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예술인들은 …

조명 디자이너, 하루 일해 겨우 10만원이 고작

2015-09-02 10:25:06 게재

계약서 없이 구두로 일

출연·연출료 못 받기도

2015 문예연감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에서 이뤄진 전시, 공연, 문학 작품 출판 등 예술활동은 3만6807건에 이른다. 이 많은 전시와 공연, 문학 출판 과정에는 다양한 직종의 예술인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다.

 


"결혼도 쉽사리 결정 못해" = 예술인들이 생활고로 죽음에 이르는 것은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예술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것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곤란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7월 개최된 '고통의 끝에서: 예술인 없는 예술인복지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한 연극인은 "지난해 열심히 일했지만 번 돈은 수백만원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이는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대다수의 연극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얘기다.

예술인들은 공연이 올라가는 기간 외에 연습하는 기간, 준비하는 기간 등이 별도로 필요하지만 이 기간에는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아르바이트 등 여러 직업을 동시에 수행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배우뿐 아니라 공연예술 스태프들도 이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지난해 7월 개최된 '공연예술인의 노동환경 실태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조명디자이너 경력 20년의 김상조씨는 "조명 스태프들의 임금은 하루 10만원"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7만원에서 2000년쯤 10만원으로 오른 게 전부"라면서 "10만원으로 1년 365일 일을 해도 3650만원"이라고 말했다.

시간 외 수당도 없이 하루에 10만원으로 고정돼 있는 급여로 인해 노후 준비는 생각하지도 못한 채 '어떻게 되겠지'라며 하루하루 생활을 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이로 인해 결혼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사례도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직업을 수행하다 보면 예술에는 소홀하게 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도 또 다른 아픔이다.

'페이' 얘기 없는 극단 대표 = 예술인들이 작업 과정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고 구두로 일을 시작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하게 되는 사례도 상당수다. 예컨대 조명 스태프 등 대다수의 공연예술계 스태프들은 공연을 시작할 때 통상 구두로 일을 시작한다. 때문에 가뜩이나 저임금 구조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은 임금을 떼이거나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을 찾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지난해 7월 개최됐던 국회토론회에서는 경영진이 무리한 투자를 해서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한 배우의 사례가 발표됐다. 동료들과 못 받은 출연료를 합산해 보니 20억이나 됐던 그는 노동청에 갔는데 "이 계약서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일반적으로 쓰는 출연계약서가 아니라 매니지먼트 전속 계약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연예술계에서는 공연을 올리는 기간 뿐 아니라 그 외 준비 기간 등을 포함, 배우들이 다른 공연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니지먼트 계약서를 쓰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배우들에게 불공정한 계약인 셈이다.

이 외에도 이날 국회토론회에서는 연출을 하고 연출료를 받지 못한 연출가의 사례, 큰 라이선스 뮤지컬 오디션을 포기하고 대표를 믿고 한 극단에 들어왔으나 대표가 '페이' 얘기를 하지 않고, 다른 배우들에게 돈을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것을 알고 해당 극단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는 신인 뮤지컬 배우의 사례 등이 발표됐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공연예술계는 관행적으로 도제식으로 운영돼 왔는데 최근 산업화의 흐름 속에서 도제식 시스템이 무너지는 가운데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지연 예술인소셜유니온 정책위원은 "1970~90년대 초에 20대를 보냈던 연극인들은 그 때는 극단 생활을 하면 손에 돈은 못 쥐어도 먹고 자는 건 걱정이 없었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면서 "월급 안 주는 건 옛날 방식대로 하고 밥이나 잠자리를 해결하는 건 요즘 방식대로 하는 바람에 어린 극단원들을 아사 직전까지 내몰면서 은근한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극단주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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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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