습니다. 범대위가 해산 된 후 팽목을 찾는 발길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1월 11일 수색 종료 후 정부의 공식적 지원은 없다고 합니다. 분향소를 지키던 한 유가족은 "그나마 4월 되니 찾는 분들이 조금 늘었다"고 말합니다.

해수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주저 앉혔던 방파제는 바람만 가득 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 이름이 적힌 깃발과 노란리본이 봄바람에 날립니다. 배를 삼킨 맹골수로가 보이는 방파제 작은 벽엔 누가 그렸는지 모를 작은 벽화가 하나씩 채워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한 성당에서 왔다는 할머니 셋이 실종자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 앞에서 손을 모읍니다.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아버지와 함께 배에 남은 혁규의 얼굴 앞에서 "아이고, 벚꽃같이 환하고 이쁘게 생겼네"를 연발합니다.

팽목의 쓸쓸한 봄 만큼이나 새끼 잃은 어미의 통곡은 여전합니다. 배를 키우고, 화물을 늘려 싣고, 엉터리로 운행한 사람들이 법정에 섰습니다. 국가는 왜 세월호 주변만 빙빙 돌았을까, 전문가 집단이라던 기관은 숫자 하나 못 헤아려 지탄을 받았을까. 제2, 3의 세월호 막겠다며 '안전의 날'이라 제삿상을 차린다지만 크게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해외에 나간다 하니 '빨리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밝혀진 게 없으니 당연하겠지요. 한편에선 그만 하자고 합니다. 상처를 헤집고 소금 뿌려 무슨 득이 되느냐는 겁니다. 마음에 묻어두고 일상으로 돌아가잡니다. 대신 돈을 주겠답니다. 단순 교통사고라고 떠들던 사람들이니 자식 목숨 팔아 돈이나 벌려는 배교자 쯤으로 보였을까요.

진도사람들이라고 편했을 리 없습니다. 팽목항이나 진도읍에서 만난 이들은 돌아오는 1주기가 불편하다고 말합니다. 진도는 낚시 관광객으로 소득을 올리던 지역입니다. 지난 봄부터 사실상 포기해야 했습니다. 진도군청도 추모 분위기 확산을 염려합니다. 주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찾는 이들의 마음이 전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나요. 팽목 가는 길에 추모나 다짐을 담은 글귀를 보는게 쉽지 않습니다. 유가족 탓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4월이 오는 것이 반갑지 않답니다. '세방낙조'로 유명한 지산면에서 팬션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10년 넘게 4월만 되면 우리집을 찾아 묵었던 서울손님이 있는데 지난해부터는 안온다"면서 "정상화되려면 몇 년은 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이 가장 염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당장이라도 결단을 내릴 것처럼 말했던 정부는 600만명의 서명과 3만명의 단식이 있은 후에야 특별법을 만들었습니다. 인양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유족 누구도 말 꺼내기 무서워 했던 인양을 거론했던 정부가 이제와서는 주저합니다. 1년 넘게 팽목을 지키고 있는 혁규의 큰아버지 권오복(61)씨는 "정부가 인양을 말하지만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당장 인양을 선언하고 준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칩니다.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인 가슴아픈 사람들을 뒤로 하고 팽목을 떠나왔습니다. 임시공간에서 미사를 드리던 방문객들의 염원이 귓가에서 가시지 않습니다. "세월호엔 아직 죄없이 눈부신 아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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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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