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일 '메이지 산업혁명 시설' 유네스코 등재 신청

'감추고픈 역사' 강제징용 들춰진 일본

2015-05-29 11:15:53 게재

메이지유신 후 이룬 '패권국의 추억' 재생 의도 … 역사 미화에 역효과

어두운 역사를 외면한 채 과거의 영광만을 되살리려는 일본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청산 없이 이뤄지는 '역사 미화'로 인해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 일본 정부는 2014년 1월 후쿠오카(福岡)현 기타큐슈(北九州)의 야하타(八幡)제철소, 나가사키(長崎)현의 나가사키 조선소(미쓰비시 중공업) 등 현재 가동 중인 시설과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등 총 23개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이 가운데는 과거 5만7900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된 7개 시설이 포함돼 있다. 사진은 미쓰비시 해저 탄광이 있던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 도쿄 교도=연합뉴스


아베 신조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적절한 태도를 취하자 해외 역사학자들은 물론 일본 내 역사학자들까지 비판에 합세했다. 국내외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재차 상기시키는 모양새가 됐다.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메이지 근대산업혁명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근대 일본의 발전상만 보여주고픈 일본 정부의 의도와 달리 숨겨놓은 강제징용 문제가 부각된 것이다.

메이지 유신, 동아시아 패권국 발돋움 바탕 = 일본은 2014년 1월, 규수와 야마구치 지역 8개 현 11개 시에 위치한 23개 근대 산업 시설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규수·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을 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비서구지역에서 최초로 산업국가가 되어 반세기 정도 만에 제철과 조선 기술을 확립했다"는 것을 등재 신청 이유로 제시했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침탈을 경험했던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서구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으로 올라서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어떤 일본 학자는 중국이라는 선생 밑에 한국과 일본이라는 학생이 있는데 한국이 우등생이었고 일본은 열등생이었다가, 서양을 모델로 한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으로 선생을 바꾸면서 일본의 성적이 한국을 뛰어넘었다고 비유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메이지 유신은 일본에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부심도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한 이후 일본은 아시아 지역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며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1910년에는 우리나라를 강제 병합했다.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아베 총리 집권 후 평화헌법의 해석을 변경하고 집단적 자위권의 활동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의 유네스코 등재신청은 순수한 의미로 읽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일본 정부는 관련 시설 등재 기간을 1850년부터 1910년으로 한정해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한 부분을 제외시켰다. 한국인들의 강제징용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계유산에 등재신청한 지역(야마구치현)은 아베 총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겠다고 외치는 아베 총리는 중국에게 뺏긴 동아시아의 패권국 자리를 되찾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는 자위대 역할을 한정한 헌법의 해석변경에 그치지 않고 개헌을 하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우경화 행보는 메이지 유신 이후 제국주의, 군국주의 국가로 변모했던 일본의 과거를 떠오르게 만든다.

한국인 강제징용의 뼈아픈 역사 담긴 시설 = 외교부에 따르면 일본이 등재신청한 23개 시설 중 7개 시설에서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 5만7900명이 강제 동원돼 94명이 노역 중 사망했고, 5명은 행방불명됐다.

한국인 강제 동원과 관련된 시설은 다카시마 탄광(4만명), 미이케 탄광 및 미이케 항(9200명), 나가사키 조선소(4만7000명) 등이다. 섬의 모양을 따 '군함도'로 불리며, 혹독한 노역에 '지옥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하시마 지역의 탄광(600명)도 포함됐다.

강제징용 역사를 숨기려 등재신청기간을 1850년부터 1910년으로 한정한 일본의 '꼼수'는 등재과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조선인 강제징용 시설이 포함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면서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을 등재 권고안에 포함시켰다. 외국인 강제징용이라는 부정적 역사까지 모두 담으라는 의미다.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비판하며 세계 역사학자들의 집단 성명을 주도한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도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한 산업 시설에 어떤 아픔이 서려 있는지를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더든 교수는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등재 노력을 하는 것과 동시에 한국인에 대한 강제 징용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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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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