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강제징용의 아픔이 담긴 시설을 일본 정부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은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에 문화 이슈를 정치화하지 말라며 여유를 보였던 일본 정부가 오히려 다급한 입장이 됐다.

지난 1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는 '등재 권고안'에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한다"면서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밝혔다.

전체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권고는 이 산업시설에서 한국인의 강제징용이 있었다는 사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28일 "그동안 일본은 우리 정부에 이코모스의 전문성을 존중하라고 해왔다"면서 "이코모스가 '전체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한 만큼 일본 측이 이를 딱 자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역사라는 것은 전체를 봐야지 (특정시기를) 잘라서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면서 "일본이 이코모스의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 기본적 자세이고 권고의 무게를 충분히 알고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일본 정부의 '좌절'에는 강제징용 문제를 부각시키며 유네스코 등재에 제동을 건 우리 정부의 전방위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일본 메이지 산업시설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계유산으로 등재, 그것도 '온전히'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양한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 메이지 산업시설 등재에 대한 우리 정부의 우려를 표명해온 결과 이코모스에서도 이러한 권고안을 낸 것이다.

한일간 양자 협의도 이러한 흐름에서 이뤄지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부분 위원국은 한일 간 갈등으로 유네스코가 정치화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가능한 한 표결을 피하고 싶어 한다"면서 "한일 간 양자협의를 통해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2일 도쿄에서 최종문 외교부 유네스코 협력대표와 신미 준 일본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첫 협의를 가졌다.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안이 나온 이후 열린 협의인 만큼 일본 측은 우리 정부에 "타협 방안을 논의하자"고 한 것으로 28일 전해졌다. 6월 말~7월 초 독일 본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의 전 몇차례 열릴 협의에서 한일이 어떤 타협안을 도출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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