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원 기자의 외교 포커스 | 막바지 다다른 한일 위안부 문제 협의
일, 사과와 망언 끝없이 되풀이 … 8월 아베담화 주목
고노·무라야마 담화서 사과
우익들 망언으로 의미 퇴색
일본 정부 차원에서 일제 침략의 과거사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1965년이 처음이었다. 그해 2월 20일 한일기본조약 가서명 후 발표한 외무장관 공동성명에서 일본측은 "과거 관계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명하였으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과거사 입장 표명은 18년 뒤에 있었다. 1983년 1월 전두환 대통령과 한일간 첫 공식 정상회담을 가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만찬 답사에서 과거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일본 총리의 첫 과거사 입장 표명이었다.
그는 "한일 양국 간에는 유감스럽게도 과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므로, 우리는 이것을 엄숙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과거를 반성하는 견지에서 우리나라의 선배들은 예지와 노력으로써 하나하나 새로운 한일관계의 기초를 쌓아왔다"고 말했다.
이듬해인 1984년 9월 전두환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공식 방일했을 때 히로히토 일본 천황은 만찬사에서 "금세기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본 총리, 천황의 과거사 유감 표명이 나오는 분위기였지만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대두돼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1982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한반도에 대한 '침략'이 '진출'로 '3·1운동'이 '폭동'으로 표현됐다. 한국 정부의 교과서 수정 요구에 대해 일본 문부상은 내정 간섭이라고 맞섰다.
일본 정부는 과거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교과서나 위안부, 독도 등의 구체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통일되지 않은 메시지를 내보내 한일관계는 냉온탕을 오갔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과거사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렇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뒤인 1992년 7월 가토 관방장관은 관련 자료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본 정부의 관여 사실은 인정되지만 모집 과정에 강압적으로 또는 속여서 데려간 사실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1993년 8월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 당국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가 발표됐고 1994년 6월에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면서 과거사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정부 인사 사과 표명이 거듭될수록 일본 보수파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1995년 아타나베 미치오 전 외상은 "한일 강제병합조약은 우호적으로 체결됐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시마무라 오시노부 문부상은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인가 하는 판단은 사고방식의 문제"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전 정부에서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2007년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강제동원 사실을 다시 부인했다. 2012년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기 위한 시도로 담화 검증까지 실시했다.
일본 우익의 되풀이되는 망언에 과거 정부에서 행해졌던 사죄의 의미는 퇴색됐다.
지난 4월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사과하지 않은 아베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내놓을 담화에 진전된 내용을 담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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