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동안 정부는 말로만 안전 강조했다"
교육부 시도교육청, 체험형 생존교육은 뒷전…1년 동안 매뉴얼만 수백개 쏟아내
"학교생활 안전 앱(App)요? 그게 뭐하는 건데요?" 수업을 마치고 학원버스를 기다리는 중학생들에게 휴대폰에 설치한 '학교생활 안전 매뉴얼 앱'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매뉴얼이라며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되게 웃긴다'며 깔깔댔다. 서울 강남지역 중학생들에게는 안전교육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안전교육'을 생각하는 학생들의 반응은 전국적으로 비슷했다.
충북 청주시 한 중학교 아이들은 특별히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담임교사가 '통학버스 타고 내릴 때 조심하라'는 말은 했다고 전했다.
이 학교 이 모 교사는 "교육청이 보급한 안전교육 7대 표준안을 지난달에 받아보긴 했는데, 시간이 없어 방대한 분량을 모두 검토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중학교 교사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교육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지만, 정부가 요구하는 안전교육을 일선학교들이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고 털어놨다.
아직 교과 과정 개편을 구체적으로 전달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체험형 안전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학교 밖 전문시설을 찾아 섭외해야 하는데 수업시간 조정이나 예산문제가 걸려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안전교육, '심폐소생술'만 배우면 끝? =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등에서 심폐소생술 열풍이 불고 있다. 하지만 현장체험 안전교육(생존교육)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부나 각 시도교육청들이 앞 다퉈 안전교육 대안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안전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땜질식 정책을 내놔 더 큰 혼란만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난사고나 교통사고 등은 예고 없이 갑자기 이루어지기 때문에 순간 정신을 잃거나 당황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 본능적인 행동이 사고를 막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딱딱하고 경직된 사고나 행동은 사고로 이어지지만 평소 유연한 활동을 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사고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를 비롯한 17개 시도교육청 역시 생존형 체험교육을 진행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시교육청과 세종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생존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세종시교육청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1700명) 전체를 대상으로 수영교육을 진행한다. 년 20시간 교육 중 4시간은 수중구조안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시교육청도 올해 4월부터 초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생존수영법을 가르칠 계획이다. 최소 10미터이상 헤엄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하고 생존과 구조수영을 진행한다.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스스로 생존법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안전교육의 핵심이다. 이는 이론 교육과 함께 생존교육을 병행해야만 가능하다" 수중안전 강사교육을 진행하는 대한수중협회 김 모 이사의 설명이다.
김 이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교육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정부나 시도교육청, 일선 학교들이 심폐소생술만 배우면 안전교육을 마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재난이나 긴급상황에 처했을 때는 머리로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받은 반복교육이 반사작용으로 이루어지면서 사고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일부 교육청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체험형 생존교육에 중심을 둔 안전교육 매뉴얼을 만들고 있어 현장 교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지난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한 결과 '신선하다' '자신감이 생겼다'는 평가를 얻었다. 원론적인 이론수업보다 현장대응 능력을 높이는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이다. 주로 구조용 로프 매듭 만들기, 응급구조 등 물에 빠졌을 경우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 등 실전형 생존교육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울산시교육청의 경우 교육부가 제시한 7대안전 표준안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한다. 이를 통해 올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년에 16시간씩 수상안전 구조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 교육청들의 안전교육 중 생존교육은 여기까지다. 수영교육을 담당하는 한 교사는 "물과 친해지는 정도지 구조나 위기상황을 극복할만한 프로그램은 아니다"고 말했다. 매년 익사로 청소년 100여명 이상이 목숨을 잃지만, 인명구조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생존교육은 먼나라 이야기라는 것이다. 프로그램 진행교사들이 생존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안전도 인권이다 = 서울시교육청은 안전문제를 근본적인 시각에서 다시 조명하기 시작했다.
4월2일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안전 기본조례' 공포에 따라 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교육안전 기본조례'는 교육활동 안전과 시설안전 등 8개 영역에 대한 세부계획 수립의 근거가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바탕으로 인권 대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4월부터 학생들이 생활 곳곳의 위험 요소를 찾아내 토론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 학교구성원 스스로가 나서 안전관리 체계를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학교별 대토론회를 거쳐 수렴된 의견은 초중고 학생회장 416명이 모인 5월 7일 원탁회의에 전달된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조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교육안전 권리와 교육청의 의무를 천명하고, 체계적인 제도와 프로그램 추진을 위해서는 법적 근거 마련은 필수"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어른이 주입해주는 안전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기도교육청도 안전문제를 학생중심, 현장중심으로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조직과 수많은 매뉴얼이 있음에도 사고발생시 기능을 못한 점, 위기상황시 교사나 학생 모두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대응요령을 알지 못했다는 점, 정보 불통과 혼선으로 상황파악이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안전교육 변화 기틀로 삼았다.
따라서 매일 조례나 종례시간 등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나침판 5분 안전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정 교육감은 10일 국회 교육안전대책 특별토론회에서 "지난해만 크고 작은 사고로 사망 381명 실종이나 부상자가 574명으로 늘상 안전을 강조하지만 사고는 매년 10%씩 늘어나는 추세"라며 "'학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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