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하는 예술가, 우리 모두의 예술

2015-09-02 10:26:09 게재

우리는 배추와 같은 농산물에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생산자인 농민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면서 과도한 유통 마진에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다.

우리는 자동차와 같은 공산품에 적지 않은 가격을 지불하고, 생산자인 노동자에게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면서 대기업 소유주의 과도한 이익 독점에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음악과 영화를 비롯한 예술적 산물의 적정한 가격 책정에는 거부감을 갖고, 생산자(창작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심지어 편리성을 이유로 수익독점적인 유통구조는 과감하게 간과한다. 생산자인 예술인이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면 공항에서 비행기 입석표를 요구하는 관광객이나 신발가게에서 구두 한짝만 팔라고 떼를 쓰는 손님인양 바라보기까지 한다.

예술은 원래 배고프니까? '예술은 배고프다'는 대체로 사실이다. 그런데 '예술은 원래 배고프다'가 되니 문제이다.

예술인 복지는 부유한 생활을 보장하라는 투정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에게,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영화·미술·문학 같은 사회공공재를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은 필요하다는 호소이다.

'열정착취'로 얼룩진 문화산업

선진국들이 예술인 복지 체계를 갖춘 것은 돈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철학을 바로 세웠기 때문이다.

예술인은 자유와 자존을 선물로 받았다거나, 당장은 힘들더라도 운이 좋으면 커다란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전후사정을 몰라야 할 수 있는 말이다. 대다수 예술인들은 좁은 땅 위에 발꿈치를 들고 서있어야 한다. 한류 혹은 문화융성이란 멋진 말들이 횡행하지만, 대부분은 사다리 첫 칸에 발을 올려놓는다 해도 주어진 것은 두어 칸짜리 사다리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곱씹어야 한다.

문화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도 종사자들의 처우와 노동환경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공정 계약과 부당행위, 열정착취, 낮은 대가, 저작권 탈취, 내부착취로 얼룩져 있다.

각종 조사에 의하면 출판산업, 방송산업, 공연·무대예술계 모두 고용불안과 불명확한 노동관계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래서 문화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있지만 예술인들은 본업과 무관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복지 확대'는 시대적 요구

상황이 이러한데도 예술인복지법의 실효성은 의문시되고, 문화예술정책은 한류산업·문화강국과 같은 시장 이데올로기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문화정책들에는 모두를 위한 정책을 만들려다 누구를 위한 정책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져버린 공통점이 있다.

문화산업 종사자, 즉 예술인에게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해당 산업의 안정도 가능하지 않다. '융성'이 아니라 '생존과 회복'을 논해야 하는 실정이다. 굳이 산업 중심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회복과 정상화 → 도약과 융성'이다. 예술인복지체계의 확립은 '을(乙)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청년일자리 확충' 그리고 '복지의 확대'라는 시대의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직업들은 대개 지금의 예술인 현실과 비슷한 국면으로 변화할 것이기에 예술인 복지 문제 해결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과 제도 바깥의 노동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사회의 자산이 되는 '예술'

'일하는 예술인'이란 말이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데 어떻게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에너지와 시간을 투입하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신통력의 소유자들이라도 될까? 그렇지 않다.

더구나 예술은 사회의 자산이 된다. 자신과 벌이만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는 물론, 자기 사후의 시대와 세대를 위한 생산에 몰두하는 이들이 누구일까? 그들에게 수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가을의 노란 논은 아름답다.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농부의 땀이 생각나서 아름답고, 가뭄과 태풍의 고난을 이겨냈기에 경건할 정도로 아름답다. 만약 예술작품을 대면하고 이 세 단계 중 첫 번째 아름다움에서 멈춰버린다면 온전한 아름다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는 "저작자, 발명가, 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밝히고 있다.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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